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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7242587
· 쪽수 : 184쪽
· 출판일 : 2025-10-10
목차
시인의 말 05
1부 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일요일 12
디귿 자형 마당 14
흰 고무신 16
작은 새의 심장이 퍼덕거린다 18
성자 20
낡은 창가 21
담벼락 23
푸른 복도 25
입관 28
어둠이 내린다 30
2부 사랑이란 별로 뜨는 저녁
사랑 34
고해 36
둥지를 떠난 사람 38
바람의 방향 40
바람 42
파도 소리 43
낡은 이별 45
재회 47
사랑한다는 것은 49
그 비는 그렇게 내렸지 51
3부 수국꽃은 풍경소리에 실려 돌계단을 내려갔다
수국꽃 설화 54
잎의 사원 56
백일홍 꽃잎 57
날개 달린 풍장 59
아득하다 61
마른 슬픔 63
마음의 조율 64
붉은 슬픔 66
붉은 감정 68
바람의 이력 69
4부 내게 주는 밤의 예찬까지
모래사막 72
책장 위에 올려 74
모서리 76
말랑말랑했다 78
병실엔 인어가 누워있다 80
밤 81
딸기를 말리다가 83
메꽃 한 송이 85
만약 파도가 바다에게 영혼이라 말한다면 87
립 서비스 89
5부 천년 세월 뭉툭해진 침묵
날 것의 얼굴 92
바위 94
누군가의 간식 96
틀 98
찔레꽃 100
일렁이는 국화 향기 102
밤의 바다 104
맹수의 흔적 106
돌아온 길 107
심장 109
6부 흐린 날엔 먹구름 같은 마당을 쓸었다
어둠을 털어내고 112
말랑해진 식빵 114
흐린 날엔 먹구름 같은 마당을 쓸었다 116
정지된 순간 118
어두운 골목 안에는 별들이 살고 있다 119
길을 줍는다 121
무제 그리고 명제 123
슬픔의 질량 125
고등어 127
지금 아픈 건, 들국화 129
7부 여인은 붉은 등불을 들고 가을처럼 왔다
그대, 가을이 왔다 132
숭숭한 구멍 134
빗방울 서사 136
해가 나에게로 138
낡은 배 해안가에 서 있다 140
달리기 142
밤마다 허리를 흔든다 144
눈물의 정의 146
불빛 148
8부 퉁퉁 부은 눈동자가 자꾸만 움직이는 거야
손 152
찐 계란 154
비틀거리는 가을 156
울고 싶을 땐 이유가 필요해 158
구겨진 과자봉지 160
얼룩 162
달빛은 길어진다 164
발등의 혼인 166
해설_몸의 철학을 읽어내며/이상호 168
저자소개
책속에서
비 내리는 일요일
드넓은 우주 공간마다 검은 일요일이 털뭉치처럼
뭉쳐 있다
회색 마음 틈 사이로 낯선 전화벨 소리가 들려오고
유전자 변형을 끝낸 먹구름이
수만 가닥의 장대비 되어 요란스럽게 쏟아진다
비가 내린다와 비가 쏟아진다는 것은
시각적 사물이 잔잔하게, 때론 세차게 젖어간다는 의미,
크레션도와 데크레센도의 의미
이 의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평적인 것이 아닌 수직적이고 둥근 물방울들의
조용하고 은밀한 결합
갇힌 것과 갇히지 못한 것들이 하나의 은유가 되어
평범한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것
형체가 사라진 먹구름이란 존재를 화두로 남겨두고
굳어진 촛농처럼 농축되어 가는
폐쇄적인 친밀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비등점 낮은 문 밖으로 뛰쳐나가보지만
의문부호를 등에 업은 검은 일요일이 스멀거리고
젖은 창틀 위에서는 동기부여가 소멸된 나뭇잎 한 장이
온몸을 떨며 흐느끼고 있다
“니들이 젖어가고 있다”란 이인칭에서
“나는 젖어가고 있다”의 일인칭으로 시간을 되돌리며
비의 일요일이란 시적 의미를 되새겨본다
사랑
사랑이란 타인의 흔적으로 별로 뜨는 저녁입니다
그렇듯 보고 싶은 당신이 저에게 외로운 모습으로
왔습니다
손수 키운 시금치를 한 아름 보듬어 앉고
주인 없는 갈색 벤치에 앉아 마주 보던 당신과 나,
우리들의 저녁은 그렇게 넉넉하게 시작하였습니다
간간이 이야기를 꿈으로 해석하며 연신 하품을
토해내던 당신
그런 당신을 바라보던 제 마음은 무척이나
안타까웠습니다
복잡하게 얽혀 풀기 어려운 말들이 십여 분간 이어지고,
차 트렁크에서 무거운 보따리 하나 내게 안겨준 채,
커다란 아쉬움 하나 차 뒤꽁무니에 매달고
떠나가는 당신의 뒷모습은 차가운 얼음꽃이었습니다
안타까움과 미안함으로 먹먹해진 마음을 보듬고
집으로 돌아와 노숙 아닌 노숙을 시작했었지요
초록빛 그리움에 물든 손으로 보따리를 풀어보니
그 속에는 당신이라는 책이 한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맨 위에 놓여있던 책 두 권이 둥그렇게 웅크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저를 연신 올려다봅니다
그중에 한 권을 집어 들고 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집어등 같은 환한 당신의 마음이 사랑이란 글자가 되어
제 마음속에 깊숙이 차곡차곡 쟁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먼 훗날의 오늘이 기필코 다가오면,
그리운 당신에게 나라는 한 권의 투명한 책을
선물할까 합니다
부피를 키운 작은 별 하나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나는 불빛 따뜻한 잠 속으로 동면에 접어듭니다
수국꽃 설화
그녀가 휘청이며 돌계단을 내려갔습니다
합장을 마친 스님은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에 잿빛 장삼이 젖는 줄도
모르고
대웅전 옆, 수국꽃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수유하던 여자처럼 벙글던 수국꽃은
창백한 얼굴로 꽃잎을 한 장 한 장 떨구며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한 번쯤은 뒤돌아볼 만도 한데…”
스님 옆에 서 있던 내가 오히려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아침 예불 시간에도,
점심 공양을 마치고 모두 함께 차를 마실 때에도,
마치 스님의 그림자 인양
주지 스님의 주위를 배회하던 그녀였습니다
오늘따라 낮은음으로 들려오던 빗소리가
그 두 사람의 울음소리 같았습니다
그날 밤, 법당 안에서는
밤새 기도를 하는 스님의 젖은 목소리가
목탁 소리처럼 쌓이고 또 쌓였습니다
비 그친 법당 밖에는
기도하는 수국꽃의 모습이 풍경소리에 실려
백팔 개의 돌계단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젖은 미소 같은 꽃잎을 한 장 한 장 떨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