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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7371478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23-04-25
책 소개
목차
Prologue_ 트로이메라이: 식물 예찬
1장 사적인 공간을 공유하는 사이
가장 순수하고 공정한 생명체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
꽃은 잘 안 키우시나봐요?
정원 속 그곳에 고사리가 있다
때론 봄날의 살구꽃으로
누구나 그린썸이 될 수 있다
2장 서서히 다가오는 식물의 언어
식물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물 주기
오늘 하루치 햇빛
맛있고 건강한 흙 요리법
총채벌레는 곤란합니다
식물 완벽주의
님아, 제발 꽃다리를 건너지 마오
3장 나무 공동체의 구성원
내가 돌보는 식물, 나를 돌보는 식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는 즐거움
식물 미감
화분을 크게 쓰지 않는 이유
겨울 정원사에게 필요한 것
4장 즐거움을 나누는 즐거움
식물인의 정
함께 키우는 가드닝
식집사의 불치병
묵은둥이, 귀둥이, 우리 집 터줏대감
지금도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5장 정원사의 기쁨과 슬픔
그 많던 립살리스는 어디로 갔을까?
식테크 버블
모든 식물은 평등하다
식물을 키우는 책임감
일상에 스며든 그들의 지혜
Epilogue_ 카논: 나의 정원은 진행형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물은 어떻게 줘야 해?”
식초보의 단골 질문에 돌아온 답은 명확한 공식.
“한두 달에 한 번!”
그런데 수학 공식처럼 정확한 답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했다. 이 작은 생명체가 어떻게 한두 달에 한 번 주는 물만 먹고 산다는 건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괜스레 가느다란 목줄기가 그날따라 더욱 가냘퍼 보였고, 줄기에 진 주름도 물을 충분히 주지 않은 탓인 듯했다. 갈증으로 고통받고 있을 다육이를 구제하기 위해, 아니 더 정확히는 내 마음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물 주기를 시작했다. 결과는 너무도 참담했다.
간헐적으로 물을 콸콸 쏟은 게 화근이었다. 주름진 줄기는 오동통해지기는커녕 흙과 맞닿은 밑둥부터 점차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낌새가 좋지 않아 만져보니 이미 흐물거리는 젤리처럼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졌다. 아무래도 과한 물 주기로 식물이 괴사하는 ‘과습’이 원인인 것 같았다. 식물을 잘 키우고 싶었던 내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아,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생명체인데……. 죄책감마저 들었다.
_ 가장 순수하고 공정한 생명체
정원 입구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열대 관엽식물들이 수놓는 오솔길이 펼쳐진다. 오솔길이라기에는 다섯 걸음이 채 안 되는 부끄러운 거리지만, 본격적으로 정원에 들어서기 전 첫 길목으로서 늘 설렘을 가득 안겨주는 길이다. 오후 네 시쯤이면 정원에 햇빛이 화사하게 들기 시작하는데 이때 창 정면으로 드는 햇빛이 오솔길 식물들을 비출 때의 모습은 가히 성스럽다고 표현할 만하다.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남아메리카 열대 지방이 고향인 식물들이 만들어낸 길이기에 우리나라의 들꽃길처럼 오종종하고 아기자기한 매력은 덜하지만 사계절 푸르름 속에서 숨 쉴 수 있게 해준다. 선별 과정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식물들에게서는 기대하기 힘든 매력이랄까!
이윽고 걸음을 더 내딛어 방 깊숙이 들어갈수록 잎의 밀도가 높아진다. 가장 먼저 덩치깨나 하는 수채화 고무나무가 눈에 들어오는데, 물감을 칠한 듯한 잎을 침대 위로 늘어뜨려 자연 암막 커튼을 만들어준다. 수채화 고무나무 옆에는 열대 아메리카의 숲처럼 묘하게 생긴 이국적인 식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미니어처와도 같은 이 작은 숲에는 온전히 내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나는 유독 긴 잎을 좋아하는데, 이런 길쭉한 형태의 잎사귀들은 무성하게 뻗어 있어도 공간을 과하게 잡아먹지 않고, 날렵하면서도 세련되고 정돈된 모습을 연출해주기 때문이다.
이 길쭉이들 사이사이로는 적은 빛으로도 충분히 살아가는 강인한 고사리과 식물들을 배치했다. 반나절의 햇살과 촉촉한 숲의 습도를 먹고 사는 이 고사리들 덕분에 내 방은 작은 열대 숲처럼 울창하면서도 싱그러운 색감으로 물들었다.
_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