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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7527028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5-11-0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내 삶의 계절들, 그 숱한 ‘시작’들 속에서
1부 갈망, 불씨가 되어 도전으로
· 갈망의 씨앗을 품다
· 우연히 찾아온 뜻밖의 기회
· 처음 찾은 대만 땅
· 예정된 이별
· 무모함 속에 일본 유학의 문을 두드리다
· 꿈의 실현은 도전의 서막이었다
· 하루 30분, 내게 돌아온 응원의 증표
· 대만과 다시 이어진 인연
· 가슴이 알려 준 선택
· 안아 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생명
· 결코 닿을 수 없는 깊이와 온기
· 당신이 물려주신 보이지 않는 유산
· 아기를 품고, 꿈을 걷다
· 믿어 주는 한 사람의 힘
· 연구와 육아의 병행 끝에 만난 육체적 한계
· 고통을 잊게 한 몰입
· 기억 너머의 은혜들
· 무모했지만 용감했던 20대의 나에게
2부 대만, 나를 다시 빚어낸 시간들
· 고장 난 몸으로 시작한 대만 생활
· 대가족 속, 나의 대만살이
· 오토바이 면허, 대만살이의 첫 관문
· 문전박대 끝에 찾아온 기회
· 낯선 세계에 던져진 나
· 낯섦과 익숙함 사이
· 현모양처라는 환상
· 기적처럼 지나온 시간
· 세 언어의 틈에서 살아 내기
· 가장 아픈 건 무관심이었다
· 새벽 4시, 내 하루가 시작된다
· 겨울이 두려웠던 날들
· 열심히 하라는, 잔인한 그 말
· 곁에서 나를 지켜 준 조력자
·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회오리바람
· 벼랑 끝에서 명상을 만나다
· 일상이 멈춰 버리고 나서야
· 고통의 크기만큼 성장하다
3부 혼자서 다시, 나로
· 조용히 무너져 가는 일상들
· 나답게 살기 위한 첫걸음
·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별
· 11평, 나의 첫 보금자리
· 상상 속에 먼저 살던 집
· 지난 상처들을 떠나보내다
· 누더기를 쓰고 슬쩍 다가온 기회
· 설렘과 당황이 공존한, 그 첫 대면
· 타인의 이별에서 마주한 나의 이별
· 초록과 함께 시작하는 일상
· 나를 쓰기 시작하다
· 마음이 머무는 곳에 내가 있다
· 콩국수 한 그릇의 깨달음
· 길은, 걷는 사람이 만든다
· 비우며 비로소 채워지는 삶
· 죽음 곁에서 삶을 되묻다
· 부부라는 매듭을 풀어내다
· 또다시 ‘시작’ 앞에 서다
에필로그
나는 날마다 나의 정원사로 살아갈 것이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날 밤, 우리 넷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도로변에 서 있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커피숍도 아닌 사람들 사이 한복판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불쑥 이렇게 말했다.
“대만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계획한 적도,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 말은 마치 오래 준비된 문장처럼 내 안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 진심이 닿았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로부터 대만 어학 연수 자료가 도착했다. 입학 원서와 학교 소개 책자. 인터넷도 드물던 그 시절, 유학은 여전히 먼 이야기였지만 나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신청서를 작성했고, 그해 겨울, 대만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 돌아보면, 그저 물품을 정리하고 판매하던 평범한 하루가 내 삶의 궤도를 송두리째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기회’라기보다 내 안에 오래도록 눌려 있던 ‘갈망’이 마침내 빼꼼히 열린 문 하나를 알아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운명을 바꾸는 건, 거창한 계기가 아니다. 그저 마음 깊은 곳의 간절함에 작은 용기를 더한, 아주 사소한 선택 하나일 뿐이다.
일본의 경영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말했다.
“인간이 바뀌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그 외의 결심은 의미가 없다.”
내 유학 생활은 이 세 가지 변화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결정체였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누리는 사람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
젊은 날의 도전 정신은 세월 속에 조금 바랬을지 모르지만, 그 불씨는 여전히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싶다. 무언가를 익히지 않으면 마음이 스산해지고, 마치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힘이 빠진다. 그건 어쩌면 내 안의 잠재의식이 조용히 보내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내 학생들에게 말한다. 스스로를 너무 일찍 가두지 말라고. 가능성 앞에서 주저하지 말고, 한계를 미리 정해 두지 말라고. 그건 내가 온몸으로 겪고, 시간을 지나며 비로소 깨달은 말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결핍은 단순한 부족함이 아니라, ‘결핍’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삶의 숨은 선물이라는 것을. 나는 20대의 나에게 깊이 감사한다. 그 무모했던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던,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 내딛었던 그 젊은 시절의 내게. 그 용기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는 그 시절의 나에게 진심을 담아 말하고 싶다.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고마워.”
50대에 접어들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서는 것도, 걷는 것도, 누워 있는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통증 속에서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죽기 전 한 달쯤, 이 정도의 고통이 찾아온다면 그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그러니 지금은 제발 나를 좀 놓아 달라고.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는, 무엇보다 ‘건강’을 삶의 가장 앞줄에 세우겠노라고.
우리의 에너지는 배터리와 같다. 때로는 충전이 필요하고, 때로는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그래야 정작 필요한 순간, 온전히 나를 쏟아 낼 수 있다. ‘멈춤’은 결코 정지가 아니다. 그건 다음을 위한 충전이고, 다시 살아 내기 위한 숨 고르기다. 삶에 작은 틈을 내어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유한한 에너지를 가장 지혜롭게 쓰는 방법임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장 잘 사는 길이라 믿어 왔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묻지 않은 채 그저 앞만 보며 달렸다. 어쩌면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일로 메우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주인으로 둔 몸과 마음은 늘 무리했고, 버티고 또 버티다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다짐한다. 앞으로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느리게, 조심스럽게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