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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8150782
· 쪽수 : 104쪽
· 출판일 : 2024-04-30
목차
1부
언어도단言語道斷·12
비애悲哀·13
그그그·14
문턱에서·15
우파니샤드의 가을 ― 송신한 전파·16
화면 속에서 자꾸 되살아나는 백남준 ― 야바위꾼·17
감나무 연리지 ― 니체·18
임신한 마돈나가 뭉크에게·19
길·20
봄, 건조주의보·21
땡볕·22
첫사랑 1 ― 화장花葬하던 날·23
첫사랑 2·24
첫사랑 3·25
첫사랑 4 ― 체로금풍體露金風·26
행복 상표를 찍는 사람들·28
2부
화엄바다 은갈치 1·32
화엄바다 은갈치 2·33
회고사懷古詞·34
청령포 춘설春雪·35
잠을 위한 서시序詩·36
길 위의 잠 1·37
길 위의 잠 2·38
길 위의 잠 3·39
피레네 국경에서 벤야민에게·40
조고각하照顧脚下·41
산국山菊·42
관풍헌觀風軒에서·43
동남쪽 마을에서 서북쪽 하늘을 보다
― 고봉高峰 화상의 게송에 붙여·44
어린 소를 파묻고 나서·45
상실喪失·46
고통·47
저녁 종소리·48
3부
풍경風磬소리 1·52
풍경風磬소리 2·53
풍경風磬소리 3·54
풍경風磬소리 4·55
풍경風磬소리 5·56
그날·57
송인送人 ― 왕유王維 풍으로 K를 보내고 ·58
묵언默言·59
독거노인이 꿈에게 문자질하다 ― 도연명 풍으로·60
노산대에 올라 1·61
노산대에 올라 2·62
자규루子規樓·63
낙화암에서 1 ― 금강정·64
낙화암에서 2·65
우둥불·66
4부
우음偶吟·70
탄금대彈琴臺에서·71
상처 1 ― 피해자들·72
곡자사哭子詞·73
이월二月·74
딸 1·76
난폭한 적막·77
회한悔恨 ― 임재범의 ‘아버지 사진’에 붙여·78
울력·80
도피안사到彼岸寺 26·81
김삿갓 풍으로 ― 불초不肖·82
꿈·83
후기後記·84
저자소개
책속에서
1부
언어도단言語道斷
말이 탁 끊어진 자리에 맑은 바람이 일었다
바람을 좆아 향 내음 그윽 퍼지고, 그 자리에 참말이 조봇이 솟아올랐다
단칼에 말을 자를 줄 아는 이, 누구이신가.
비애悲哀
쓰러져야만 열광하는 세상을 위해
나는 오늘 팔각의 링 위에 누었다
폭발하는 환호성
누우면 이렇게나 편한데, 왜 그리 악착을 떨었던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며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던가
너에게 쏟아지는 저 갈채는
내일은 너도 넘어져야 한다는 공개된 암호
무동을 타고 두 팔을 흔드는 너를 위해
나는 아직 몽롱하게 누워있다
저 환호성이 끝날 때까지.
그그그
망치뼈 속에서 옥수수 잎이 자라기 시작했다
노근란露根蘭도 아닌데
대궁은 억센 뿌리를 드러낸 채
제 발밑에 숨은 뼛조각을 단단히 움켜잡고 있다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던 금붕어는
두 겹으로 접힌 제 아가미를
내 눈앞에 가끔씩 펼쳐 보이다가
어느새 사라지곤 했다
아무도 살아 있는 소음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죽어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 행간 사이에 깨알만 한 날파리 떼가 알을 깠다
부화한 새끼들이 모루뼈까지 무시로 드나들어도
그 눈의 크기에 대해선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이라고만 말하고 싶어 한다
그그그, 라고 속으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