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평화를 여는 역사

평화를 여는 역사

(한중일 3국이 함께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미래)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은이)
휴머니스트
26,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23,400원 -10% 0원
1,300원
22,10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평화를 여는 역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평화를 여는 역사 (한중일 3국이 함께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미래)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동양사일반
· ISBN : 9791170873662
· 쪽수 : 464쪽
· 출판일 : 2025-08-11

책 소개

3국의 근현대사 중에서도 비교적 논쟁이 많은 주제, 역사적 영향력이 큰 문제, 독자의 관심이 높은 사건 등 중요한 쟁점들을 다룬다. 이와 더불어 정해진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을 맺는 글쓰기는 독자가 스스로 다각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목차

서문
이 책을 읽는 여러분께

1부 동아시아의 변동과 근대화

1장 개항과 근대화

1 서양은 어느 날 갑자기 동아시아에 나타난 걸까요?
2 외교 담판은 무슨 언어로 진행되었을까요?
3 민중은 어디에서 ‘서양’을 만났을까요?
4 근대의 민중은 새로운 국가 수립 과정에 어떻게 대응하고 참여했을까요?
칼럼 멕시코의 은
칼럼 민간 종교와 남녀평등
칼럼 만세

2장 전쟁과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성

1 청일전쟁에서 누가 무엇을 위해 싸웠을까요?
2 러일전쟁은 사람들의 세계관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요?
3 일본은 어떻게 타이완을 식민 통치했을까요?
4 일본은 어떻게 조선을 지배했을까요?
칼럼 일본군이 전쟁에 동원한 말
칼럼 정로환의 탄생
칼럼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3장 민중 생활의 변화

1 양복과 단발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2 새로운 교통수단과 전신의 발전은 민중들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3 가족과 양성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4 학교의 등장으로 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배우게 되었을까요?
칼럼 세 나라의 새해 첫날
칼럼 사진의 등장과 민중생활
칼럼 학교 체육 교육의 시작

2부 두 번의 세계대전과 동아시아

1장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아시아

1 제1차 세계대전이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을 민중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2 동아시아 민중은 러시아혁명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3 3 ·1운동과 5 ·4운동에서 꿈꾸었던 세상은 무엇일까요?
4 전쟁을 막으려는 노력은 왜 실패했을까요?
칼럼 아시아의 쌀 소동
칼럼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본 간토 대지진
칼럼 제1차 세계대전에 동원된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중들

2장 동아시아의 총력전과 민중의 저항

1 일본은 왜 계속해서 대외 전쟁을 확대했을까요?
2 전쟁 시기 징병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3 전쟁터에서 여성에게는 어떤 폭력이 가해졌을까요?
4 세 나라 민중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어떻게 저항했을까요?
칼럼 한·중·일이 얽힌 완바오산 사건
칼럼 반전 평화를 노래하다

3장 대중문화와 민중의 삶

1 도미코 가족은 왜 조선으로 건너왔을까요?
2 동아시아의 도시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3 식민지와 전쟁터의 대중은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요?
4 어린이는 총력전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요?
칼럼 《중국의 붉은 별》
칼럼 어린이날
칼럼 유학을 다녀온 신여성, 여성교육에 뛰어들다

3부 현대 세계와 동아시아

1장 전후 국제관계의 변화와 민중

1 8월 15일은 무슨 날일까요?
2 동아시아의 몇몇 나라는 왜 아직도 평화적인 외교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을까요?
3 동아시아에 미군기지가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4 동아시아인들은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칼럼 동아시아의 전통명절
칼럼 평화기념관
칼럼 재일코리안의 ‘국적’

2장 경제성장의 빛과 그림자

1 동아시아 나라들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 경제성장은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었을까요?
3 고학력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요?
4 육아하는 남성은 ‘이상적 남성상’일까요?
칼럼 미투운동
칼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칼럼 동아시아의 신세대

3장 동아시아의 미래

1 세계화는 왜 무한 경쟁을 낳았나요?
2 동아시아 사람들의 안전한 삶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3 어떻게 역사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4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칼럼 이수현
칼럼 스포츠로 가까워지는 남북한
칼럼 국경을 넘어서는 애니메이션, 게임, 케이팝

편집 후기
저자 소개
사진 출처 및 소장처
찾아보기

저자소개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02년 3월 중국 난징에서 열린 제1회 ‘역사 인식과 동아시아 평화포럼’에 모인 한·중·일 3국 참가자들이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공동 역사 교재를 출간하기로 결정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산하 한중일공동역사교재위원회 소속의 학자와 교사가, 중국에서는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를 비롯해 여러 학자가, 일본에서는 학자 및 시민단체, 교사 들이 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2002년부터 4년의 작업 끝에 2005년 《미래를 여는 역사》가 세 나라에서 동시 출판되었다. 이 책은 한·중·일 3국이 처음으로 함께 만든 공동 역사 교재로 동아시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영어·에스페란토어로도 번역되었다. 2006년 11월 일본 교토에서 새로운 공동 역사서 발간에 합의하고, 그 후 수많은 회의와 이메일 논의를 거쳐 2012년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1·2)를 출판했다. 이후로도 한·중·일 3국의 역사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확인하는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 역사 대화를 통한 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 한·중·일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20세기 침략과 저항의 역사에 대한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을 만들기 위해 2001년 4월 시민·사회 단체, 학자, 교사 등이 모여 결성했다.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국가 간 역사 갈등 해결과 평화로운 역사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각종 대중·연구·출판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외 여러 시민·사회·연구 단체와 함께 과거사 청산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역사 인식의 문제는 자라나는 세대의 미래에 관한 문제라는 생각에 중·일과 공동 역사책 편찬, ‘청소년역사체험캠프’, ‘역사 인식과 동아시아 평화포럼’ 등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aphen.net
펼치기

책속에서

사람과 물건, 정보가 집적되면서 개항장에는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신식 도로와 서양식 다리(철교), 하수도, 가스등·전등 등이 설치되고 근대적 건축물이 세워졌습니다. 개항장은 서양과 동아시아가 직접 만나는 창구로서 서양 지식을 전파하고 기독교를 포교하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상하이에서는 1850년 영자신문이, 1861년 중국어 신문이 창간되었습니다. 요코하마에서도 1861년 영자 신문이 발행되고, 1870년에는 최초의 일본어 일간신문이 창간되었습니다. 부산과 인천에서는 일본 거류민을 위한 신문이 발행되었습니다. 개항장은 새로운 정보의 집적지이자 발신지였습니다.
― <1부 1장 3절 민중은 어디에서 '서양'을 만났을까요?> 중에서


오늘날 3국에서 모두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는 ‘만세’는 중국에서 유래한 말로, 처음에는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며 경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 8세기경 일본에 전해져 ‘만자이’, ‘반제이’로 발음되었는데, 지금처럼 양손을 번쩍 들면서 외치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반자이’가 최초로 울려 퍼진 것은 1889년 대일본제국헌법을 공포한 날 제국대학 학생들이 천황과 황후가 타고 있는 마차를 향해 ‘천황 폐하 반자이’를 외치면서부터였고, 이것이 군중에게 파급되었다고 전합니다. … 한편, 한국에서는 1897년 대한제국 성립 당시 ‘황제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 그러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 ‘만세’가 일제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독립운동과 결합하여 1919년 3·1운동의 ‘독립 만세’로 이어졌습니다.
― <1부 1장 칼럼 ‘만세’> 중에서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 대신 ‘신영토’라 불렀습니다. 서양 열강에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식민지는 본국에서 물리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인종과 풍속이 달라 서로 화합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매우 가깝고 인종도 같아 융합하고 ‘동화’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보았지요. 다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동화’는 민족 말살을 의미하는 ‘일본인화’와 다름없었습니다. 사실 일본은 한국을 지배하기 전부터 ‘동화’를 이야기했습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당장 ‘동화’를 이룰 수 없다고 보았기에 조선을 ‘내지’, 즉 식민지 본국인 일본의 한 지방으로 즉각 편입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일본 지배자들은 이를 조선특별통치주의라고 불렀습니다.
― <1부 2장 4절 일본은 어떻게 조선을 지배했을까요?> 중에서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