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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71713486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5-01-15
책 소개
목차
일러두기: 이 책은 ‘허구적 에세이’다
1. 고향: 먼 들판 너머로 떠나다
◦ 거대한 히잡이 덮인 곳, 고향
◦ 개척의 시작,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
◦ 현모양처 말고 나 자신의 이야기
2. 정착: 서울로 향하는 길에 오르다
◦ 스물한 살, 집을 나갔다
◦ 서울 거리 헤매기
3. 500파운드: 투표권과 돈, 둘 중에서
◦ 자유를 가능케 하는 경제적 토대
◦ 다시, 고향
4. 자기만의 방: 이제 영원히 내 것이지요
◦ 자기만의 집
◦ 어디든 집이 될 수 있어
5. 여성과 직업: 글을 써서 무얼 한다고
◦ 변두리에서 낙관하기
◦ 젠더 뉴스레터를 보내는 마음
6. 개척하는 영토: 자신을 거부했던 여행과 경험, 지식
◦ 엄마와 휴대폰
◦ 자동차, 나의 작은 방
7. 관계: 사랑만이 유일한 통역가일까
◦ 욕망되는 존재, 욕망하는 존재
◦ ‘욕망 억누르기’에서 벗어나자
◦ 사랑은 무얼까
◦ 그래서, 어떤 사랑을
8. 사랑: 남성 없이 설명되는 여성
◦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 사랑과 우정
9. 글 쓰는 여성: 그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게 하고
◦ ‘집 안의 천사’ 살해하기
10. 세계: 아무리 하찮아도 주저하지 말고
◦ 고백, 해방의 시작
나가며: 100년 후, 여성은
◦ 집을 떠나고 국경을 넘다
감사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럴 때마다 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과 불화했던 여자들이 쓴 글과 그들이 겪은 삶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여성'이라는 것 외에 어떤 접점도 없는 이들이지만 나는 책 속에서 이 여자들과 만나면서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나처럼 가부장적 사회에 잘 섞이지 않는 여자가 도처에 널렸다는 데 위안 삼았다.
그렇게 가까스로 들어간 안정이라는 틀 안은 따스했다. 무엇보다 평온했다. 내 것 같지 않았으나 탐났다. 그래서 더욱 안정을 타고난 사람인 듯 굴었다. '평범', '보통', '정상' 같은 수식어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애썼다. 좋은 교육과 직업 덕에 얻은 안정이라는 '구심력'은 단숨에 나를 원의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왔다. 나는 원 안에서 이탈하지 않는 하나의 점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시선은 자꾸만 '원심력'에 이끌려 바깥을 바라봤다. 원 안에 있는 것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 어색했다. '정상 각본'에 따라 연기하는 내 모습이 불편하게 여겨졌으나, 따뜻하고 평온한 원 밖으로 쉽게 나갈 수가 없었다.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은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 즉 원 밖에 있음을 직감했다.
서울을 향한 내 마음은 외사랑이었다. 2009년 서울에 도착한 뒤, 한 해 한 해가 흐를수록 이 도시가 빈곤한 나를 밀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착할 수 있을까 불안했고, 거리의 간판이 나를 향해 입을 모아 말하는 듯했다. "어차피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이 거대한 도시에 네 자리는 없을 거"라고. 직장을 갖게 된다고 한들, 온전한 서울 시민의 느낌을 갖는 건 또 다른 의미였다.
대치동 키즈이기는커녕, 제대로 된 사교육 한 번 받은 적 없지만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떡볶이는 좋아했다. 언젠가 봐뒀던 인터넷의 호평을 기억하고 있다가, 과외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상가에 들렀다. 교복을 입은 동네 학생들, 대대손손 근처에서 살아 이 분식집 떡볶이 하나로 가족 에피소드 수십 개는 엮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단란한 가족 손님들 사이에 혼자 자리 잡았다. 떡볶이는 맛있었다. 밀떡을 사용한 소박하고 단조로운 맛이었다. 그리고 '강남 원주민'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