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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천재 고려

외교 천재 고려

(최강대국에 맞선 작은 나라의 생존 전략)

이익주 (지은이)
김영사
1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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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천재 고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외교 천재 고려 (최강대국에 맞선 작은 나라의 생존 전략)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고려시대
· ISBN : 9791173324734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26-01-25

책 소개

뛰어난 현실 감각과 냉철한 자기 인식으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찾은 외교 천재들. 그들의 정보력ㆍ협상력ㆍ대응력은 무엇이 달랐을까? 중립 외교부터 핑계ㆍ간보기 외교까지,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해 번영을 이룬 ‘고려식 생존 전략’을 파헤친다.
“작은 나라의 생존은 외교에 달려 있다!”

중립 외교부터 핑계ㆍ간보기 외교까지,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해
번영을 이룬 ‘고려식 생존 전략’을 파헤친다

“당 태종도, 몽골도 고려를 쉽게 꺾지 못했다” _쿠빌라이 칸
“혼란의 시대, 나라를 지키는 길이 바로 고려에 있다” _광해군


미중 패권 경쟁이 구조화되고 국제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는 오늘, 대한민국의 외교는 어느 때보다 복잡한 선택 앞에 서 있다. 동맹과 균형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외교 천재 고려》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려의 외교에서 찾는다. 군사 강국도 제국도 아니었지만 송ㆍ거란ㆍ금ㆍ몽골 등 당대 최강대국들 사이에서 싸우고, 버티며, 타협의 길을 걸어왔던 고려. 이 책은 고려가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 현실적인 외교 전략으로 생존과 번영을 이루어냈는지를 살피며, 오늘날 한국 외교가 마주한 현실을 통찰하는 외교 교양서다.
저자 이익주 교수는 오랜 시간 고려 정치사와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를 연구해온 역사학자다. 그는 고려 외교의 본질을 한마디로 “자신을 과소평가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한다. 고려는 침략을 받으면 일단 싸우며 결코 비굴하지 않았고, 몽골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서도 30년간 항전을 이어갔다. 동시에 승리에 도취되지도 않았다. 귀주대첩으로 거란에 대승한 직후, 고려는 먼저 사신을 보내 상국에 대한 예를 표하며 전쟁을 종결했고, 이후 약 100년간의 평화 속에서 문화를 꽃피웠다. 승리와 패배의 순간마다 감정을 배제하고 실리에 따라 움직였던 이 냉철함이, 수많은 제국이 흥망을 거듭하던 시대에 고려가 500년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이 책은 고려의 외교적 선택들을 개별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당대 국제 질서와 강대국 간 역학, 정치적 조건 속에서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고려의 외교를 후대의 가치 판단이나 명분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전쟁을 피하고 국가를 지키기 위한 선택의 문제로 접근함으로써 당시 판단의 현실성과 전략성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거란 침략에서 몽골과의 30년 전쟁까지, 서희의 외교 담판에서 태자와 쿠빌라이의 만남과 협상까지, 기황후의 부상에서 친명ㆍ반원 격돌까지, 그리고 고려 말 성급한 노선 결정에서 비롯한 실착까지. 고려의 운명을 만든 외교사의 결정적 장면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전쟁은 힘의 싸움이지만, 외교는 지혜의 싸움이다!
미중 패권 사이에 선 지금, 고려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이 책은 고려의 역사를 ‘외교’라는 렌즈로 다시 읽는다. 우리가 오늘날 고려 외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고려는 두 개 이상의 강대국을 동시에 상대했던 다원 외교의 경험을 축적한 보기 드문 국가였고, 바로 그 외교를 통해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왕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고려는 10~11세기에는 거란과 송을, 12세기에는 금과 남송을 동시에 상대하며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했다. 이는 한 나라만을 상대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판단을 요구한다. 동아시아에서 왕조 교체와 전쟁이 끊이지 않던 격변의 시대에도 고려가 하나의 왕조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전쟁을 피하고 국가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 외교에도 실패는 있었다. 고려 초에는 송과 거란의 대립 속에서 힘의 이동을 간과해 침략을 불러왔고, 말기에는 원과 명이 교체되는 국면에서 중립 외교의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 책은 이러한 실패까지 함께 조명함으로써, 시행착오와 한계를 포함한 역사적 경험으로 제시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 환경은 고려 시대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현실에서, 다원 외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렇기에 고려의 외교는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이다. 고난과 선택, 균형과 실리, 그리고 실패와 한계 속에서 고려가 500년 동안 던져온 질문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전쟁을 멈추고 영토를 획득한 사대 전환의 승부 - 서희의 강동 6주

고려 초기 동아시아는 거란과 송이 대립하고 있었고, 고려는 태조 이래 친송ㆍ반거란 정책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993년(성종 12), 거란이 소손녕을 지휘관으로 삼아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침공해오면서 위기를 맞았다. 협상에 나선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분명히 하며, 오히려 거란이 차지하고 있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더 나아가 여진이 길을 막고 있어 거란에 사대하지 못한다며, 압록강 이북 영토를 고려의 땅으로 인정한다면 사대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건국 이후 70여 년간 유지해온 반거란 정책을 전환하고, 송과의 책봉-조공 관계까지 정리하겠다는 중대한 결단이었다. 이 말에 거란은 철수했고, 고려는 강동 6주를 얻었다. 이후 고려는 송에 거란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함으로써 송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하는 명분까지 확보했다. 전쟁 없이 영토를 넓히고 자국의 입지를 재조정한 이 과정은, 국가의 생존과 현실적 이익을 우선한 고도의 전략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승리한 뒤 물러서며 평화를 지켜낸 탁월한 절제 - 강감찬의 귀주대첩

고려는 994년 거란과 책봉-조공 관계를 맺고 송과 단교했지만, 문화ㆍ경제적 필요와 거란에 대한 불신으로 송과의 비공식 교류를 이어갔고, 1003년에는 송에 거란 공격을 위한 군사 지원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결국 1010년 거란 황제 성종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침략에 나섰다(1차 침략). 고려는 개경이 함락되는 위기를 겪었으나, 국왕의 친조를 조건으로 협상을 벌여 전쟁을 피했다. 그러나 고려가 친조를 이행하지 않자 거란은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한 고려와 거란 사이에 국경 충돌이 이어졌다(2차 침략). 1018년 거란의 3차 침략이 시작되었고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은 흥화진과 귀주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고려는 승리에 취하지 않았다. 먼저 거란에 사신을 보내 책봉-조공 관계 회복을 요청했고, 비로소 양국 관계는 안정되었다. 1125년 거란 멸망까지 100년이 넘는 평화가 유지된 것이다. 전쟁에서 이긴 뒤 스스로 물러서며 질서를 재정립한 이 선택은, 고려가 자신의 힘을 정확히 인식하고 전쟁을 종식한 탁월한 절제 외교의 전형이다.

▪얻은 것을 내려놓아 국력을 보존한 대담한 결단 - 윤관의 동북 9성

1107년 고려는 윤관의 지휘 아래 북쪽의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개척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곳은 지형이 험하고 넓어 방어와 보급이 어려웠고, 여진의 지속적인 저항으로 병력 손실과 국력 소모가 컸다. 또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대규모 군대의 주둔이 필수적인데, 기근과 전염병까지 겹치며 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고려는 1109년 어렵게 얻은 동북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지킬 수 없는 것은 내려놓는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에 따른 선택이었다. 여진은 영토를 되돌려받는 대신 고려에 조공을 바치고 적대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뒤 여진이 금나라를 세우고 거란과 송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동아시아의 패권국이 되었다. 만약 고려가 동북 9성을 고수하며 여진과 계속 충돌했다면, 이후 더 큰 위기에 직면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질 수 있는 것보다 지킬 수 있는 것을 택한 이 결단을 통해, 고려 외교가 얼마나 냉철하고 실리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버티며 협상해 왕조를 유지한 핑계ㆍ간보기 전략 – 몽골과의 30년 항쟁

13세기 세계 최강대국 몽골제국의 등장 이후, 고려는 30년 가까이 전쟁을 치렀다. 몽골이 요구한 것은 막대한 공물과 국왕의 친조였다. 그러나 친조는 고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전쟁은 시작됐다. 고려가 최강대국을 상대로 살아남은 전략은 전쟁과 협상 병행에 있었다. 몽골이 침략하면 싸우고, 압박이 거세지면 요구를 수용하는 듯 행동해 몽골군을 철수시킨 뒤, 다시 협상에 나서 조건을 바꾸었다. 과도한 공물과 인질 요구에는 받아들이는 척하며 시간을 벌고, 공물을 대폭 줄이거나 인질을 보내지 않는 조건으로 재협상을 시도했다. 몽골이 이를 거부하자 강화 천도로 장기전에 대비했고, 전쟁이 벌어지면 또다시 협상으로 국면을 전환했다. 몽골이 최소한 강화도 밖에서 사신을 맞으라고 요구하자 북쪽 해안까지, 다시 대안(對岸)까지 나가는 성의만 보였다. 친조 대신 태자의 입조를 제안했다가, 몰래 다른 왕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 전쟁은 침략과 철수, 수용과 재협상이 반복된 과정이었다. 버티고 간보는 외교 방식으로 고려는 오랜 전쟁에서도 끝내 국가를 지켜냈다.

목차

들어가며_ 천 년 전 고려가 보여준 생존과 번영의 지혜
책을 읽기 전에_ 국제관계사로 다시 읽는 세계 질서와 외교

1장 고려 전기의 다원 외교

1. 고려의 첫 시험대, 거란의 등장
당의 몰락, 새로운 국제 질서의 시작
고려는 왜 거란을 거부했나
서희의 담판, 전쟁을 막고 영토를 넓히다
전쟁과 외교의 균형, 고려가 평화를 지킨 방법

2. 황제국을 꿈꾸다
두 얼굴의 군주, 다원적 천하관 속 고려
다원 질서에서 황제를 꿈꾼 나라들
해동 천하에서 소중화로, 천하관의 변화

3. 형제인가 군신인가, 고려와 금의 외교
12세기 동아시아 변화와 동북 9성 개척
거란에서 금으로, 사대의 전환
실리를 취하고 문화를 꽃피운 고려

4. 고려, 조선의 평행 이론
역사는 반복되는가? 고려의 성공과 조선의 실패
정묘호란에서 병자호란까지, 길 잃은 조선의 외교
두 개의 눈으로 역사를 봐야 하는 이유

2장 고려와 몽골제국

1. 고려와 몽골의 전쟁
몽골제국은 어떤 나라인가
첫 만남, 반목하는 형제 관계
몽골의 침략, 고려의 30년 항쟁
대몽 항쟁의 그늘, 민란과 반역

2. 고려와 몽골의 강화
고려 태자와 쿠빌라이, 운명을 바꾼 만남
벼랑 끝 고려의 줄타기 외교
부마고려국왕의 탄생, 권력 지도를 바꾼 몽골 공주와의 혼인
충렬왕의 친조 외교, 원칙을 세우다

3. 쿠빌라이의 외손자, 이질부카 충선왕의 활동
충렬왕과 충선왕, 부자간 권력투쟁의 서막
원에서는 실력자로, 고려에서는 개혁 군주로
개인 능력에 의존한 충선왕의 정치
충선왕이 불러온 빛과 그림자

4. 기황후, 친원 세력의 등장
친원파란 누구인가
국가 질서를 무너뜨린 다양한 친원파
고려를 장악한 기황후와 그 일족의 횡포

5. 공민왕의 반원 운동과 그 후
몽골제국 멸망의 서막이 된 반원 운동
홍건적 침략, 성급했던 친명반원 노선
신진 사대부, 실리보다 명분을 택하다
외교 실패와 고려의 멸망

마치며_ 역사 공부는 왜 필요한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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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익주 (편저)    정보 더보기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고려사를 중심으로 정치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를 연구해온 역사학자. 학계와 대중을 잇는 가교로서 TV와 강연, 유튜브를 통해 쉽고 깊이 있는 역사 해설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JTBC 〈차이나는 클라스〉, tvN 〈어쩌다 어른〉 등 다수의 교양 프로그램과 각종 대중 강연을 통해 고려사를 비롯한 한국사를 생생하고 명료하게 풀어내며 지식의 깊이와 역사의 재미를 함께 전해왔다. 또한 유튜브 채널 〈이익주는 역사〉를 운영하며, 역사 속 사건과 인물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과거의 경험을 오늘의 국제 정세와 연결하는 통찰력 있는 콘텐츠로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주요 저서로 《정도전》, 《이색의 삶과 생각》, 《정치가 정도전의 재조명》(공저), 《고려 역사상의 탐색》(공저),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의 한중관계사》(공저) 등이 있고, 고려 후기 정치사와 국제관계사 분야의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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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년 12월, 거란의 3차 침략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군대가 쳐들어왔고, 이에 맞선 고려군의 지휘관은 강감찬이었습니다. 강감찬은 안주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선발대를 강동 6주 중 하나인 흥화진에 보내 거란군에 첫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거란군이 개경을 향해 내려오자 별동대를 보내 개경을 구원하게 했습니다. 거란군은 개경 근처까지 접근했지만 결국 후퇴하게 되었는데, 이때는 강감찬이 귀주에 진을 치고 후퇴하는 거란군을 막아 싸웠습니다. 여기서 대승을 거두었고, 이것이 1019년 2월 1일에 있었던 귀주대첩입니다. 당시 살아서 돌아간 거란군이 고작 수천 명에 불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고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둔 이듬해인 1020년 2월, 고려는 거란에 사신을 보냈습니다. “이달에 이작인을 보내 표문(表文)을 받들고 거란에 가서 번국(藩國)을 칭하고 공물 바치기를 예전처럼 하기를 요청하였다.”


1117년에는 송이 여진과 소통하기 위해 고려에 중재를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거란과 금, 송의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고려는 이 역시 거절했습니다. 당시 정세 속에서 고려의 중립 선언은 금을 지원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116년 고려는 금에 영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100여 년 전 거란이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고려 영토로 인정하긴 했지만, 압록강 가운데 있는 하중도인 내원과 강 안쪽의 보주는 내주지 않았거든요. 고려는 오랫동안 이 문제로 거란과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영토로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금나라 군대가 이 지역을 공격해 거란군을 몰아내자, 고려는 재빨리 금에 접근해 이 땅이 본래 고려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금 태조 아쿠타는 “너희가 스스로 차지하라”고 답했지요. 고려가 그 지역을 무력으로 차지해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으로, 사실상 고려의 요구를 수용한 셈입니다. 고려가 거란과 금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데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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