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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73324925
· 쪽수 : 184쪽
· 출판일 : 2026-02-12
책 소개
《딜리버》는 기후 붕괴 이후 상층부와 하층부로 분리된 세계를 배경으로, 부와 권력이 어떻게 구조화되고 고착되는지를 그려 낸 소설이다. 이야기 속 세계에서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는 곧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짓는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어, 그 경계를 좀처럼 넘어설 수 없다. 이러한 설정은 먼 미래의 상상이기보다, 이미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익숙한 현실의 모습과 겹쳐진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출발선에 놓이고, 보이지 않는 장벽 앞에서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경험은 더 이상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이러한 사회 구조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 하층부를 달리며 배달로 생계를 이어 가는 소년 윤찬의 일상을 따라가며, 불평등이 어떻게 생활 속 규칙으로 작동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윤찬에게 ‘딜리버’라는 직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선택지가 제한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이야기 속 계급 사회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질서이며, 그 질서 속에서 인물들은 이미 좁아진 선택지 안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딜리버》는 이처럼 현실과 닮아 있는 세계관을 통해 오늘날 청소년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안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윤찬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람다움의 가치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 작품이 던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사람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이다. 《딜리버》의 세계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기록이나 오락이 아니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금의 세계가 유일한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 이야기는 가장 먼저 통제되고, 가장 철저하게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이야기가 남아 있는 한, 세계는 완전히 고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찬이 의뢰받은 ‘제목 없는 책’은 바로 이 금기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존재다. 책은 읽히는 것뿐 아니라 존재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물건이며, 그것을 전달하는 행위는 곧 세계의 규칙을 거스르는 선택이 된다. 소설은 말미에 이르러서야 그 이유를 알 게 하지만, 상층부 사람들이 왜 책을 두려워하는지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가 사라진 세계가 얼마나 단단하게 굳어 있는지를 보여 주고, 그 속에서 독자는 이야기의 부재가 만들어 내는 공허와 정체를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된다. 상상하지 않는 사회, 다른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 세계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변화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딜리버》는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전하는 행위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가치임을, 세계가 그것을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드러낸다.
속도감 있는 추격 속에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완성되는 성장
《딜리버》는 추격과 액션이 중심이 되는 장르 소설의 외형을 갖고 있다. 윤찬과 자주가 책을 전달하기 위해 달리는 동안, 소설은 숨 가쁜 도주와 추격을 쉼 없이 이어 간다. 폐허가 된 도시,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공간을 가로지르는 전개는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단숨에 끌어들이며 읽는 동안 속도를 늦출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달리기는 단순한 생존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달린다는 것은 선택을 유예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태도이기도 하다.
윤찬과 자주는 이 추격의 과정 속에서 단순히 더 강해지거나 빨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전달하고 있는 것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만을 인식한 채, 멈출 수 없는 선택을 이어 간다. 그 선택이 무엇을 바꾸는지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의 시선에서 점차 또렷해진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딜리버》가 그려 내는 성장은 누군가를 이기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규칙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소설은 액션과 성장 서사를 분리하지 않고, 달리고 움직이는 순간들 자체를 인물의 변화로 축적해 가며 ‘움직임’을 성장의 언어로 사용한다.
이야기는 세계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
《딜리버》가 끝난 뒤 독자에게 남는 것은 사건의 결말보다 질문이다. 이야기를 통제함으로써 유지되는 세계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 그리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행위는 어떤 책임을 동반하는가. 이 소설은 이야기를 지우려는 세계와 그 이야기를 끝까지 전달하려는 개인을 대비시키며, 작은 선택 하나가 세계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청소년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독자층을 한정하지 않는다. 청소년 독자에게는 자신의 목소리와 선택이 지닌 의미를, 성인 독자에게는 이야기와 상상력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딜리버》는 누군가가 정해 놓은 질서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단단하게 전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은, 이 세계를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다시 쓰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끝까지 남긴다.
목차
모든 걸 아는 소녀 · 20
잔인한 추격자와 다정한 도망자 · 46
포기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 74
도서관의 주인 · 96
세계의 비밀 · 122
이야기 전달자 · 158
에필로그_이야기를 전하는 소녀 · 174
작가의 말 · 180
저자소개
책속에서
상층부 사람들이 자연재해를 피해 하늘로 향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세상의 모든 책을 없애는 거였어. 너도 본 적 없을 거야. 책이란 걸. 형태와 내용을 떠나 그것이 읽을 수 있거나 들을 수 있는 거라면 전부 불태우거나 삭제했어. 그렇게 한 이유는 하나야. ‘제목 없는 책’ 한 권이 이 세상을 리셋할 수 있다는 예언 때문이었어.
화약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체이서도 거기엔 제대로 반응했다. 움찔하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대장은 그 틈을 타 체이서의 배를 발로 차면서 빠져나왔다. 이제 체이서의 목표물은 바뀌었다. 그 괴물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가방에서 또 다른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양쪽 끝이 전자 자석으로 된 올가미였다. 나는 그걸 체이서를 향해 던졌다. 방향과 세기가 적당했다. 바닥에 떨어졌다가 통 하고 튀어 오른 올가미는 체이서의 두 다리를 묶으며 꽉 맞물렸다. 그 괴물은 순간 움찔했고, 곧 균형을 잃은 채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지하,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냥 지하실이라 불러서는 안 되는 그런 공간이었다. 눈이 편안해지는 주황색 불빛이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고, 사방의 벽면과 그 사이사이에는 까마득히 높은, 고개를 한껏 뒤로 젖어야 할 정도로 큰 구조물이 서 있었다. 갈색인 것으로 봐서 나무로 만든 것 같았다. 더 중요한 건 그 구조물에 뭔가가 가득 채워져 있다는 거였다. 빼곡하게 들어찬 그건 전부 책이었다. 자주가 가지고 있는 제목 없는 책과 똑같은 모양새였다. 그런 책이 수백, 아니 수천, 아니 수만 권은 있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