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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양윤옥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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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도쿄 기담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85014562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14-08-09

책 소개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권. 평범한 등장인물들이 여느 날과 같은 일상에서 맞닥뜨린 트릿한 순간 혹은 빛과 온기가 결락된 틈에서 포착해낸 불가사의하면서도 기묘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목차

우연 여행자 _007
하나레이 해변 _045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 _083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 _121
시나가와 원숭이 _159

저자소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1982년 『양을 쫓는 모험』으로 노마문예신인상, 1985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했다. 1987년 『노르웨이의 숲』을 발표하고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1996년 『태엽 감는 새 연대기』로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해변의 카프카』가 당시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2009년 『1Q84』가 한일 양국의 서점가를 점령하며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7년 『기사단장 죽이기』, 2023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등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50여 개 이상의 언어로 출간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2006년 체코의 프란츠 카프카 상, 2009년 이스라엘 최고의 문학상인 예루살렘상, 2016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photo ⓒ K. Kurig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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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옥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2005년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교통경찰의 밤》 《악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Q84》, 히라노 게이치로의 《본심》 《한 남자》,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오카자키 다쿠마의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시리즈, 렌조 미키히코의 《7인 1역》 《열린 어둠》 《백광》, 온다 리쿠의 《몽위》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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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녀는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여름철 잠시 지나가는 비가 도로 위를 검게 적시고 있었다. 도로는 정체되어 택시가 짜증스럽게 클랙슨을 울렸다.
“저기 저 아가씨는 여자친구?”
“네에. 아, 아뇨, 현재로서는 발전도상이에요.” 땅딸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꽤 예쁘장한데? 너한테는 좀 아깝다. 너랑 안 잔다고 튕기는 거 아냐?”
그는 그만 천장을 우러러보았다. “여전히 심한 말씀을 휙휙 던지시네. 근데 실은 그렇긴 해요. 뭔가 맞춤형 어드바이스 좀 해주세요. 그녀와의 관계를 급 발전시킬 만한 어드바이스.”
“여자와 잘 지내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어. 첫째, 상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줄 것. 둘째, 옷차림을 칭찬해줄 것. 셋째, 가능한 한 맛있는 걸 많이 사줄 것. 어때, 간단하지?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된다면 얼른 포기하는 게 좋아.”
“그거 엄청나게 현실적이면서도 쉬운데요. 수첩에 적어도 괜찮죠?”
“괜찮기야 하지만, 그 정도쯤은 머리로 기억할 수 없니?”
“아뇨, 닭하고 비슷한 정도라서 세 발짝만 걸어가면 죄다 까먹어요. 그래서 뭐든 메모해두죠. 아인슈타인도 그랬다던데요?”
“아인슈타인?”
“깜빡하는 건 문제될 거 없어요. 아예 잊어버리는 게 문제죠.”
“그래, 뭐든 너 좋을 대로 해.” 사치는 말했다. _<하나레이 해변>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현기증이 나서 의자에서 일어날 수도 없다고요. 그래서 남편은 면도도 않고 옷만 갈아입은 채 아래층 시어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아침식사 준비를 해달라고 남편이 나가는 길에 나한테 얘기했어요.”
“남편께서는 어떤 옷차림이었습니까?” 나는 그렇게 질문했다.
그녀는 다시 코를 슬쩍 만졌다. “반소매 폴로셔츠에 치노팬츠. 셔츠는 진한 회색이고 바지는 크림색이에요. 둘 다 제이크루 온라인매장에서 구입했어요. 남편은 근시여서 항상 안경을 씁니다. 아르마니 금속테 안경이에요. 신발은 회색 뉴밸런스. 양말은 신지 않았어요.”
나는 그 정보들을 메모지에 낱낱이 기록했다.
“키와 몸무게도 알고 싶으세요?”
“네,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나는 말했다.
“키는 173센티, 몸무게는 72킬로쯤이에요. 결혼 전에는 62킬로밖에 안 되었는데 십 년 동안 살이 좀 쪘어요.”
나는 그 정보도 메모했다. 그리고 연필이 뾰족한지 아닌지 확인하고 새 것으로 바꿨다. 새 연필이 손에 익숙해지게 몇 번 쥐어보았다.
“이야기를 계속해도 될까요?” 여자가 물었다.
“네, 말씀하세요.”
여자는 다리를 바꿔 포개얹었다.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팬케이크를 구우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일요일 아침에는 항상 팬케이크를 굽곤 했으니까요. 골프하러 나가지 않는 일요일에는 곧잘 팬케이크를 마음껏 먹었죠. 남편이 팬케이크를 좋아하거든요.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도 곁들여서.”
몸무게가 10킬로나 불어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물론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십오 분 뒤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어머니가 대충 안정되셨으니까 지금 계단으로 집에 가겠다, 가는 대로 먹을 수 있게 아침을 준비해달라, 배가 고프다, 라고 남편은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곧바로 프라이팬을 달궈 팬케이크를 굽기 시작했어요. 베이컨도 볶았고요. 메이플시럽도 마침맞게 데웠습니다. 팬케이크는 결코 복잡한 요리는 아니지만, 순서와 타이밍을 정확히 맞춰야 해요.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팬케이크는 접시 위에서 점점 식어가고. 그래서 시어머니 집에 전화를 했어요. 남편이 아직 거기에 있는지 물어보려고요. 벌써 한참 전에 돌아갔다, 라고 시어머니가 얘기하시더군요.”
그녀는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조용히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자는 스커트 무릎 위에 있는 형이상학적인 모양의 가공의 먼지를 손으로 툭툭 털어냈다.
“남편은 그길로 사라졌어요. 연기처럼. 그뒤로 전혀 아무 소식도 없어요. 24층과 26층 사이의 계단 중간에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_<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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