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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85051482
· 쪽수 : 468쪽
· 출판일 : 2014-04-16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스티븐!”
인생에는 그런 순간이 너무나 많다. 순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만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물어본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거야?” 유일하고 솔직한 대답은 이렇다. “나도 몰라.” 케이트가 그 순간에 생각해낼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였다. 케이트는 죽어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날 밤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때 케이트는 절망에 빠져서 감기연구소 내부를 헤매며 연인을 찾아다녔다. 그때 그를 발견했다면 케이트는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딱 지금처럼.
하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길 건너에 있는 남자는 움찔하지도 않고, 표정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 사람은 가만히 서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어딘가를 향해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는 세로줄 무늬가 들어간 회색 재킷과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손질하지 않아서 안경테에 닿을 듯 말 듯한 머리카락이 천천히 흔들거렸다. 케이트는 그를 지켜보다가 거울에서 보곤 하는 세월의 흔적들을 발견해냈다. 눈가의 잔주름, 웃음의 역사가 담긴 입가의 팔자주름, 슬픔의 유산이 새겨진 이마의 주름들. 남자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자 약간 벗어진 이마가 보였다. 하지만 스티븐이 분명했다. 그럴 리 없는데도 그랬다.
“괜찮으세요?” 케이트가 물었다.
폴은 대답하는 대신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접힌 종이를 꺼냈다. 폴은 그것을 케이트에게 건네지 않고 손에 든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케이트는 폴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굴러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스티븐도 가끔 그러곤 했다.
폴이 말했다. “그쪽 이름이 케이트라는 것을 듣자마자 생각나는 게 있었어요.”
“스티븐이 제 얘기를 했나요?”
“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그동안 계속 그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맞아요. 당신 이름을 듣자마자 알았어요. 난 집으로 가서 내가 상상했거나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냈죠. 검정 볼펜이 맞았어요.”
“무슨 얘긴지 모르겠네요.”
폴이 접힌 종이를 두드렸다. “걔가 죽기…… 화재가 나기 며칠 전에 나에게 편지를 썼어요. 거기에 당신 이름을 언급했죠.”
“그 편지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고요?”
“스티븐이 남긴 건 전부 다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 편지는…… 그러지 않았더라도 남겨뒀을 거예요.”
“왜요?”
폴이 편지를 건넸다. “읽어보면 알 거예요.”
케이트는 편지를 받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 손끝이 닿자마자 전율이 일고 몸이 떨렸다. 유령이 그녀의 몸을 건드린 것 같았다.
존은 미셸을 바라보면서 두 손으로 그녀의 목을 감쌌다. 미셸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일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미셸을 죽이면 일이 복잡해질 것이다. 존이나 그가 타고 온 차는 감시 카메라에 찍혔을 게 분명했다. 경찰이 그의 뒤를 쫓을 수도 있다. 존은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발목을 잡히는 것은 싫었다. 특히 지금 이 순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려는 참에 방해를 받는 것이 싫었다. 케이트를 찾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건트가 지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존은 손을 치우고 아랫도리의 통증을 무시하며 일어섰다.
“왜 그러세요?” 미셸이 물었다.
“가봐야겠습니다.”
존은 혼란에 빠진 미셸을 침대에 그대로 둔 채 문으로 향했다. 어지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케이트를 마지막으로 본 게 16년 전이었건만 아직도 그녀만 떠올리면 마음이 흔들렸다.
존은 케이트를 사랑했다.
존은 케이트를 증오했다.
존은 케이트를 원했다.
존은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