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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5153452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21-10-19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여행이란 무엇인가
1장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모르는 것과 위험한 것은 달라
페루 고산으로 살러 가다
잉카 흙으로 빚어진 마을, 윌카와인
케추아문화를 지키는 넬슨 가족
원주민과 도움 주고받는 법
헬퍼의 일: 라마 돌보기
생명의 냄비, 파차망카
대지와의 연결, 산 뻬드로 선인장
뭐든지 척척 해내는 페루의 어머니
2장 아마존은 나를 받아들일까?
정글 속 프랑스 커뮤니티가 있다고?
아마존은 누구의 것인가?
전기 없는 인티에 온 걸 환영해
정글 생활: 사포질과 페인트칠
정글에서의 의식주: 나를 내려놓다
또 다른 정글로 향하다
나무배로 14시간 항해
파카야사미리아국립공원
불편할수록 자연과 가까워진다
3장 지구를 응원하는 사람들
닮고 싶은 노푸의 길
플라스틱 없는 삶
콜롬비아의 친환경 농장
닭은 노동의 대가로 달걀을 준다
변화는 외부가 아닌 나로부터
자기 원 안에 우뚝 선 목동
스페인 게이 커플, 기예르모와 조엘
후안이 건네준 씨는 잘 자랄까
유기견 포커의 죽음
지구 건너편에서의 후원
시골의 야인, 다니엘
달콤한 대지, 티에라 둘세
에코벽돌과 퍼머컬처
외로운 왕국의 여행자
좋은 사람을 위한 위로
4장 도시 속에서 자연과 살아가기
대도시에서 호스트 찾기
뉴욕의 만능 할머니, 바바라
왜 이곳은 편하지 않을까
쓸모없는 것과 쓸모 있는 것
코로나바이러스와 마스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사람이 자라는 공공도서관
자원봉사: 뉴욕 퇴비 프로젝트
팬데믹으로 인간이 멈춘 사이
에필로그: 세상이 다시 이어지는 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헬프엑스로 마주한 지구 반대편 세상
헬프엑스가 여행 경비를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는 방식임은 분명해요. 보통 여행 경비는 대부분 숙박비와 식비니까요. 제가 헬프엑스로 여행하면서 쓴 돈이 얼마인지 들으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처음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한 달에 50만 원 정도 썼고, 남 아메리카에서는 한 달에 많아도 20만 원을 넘기지 않았어 요. 특이하게도 페루, 아니 남아메리카에는 헬프엑스라고 하더라도 약간의 비용(하루 평균 7천~8천 원 정도)을 받는 호 스트가 많은데, 그마저도 받지 않고 순수하게 ‘교환’하는 친환경 농장에 머물렀을 때는 한 달에 10만 원도 채 들지 않았어요. 저도 결산해보고 놀랐답니다.
하지만 단지 비용을 아끼는 방법으로만 헬프엑스를 대하면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고도 유리 자르는 도구로만 쓰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헬프엑스는 단연코 그 이상의 무엇이니까요. 헬프엑스로 여행하면서, 저는 ‘세상 은 넓다’라는 표현이 결코 진부한 말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상상할 수조차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봤고, 그들과 제가 다르지 않음을 마음 깊이 느꼈지요. 헬프엑스로 여행하며 보고 들은 ‘삶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경험보다도 절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도와드릴까요? 먼저 다가가야 해
헬퍼로서 호스트와 좋은 관계를 맺는 첫 번째 팁은 이쪽에서 먼저 ‘도와줄까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때는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진정한 ‘도움’이 되니, 내 쪽에서도 기분이 좋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먼저 돕겠다고 하는 편이 낫다. 그런 일이 쌓이면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두 번째 팁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정확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하기 싫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아니라면 일단 하루 정도는 열심히 해보고, 그래도 여전히 하기 싫으면 그때 가서 이야기한다. 또 왜 하고 싶지 않은지 ‘예의 바르게, 우회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직장에서 일할 때도 물론 그렇지만 헬퍼에게는 무엇보다 자존감이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좋은 관계를 지속하며 오랫동안 머문 곳은 모두 헬퍼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했던 곳이었다.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공짜로 먹고 자는 사람을 헬퍼라고 생각하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은 헬프엑스 정신에 맞지 않는다.
헬퍼는 단지 노동력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헬퍼는 ‘외부인의 시선’을 가져다준다. 건강한 자존감으로 무장한 헬퍼는 여행자의 유연함과 창의성, 외국인의 신선한 관점을 선물처럼 가져온다. 현명한 이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관점, 바로 ‘낯설게 보기’다. 호스트는 헬퍼의 이러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해야 한다. 헬퍼도 자신의 강점을 정확히 알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바에는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마음이 가는 다른 일을 열심히 돕는 편이 낫다.
세 번째 팁은 ‘호스트 물건을 내 물건처럼’ 소중히 쓰는 것.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넬슨은 물건을 낭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면 휴지와 물은 개인적으로 사서 쓰란다. 처음에는 야박하다 싶었으나 곧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를 오래 집에 들였을 때 소모품은 개인이 알아서 구매해 쓰길 바랐다. 이를테면 세탁 세제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 소유로 생각해야 아끼는 법이다. 조금 나아간 생각이지만, 호스트의 물건도 그럴진대 하물며 지구는 어떻겠는가.
전기 없는 정글에 온 걸 환영해
페루 여행을 하면서 웬만한 비위생에는 단련되었다고 생각했건만, 이 도미토리는 내가 허용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우물쭈물할 새가 없었다. 어둠은 이미 시시각각 몰려오고 있었다. 프랑스 신입 A와 벨기에 신입 B는 이미 준비해온 시트를 씌워 잠자리를 만들고 모기장까지 완벽하게 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든.
짐을 풀기 시작했다. 내 평생 이렇게 헤드랜턴이 소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어둠은 삽시간에 온 천지를 덮쳤고 불빛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핸드폰 손전등을 켰지만 다른 한 손만으로 무엇을 하기는 너무 불편했다. 세워두면 쓰러지고 줄로 매달자니 자꾸만 360도로 돌아가는 통에 눈이 부시기만 할 뿐 정작 필요한 곳에는 불을 비추지 못했다. 어둠에 눈이 적응하는 일만 해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시트 대용으로 사용하려던 우비와 담요는 더러운 매트리스를 덮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밖으로 나가 “누구 시트 남는 사람 없어요”라고 소리쳐야 했다. 다행히 V가 마침 깨끗하게 빨았다며 시트 하나를 빌려줬다. 너무 어두워서 짐 정리는 언감생심이었다. 간신히 갈아입고 잘 옷과 세면도구만 꺼내두고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밖으로 나왔다. E와 다른 헬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