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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85346137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15-05-10
책 소개
목차
왜란의 한가운데에서
시간을 넘어서
보모상궁이 되다
간택령
수라간 생활
세자와 궁녀
마마에 걸리다
국혼 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녀석은 주변 환경이 익숙하지 않은지 좁은 서재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내게 물었다.
“여기는…….”
“아, 알아. 그 질문 나올 줄 알았어. 지금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 거지?”
계속되는 내 반말이 마음에 안 드는지 녀석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진다. 뭐, 차림새를 보아하니 적어도 조선시대 양반이다. 신분을 가늠할수 없는 여자의 반말이 곱게 들릴 리가 없을 것이다. 이해는 한다. 이해는 하는데…….
“음, 여기는 말이지.”
이럴 때를 대비해서 아빠가 가르쳐준 대비책이 있지.
“천국. 아니, 하늘 세계야! 하늘나라. 하늘나라 알지?”
“하늘나라라니? 그럼 내가 죽었단 말이오?”
“어……. 그게 말이지. 죽은 건 아니고, 곧 살려줄 거야. 오늘 저녁쯤? 다시 원래 왔던 세상으로 가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여기에 가만히 있으면 돼.”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거요? 천제의 노여움이라도 산 거요?”
“그건 이따가……. 그 천제님 오시면 이야기하자.”
여기서 천제는 물론 우리 아빠다. 조선 사람에게 천제 소리를 들었다는 걸 안다면 아빠는 좋아하실까?
“천제? 정말 여기가 천제가 사시는 하늘나라란 말이오?”
녀석은 아주 ‘약간’ 내 말을 믿지 못하는 얼굴이다.
‘이럴 때를 대비한 방법이 또 하나 따로 있지.’
나는 서재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창문을 열어젖혔다. 이 방법은 조금 극단적이라 아빠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 적이 있긴 하다. 그래도 저번에 조선 후기에서 왔다는 임노동자에게는 아주 잘 통했었다.
“여기 바깥을 보라고.”
내 말에 그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참고로 우리 집은 아파트 30층이다. 쌩 하고 올라오는 차가운 가을바람과 더불어 사람들이 개미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자 녀석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다.
“이럴 수가…….”
녀석은 믿기 어렵다는 듯 한참 밖을 내다보다가 결국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럼 앞으로 이렇게 둘만 있을 때는 혼이라고 부를게.”
다시 한 번 그의 의사를 확인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무에 묶어두었던 말의 고삐를 풀어 잡고는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바짝 쫓아가 나란히 걸었다.
“분명 내 어머님은 나를 너처럼 그리 부르셨겠지.”
걸어가던 그가 자신의 어머님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두 살 때 그의 어머니인 공빈은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이겠지. 내가 세자가 된 이후로는 아바마마까지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으시니 말이다. 허나 이름이란 것은 누군가가 불러주어야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맞아. 이름은 부르라고 지은 것일 테니까.”
난 별생각 없이 그의 말에 응수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니 너라도 내 이름을 불러다오. 숨쉬기조차 힘겨운 궁궐 안에서 말이다.”
왜 세자인 그가 궁궐을 ‘숨쉬기조차 어려운 곳’이라고 표현했는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