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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85910451
· 쪽수 : 502쪽
· 출판일 : 2015-01-10
책 소개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
40장
책속에서
3:11 ○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내가 누구기에 파라오에게 가며,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으리이까?” 하니,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표가 되리라. 네가 이집트에서 그 백성을 데리고 나오면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니라.” 하시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라고 그들에게 말할진대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하면,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니,
1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나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같이 말할지니 ‘나이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80년 간 준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그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안되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느낌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하다가도 마침내 자포자기해 버리고 만다(민 16,17장, 삼상 12:16-19을 함께 보라).
처음에 모세는 자신의 소명을 느꼈다(출 2:12). 그리고 나서 성급하게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 버렸다. 이것은 전적으로 육신의 일이었다(갈 5:21). 너무나 낙심이 되어(출 2:15) 부르심에 대해 잠시 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체 일을 멈춰 버렸다. 자신의 백성을 포기했고, 그들의 구원자로서(행 7:35) 자신의 직무를 포기하였다.
누군가가 모세에게 다가와 “당신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하고 말한다 하여도 더 이상 모세에게는 아무 느낌을 주지 못한다. 시몬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행 10:14)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수행하신다는 사실이 모세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모세는 사십 년간 자신의 적성, 가능성, 자신의 부채를 평가했다. 그리고 완고한 결정을 내렸다. “나는 안돼!”
"...내가 누구기에 파라오에게 가며..."(11절). 기드온처럼(판 6:13,15) 모세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편을 알아주셨으면 했다. 이 시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세는 두 가지 사실을 잊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지를 알기 전까지는 부르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아무도 부르시지 않는다. 모세는 겸손함을 배웠다.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배울 차례다.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하면..."(13절). 모세는 지금 핑계거리를 찾고 있다. 일반적인 핑계거리를 찾다가 4:10에서 최고의 변명거리를 찾아냈다.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의 많은 신들을 접하고 살아서(오시리스, 호러스, 파쉬트, 토트, 셉, 이시스 등)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모세는 시내 광야에서 40년간 있을 때 창세기를 기록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분명한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 모세는 “여호와 이레”(창 22:14), “엘로힘”(창 1:1), “엘룐”(창 14:18), “아도나이”(창 15:2,8), “여호와”(창 2:4,5,7,8)라는 이름에 익숙했을 것이다. 모세의 질문이 진지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많이 알고 있는 이름들 가운데 어떤 이름으로 나아가야 하느냐이었을 것이다. 모세는 출애굽기 2:14과 같은 상황이 재현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내용을 보면 상황을 비켜가기 위한 질문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곧 나니라 ... 나이신 분"(14절).
인간의 역사 이래 그 어떤 종교 문학을 통틀어도 이 이름만큼 정확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잘 설명한 이름이 없다. 한 영이시고 창조주이고 절대 주권자시며, 온전한 거룩함과 권세의 절대자이신 하나님, 그분께 부여할 수 있는 이름은 “나이신 분”(I AM)이다. 이 이름 외의 그분의 이름에 대한 어떠한 시도도 그분의 통일된 속성을 망쳐놓을 뿐이다.
“나는 곧 나니라.”
“나는 존재하며 항상 존재해왔기 때문에 다만 나일 뿐이다.”
“나는 나다.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문이요, 위로자이다.”
“나는 항상 나다. 과거, 현재, 미래에 상관없이 항상 ‘I am’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그니라”(I AM)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을 박해하던 자들은 뒤로 물러서서 땅에 엎드렸다(요 18:6-8). 예수님께서 “나는 있느니라”(I AM, 요 8:58)고 말씀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윌리엄즈가 언급한 것처럼 “I AM”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백지수표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요구만 하면 된다. 권세가 필요하다면 “권세”(power)라고 적으면 된다. “I AM power”(마 28장). 위로(comfort)가 필요하면 “위로”라고 적으면 된다. “I AM comfort”(요 14:16). 치유(healing)가 필요하면 “I AM the Healer”(출 15:26)가 된다.
"이것이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이것이 모든 세대에게 나의 기념이 되리라"(15절).
“예수”는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이름지어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다(엡 1:2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I AM”들 중의 “I AM”이다(계 19:16). 럿셀과 러더포드(여호와의 증인)는 “예수”라는 이름을 테트라그라마톤의 제2바이올린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신약과 구약에서는 주 예수를 스카랴 12:10, 이사야 9:6, 골로새서 1:2-6의 문맥에서 여호와와 동등하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