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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피터 S. 럭크만 (지은이), 말씀보존학회 편집부 (옮긴이)
말씀보존학회
30,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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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요한계시록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85910635
· 쪽수 : 592쪽
· 출판일 : 2015-04-30

책 소개

처음 기록된 이래로 1,900여 년의 기간 동안 요한계시록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 철저히 가려져 왔으며, 많은 사람들이 은유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혼돈에 혼돈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이 책은 철저한 문자적인 연구로 계시록의 신비를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신학적 기틀을 잡을 수 있게 해 준다.

목차

책을 내면서 3
서문 5

계시록 1장 17
계시록 2장 41
계시록 3장 70
계시록 4장 101
계시록 5장 119
계시록 6장 126
계시록 7장 142
계시록 8장 162
계시록 9장 167
계시록 10장 177
계시록 11장 189
계시록 12장 242
계시록 13장 289
계시록 14장 323
계시록 15장 360
계시록 16장 364
계시록 17장 380
계시록 18장 391
계시록 19장 398
계시록 20장 419
계시록 21장 457

저자소개

피터 S. 럭크만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였으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5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로 일했다. 특히 그의 저서 <필사본 증거>,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 <신약 교회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6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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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보존학회 편집부 (옮긴이)    정보 더보기
말씀보존학회는 1994년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내놓아 이 땅에 바른 성경을 제시했으며, 성경에 근거한 교리, 신학, 경건 서적들을 출판, 보급하는 사역을 수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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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서문
이 주석서는 1963년 미시시피 주의 투펠로에 사는 한 젊은 목회자를 위해 만들어진 설교 테입들을 글로 옮긴 것이다. 이 젊은이가 목회에 대한 소명을 가졌을 당시에는 성경을 스스로 연구할 수 있을 만큼 깊이 있게 읽지를 못했었다. 그런데 그는 이 테입들로 계시록을 공부하는 동안 스스로 성경 읽는 법을 배웠다. 이 주석서는 설교 테입들을 옮긴 것이기 때문에 문어체 형식이 결여되어 있고 창세기와 잠언 주석서에 나타나는 풍부한 (비평적 주해가 담긴) 설명이 전반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또한 이 주석서는 설교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문체가 간결하고, 문학적 특성은 별로 없다. 계시록에 관해 장황한 (대부분 무익한) 논쟁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이 서문에서 그러한 몇 가지 논쟁들을 열거한 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우리가 성경 분문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역본들이나 주석가들, 해석학파들 내지는 비평어조, 잡다한 읽을거리나 신학적 가설 등의 설명과 비교에 낭비할 시간이 거의 없을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은 성경에서 가장 쉬운 책인데, 그 책의 힘과 권위는 그것이 주는 인류 역사의 정치적, 영적 미래에 관한 선명한 가르침들에 있다.
학자들은 계시록을 “묵시”(Apocalypse)라고 말하는데, 그들은 같은 이유로 “공관복음”, “제2 이사야”, “큐 문서” 등과 같은 부적당한 용어를 사용한다 (미국의 죽어 버린 정통주의 학문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독자적으로 서기 위해 이런 “직업 용어”를 유지해야만 한다). “묵시”라는 용어는 “우와-이-어렵고-유식해 보이는-의미를-안다면-틀림없이-멋질거야.”라는 식의 느낌을 전달한다. 이것이 장사꾼이 노리는 효과이다. 계시록은 말 그대로 “계시”(Revelation)이다.
계시록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가장 두려워하고 혐오하며 잘못 이해하고 있는 책이다. 성경에서 이 책만이 사탄, 교회, 유대인, 이방인, 국가들, 로마 카톨릭, 그리고 우주의 종말을 선명하고 상세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죽어 버린 정통주의 학자들, 무천년주의 주석가들, 후천년주의 사회주의자들, 성경을 부인하는 카톨릭 등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죄인들의 비판 대상이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람들은 권위있는 자료에 근거해서 미래가 이야기되는 것을 싫어하며, 미래에 관한 부정적인 어떤 계시나 자기들과 연관된 악에 대한 예언들을 극렬하게 혐오한다(왕상 22:13-28). 이러한 이유(다윈의 진화론에 상반되는 부정적인 예언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로 계시록은 기록된 이후부터 신학적 논쟁의 격전장이 되어 왔다. 모든 세계 강대국들은 계시록 19-22장에 반대되는 역사의 전개에 힘을 쏟아 왔다. 그러나 한 나라도 급속하게 성취되어 가는 성경의 예언들을 가로막지 못했다. 백악관과 UN의 현재 목표는 계시록 19-22장을 거부하는 미래를 전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 The Kingdom of God vs. The Kingdom of Heaven>(1969)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
네스토리안 교회는 계시록을 거부했다. 페쉬토(Peshitto, 시리아어역 성경, 5세기)에는 카이사랴로부터 유세비우스(Eusebius)와 오리겐(Origen, 2-4세기)이 결정한 통보에 따랐기 때문에 계시록이 빠져 있다. 콘스탄틴 황제의 오른팔이었던 유세비우스는 계시록의 정경성을 의심하였는데, 그는 후천년주의를 주장하는 아리안으로서 계시록 11:15과 5:10에 대한 입장을 잘 밝히려 하지 않았다. 계시록은 역사에 대해 문자적인 예언을 담은 책이기에 미국의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 학파들, 또 그들의 교회, 집회, 협회, 연맹, UN, 복지기관 등에서 거부되고 있다. 어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신학교들은 계시록이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는 “영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고 말하지만 무천년주의나 후천년주의자들은 이러한 주장조차 무시한다. 로마 카톨릭은 “그들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를 믿고 있다.
종교 집단들이 계시록에 대해 참지 못하는 그 끊임없는 맹렬한 증오를 보이는 이유는 그 책이 모든 정부와 교회가 궁극적으로 파괴되고 초자연적인 정부로 대치될 것임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정신병 의사들, 박사들, 법률가들, 상원의원들, 하원의원들, 교황들과 추기경들은 그런 이유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는” 모든 기관의 목적과 동기와 계획들을 좌절시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파괴자이심을 뜻하는 것이다(슾 3:8). 그러므로 “바티칸 공의회”는 계시록에 대해 엄청난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계시록의 권위가 인정되는 곳에서는 정신병이라도 일으킬 만한 노이로제를 앓는다. “왕국을 오게 만드는 데” 종사하는 자는 누구나 계시록 19-22장의 내용들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계시록에 대한 숱한 반박은 20장의 첫 여섯 구절에 기인한다. 이 구절들이 그 말하는 바를 의미하고, 그 의미하는 바를 말하는 것이라면(계 20:1-6 주석 참조)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상에는 평화가, 인간에게는 선의가 없을 것이며, 그분이 다시 오시면 성도들과 더불어 문자적이고, 실제적이며, 눈에 보이는 왕국, 즉 팔레스타인에서 다윗의 왕위를 가지고 유대인 왕국을 정치적으로 다스리실 것이다. 그것은 “왕국 건설자들”(Kingdom builders)이 해 놓은 밥에 재를 뿌리는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왕국 건설자들”인 플라톤(Plato),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어거스틴(Augustine), 교황 레오 1세(Pope Reo ?), 교황 그레고리(Pope Gregory), 샤를마뉴(Charlemagne), 클로비스(Clovis), 페핀(Pepin), 교황 니콜라스 1세(Pope Nicholas Ⅰ), 힐데브란드(Hildebrand), 우르반 2세(Urban), 이노센트 3세(Innocent), 보니파스(Boniface), 막스(Marx), 엥겔스(Engels), 다윈(Darwin), 스펠만 추기경(Cardinal Spellman), 루즈벨트 대통령(FDR), 국제 연맹(The League of Nations),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레닌(Lenin), 랩 브라운(Rap Brown), 마틴 루터 킹 쥬니어(Martin Luther King Jr.), 트로츠키(Trotsky), 국제 연합(the United Nations) 등은 그들의 부와 명예를 위협하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마 21:30-38) “지상에 평화를, 인간에게 선의를” 가져오려고 하였다.
그래서 이 서문의 견해는 이들 무리와 이들과 비슷한 모든 무리를 일축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계시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믿을 만한 정보나 권위가 되지 못한다. 이는 계시록이 예언과 역사를 다루는 책인데 위의 명단에 있는 어떤 사람도(또는 기관)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방향으로도 올바로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시록을 수용한 사람들은 파피아스(Papias, A.D. 69-156), 저스틴 마터(Justine Martyr, A.D. 100-163), 사데스의 멜리토(Melito of Sardis, A.D. 190), 이레내우스(Irenaeus, A.D. 130),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A.D. 394), 디디무스(Didymus, A.D. 398), 바실(Basil, A.D. 330-379), 힐러리(Hilrary, A.D. 367) 그리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A.D. 372) 등이다[비더울프(Biederwolf)의 “천년 성경”(Millennium Bible)에 자세한 명단이 있다. 주 내용은 물론 천년왕국이다.] “Mil”(1000) “Annum”(년)은 일곱 번째 천 년 기간 또는 지상의 안식 기간으로서(사 14:6,7, 마 19:28), 계시록 20:1-6에 여섯 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비유적이거나 영적이라는 견해는 주목할 가치도 없다.
옥스포드 대학의 수학자였던 데이비드 그레고리(David Gregory, 1710)는 역사가 아담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6000년에 이를 것으로 추측했다. 랍비인 바알 카투림(Baal Katturim, 1734)도 역사가 서기 2000년에 끝날 것으로 추측했다. 갈대아인들(B.C. 600-400)은 왕국이 창조된 후 6000년을 지속할 것으로 믿었다. 조로아스터도 같은 내용을 가르쳤고, 터스칸인들(이탈리아 중서부 지역)과 페르시아인들(A.D. 300-1900)도 그렇게 믿었다. 바나바 서신(Epistle of Barnabas)에도 이것을(날짜는 불확실하지만) 언급했다. 그리고 이레내우스(Irenaeus, A.D. 130), 히폴리투스(Hippolytus, 3세기), 시프리안(Cyprian, A.D. 200-258), 락탄티우스(Lactantius, A.D. 160-258), 저스틴 마터(Justine Martyr, A.D. 100-163)도 모두 같은 원리를 말했다. 클라렌스 라킨(Clarence Larkin, 1909)은 이 “연일”(year- day) 체계를 그의 저서 <세대적 진리, Dispensational Truth, 1915>에 여러 그림으로 상세히 밝혀두었다. 20세기를 사는 사람치고 이 책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정녕 변명할 여지가 없다.
조지 윌슨(Rev. George Wilson, 1887)의 저서를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를 알 수 있는데 그가 제시한 연도는 1996년이다. 무천년주의 학자들 중 아무도 이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도전조차 하지 못했다. 벌링톤 웨일(Burlington Wale, 1883)도 이 때로 말했다. 윌리암 팔레인(William A. Parlane, 1894)도 이 때로 말했고, 조지 펨버(George Pember, 1837-1910), 로버트 카메론(Robert Cameron, 1896), 무디 성경 연구원 대표였던 제임스 마틴 그레이(James Martin Gray, 1851-1935)도 마찬가지였다. 클라우저(G.B.M. Clouser, 1903)도 이것을 믿었으며, 에델버트 벌링거(Ethelbert W.Bullinger, 1837-1913), 헤닝스(E.C. Hennings, 1919), 스코필드(C.I. Scofield, 1843-1921), 찰스 웰치(Charles Welch, 1912), 아돌프 녹(Adolph Knock, 1874), 루이스 스페리 샤퍼(Dr. Lewis Sperry Chafer, 1871)도 믿었다. 더 나아가 1900년 이후 미국의 모든 위대한 복음주의자들은 전천년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빌리 선데이(Billy Sunday), 프랭크 노리스(J. Frank Norris), 히만 애플만(Hyman Appleman), 제시 헨들리(Jesse Hendley), 밥 존스(Bob Jones Sr.), 테오도르 엡(Theodore Epps), 디한(M.R. De Haan), 리 로버슨(Lee Roberson), 존 R. 라이스(John R. Rice),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찰스 풀러(Charles Fuller), 보샹 빅(Bauchamp Vick), 달라스 빌링톤(Dallas Billington), 잭 윌첸(Jack Wyrtzen) 등이다. 즉 이들은 사회, 종교, 교육, 과학, 문명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문자적이고, 실제적이며, 눈에 보이는 정치적 왕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 오실 때까지 급속도로 타락할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와는 반대로 루터(Luther), 틴데일(Tyndale), 쯔빙글리(Zwingli) 등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 즉 이들은 모두 “왕국을 오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드웻(De Wette)은 고백하기를 계시록은 해석을 불허한다고 했다. 아담 클라크(Adam Clarke)도 자신이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설명할 수 없음을 실토했다. 알포드(Alford)는 독단적으로 주장하기를 A.D. 100년부터 1850년까지의 모든 전천년주의자는 계시록의 예언들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블룸필드(Bloomfield)는 계시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 대한 더멜로우(Dummelow)의 주석은 기분에 들뜬 즉흥 연주 정도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허튼 소리들이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필자는 이사야 28:9,10을 해석하는 데 실패한 헬라어 학자들과 비평적인 신약 편수자들이 펴낸 책들을 무더기로 추천해 줄 수 있다. 이중에는 스콧(Scott)의 “묵시”(The Apocalypse, 1909), 블리크(Bleek)의 주석서(1875), 바이스(B. Weiss)가 남긴 크나큰 오류(1902), 파라(Farrar)의 <기독교 초기 시대, Early Days of Christianity, 1882>, 워즈워드(Wordsworth)의 주석들(1875), 밀리건(Milligan)의 <묵시에 관한 논의, Discussions on Apocalypse, 1893>에 소개된 설명들, 그리고 셀윈(Selwyn), 브릭스(Briggs), 길버트(Gilbert), 팔머(Palmer), 베르그(Berg), 포터(Porter), 포브스(Forbes)와 홀트(Hort) 등의 갖가지 오류들이 있다. 공허한 허튼 소리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떠벌린 사람은 “개혁주의 신학자들” - 핫지(Hodge), 댑니(Dabney), 카이퍼(Kuyper), 벌콥(Berkhof), 특히 필립 마우로(Phillip Mauro, 1859) - 인데, 그들을 연구해 보면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계시록에 관련된 세 가지 해석학파는 올바른 해석과 올바르지 못한 해석, 그리고 절반만 올바른 해석으로 구분된다. 죽어 버린 정통주의는 이 세 가지 입장을 1. 미래학파, 2. 과거학파, 3. 역사학파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을 은폐한다.
세 학파 중 첫 번째는 전천년파인데 이에 대해 고명한 파라 학장(Dean Farrar)은 “미래학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항상 소수였으며 현재(1882)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진다.”라고 말했다. 고명한 학장 - <국제 표준 성경 백과사전,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제4권 p.2587)에 추천까지 받은 분 - 께서 이런 유치한 말씀을 하는 동안,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와 존 다비(John N. Darby, 1800-1822)는 전천년 “미래학파” 해석으로 4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파라가 그런 얼토당토않는 말씀을 한 지 40년이 채 못되어 미래학파 해석으로 일관한 스코필드 주석성경(The Scofield Reference Bible)은 4백만에서 9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읽혀졌다. 반면에 파라의 책은 읽혀지지 않는 서적들의 묘지에서 먼지에 뒤덮인 채 계시록의 권위를 부인한 수천 권의 출판 서적 가운데 놓여 있다.
“과거학파”(즉 죽어 버린 정통주의)는 계시록의 사건들이 대부분 이미 성취되었다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서 계시록 1-22장의 모든 내용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제외하고는 다 이루어졌고, 심지어는 재림과 심판에 관한 많은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파라 학장도 과거학파였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학파가 스페인의 예수회에서 설립했다는(1614)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킹제임스성경, 1611>의 출판으로 인한 성경 지식의 성장을 방해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과거학파는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1. 계시록은 저급한 책이다(파라의 <기독교 초기 시대>, p.235 참조).
2. “주의 날”(Lord's Day)은 일요일이지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이 아니다(Ibid, p.239).
3. 용(계 12:1-4)은 로마 제국이다.
4. 사내 아이(계 12:1-5)는 교회이다.
5. 적그리스도는 네로(Nero)였는데, 그는 죽었고 영원히 사라졌다.
6. 그리스도의 재림은 70년 예루살렘 파괴 때 이루어졌다(Ibid, p.328).
7. 계시록 20-22장은 지적인 해석이 절대로 불가능하다.

왕국에 대한 과거학파의 전형적인 태도가 파라의 저서 321페이지 각주에 나와 있다. 비록 그가 자기 글에서는 그리스도의 문자적인 지상 통치를 부인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오리겐을 비롯한 대부분의 교부들은 왕국을 영적으로, 비유적으로 인식했다.”라고 인용함으로써 그가 그들의 주장을 따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역사학파”는 과거학파보다는 좀 더 나은 해석을 하지만, 여전히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제칠일 안식교인들처럼 머리를 돌게 할 만큼 왜곡된 해석을 주장한다. 예를 들면, 계시록 8:13의 “천사”에 대한 “역사학파”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성령이다. - 빅토리누스(Victorinus)
2. 그는 그레고리 교황이다. - 엘리콧(Ellicott)
3. 그는 성 요한이다. - 드 리라(De Lyra)
4. 그는 성 바울이다. - 제거(Zeger)
5. 그는 그리스도이다. - 매튜 헨리(Mattew Henry)

계시록 9:1의 떨어진 별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1. 그는 악한 영이다. - 알포드(Alford)
2. 그는 기독교 이단의 하나이다. - 워즈워드(Wordsworth)
3. 그는 발렌스 황제(the Emperor Valens)이다. - 드 리라(De Lyra)
4. 그는 모하멧이다. - 엘리콧(Ellicott)
5. 그는 나폴레옹이다. - 헹스텐베르그(Hengstenberg)
그렇다면 딘 마틴(Dean Martin)은 어떤가? 릴 아브네(Lil Abner)는 안되는가? 케네디(Kennedy)는?
이들 두 해석학파(벧후 1:20,21!)는 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네로가 통치했던 A.D. 66-69년경으로 정하는데, 마찬가지로 로마 카톨릭 교회도 늘 같은 기간을 고집해 왔다. 이들이 이같이 주장하는 이유는 계시록이 A.D. 70년 이후에 쓰여진 것이라면 계시록 17:1-9의 “로마”는 로마 제국이 아닌 로마 카톨릭이 되기 때문이다!(<짐승의 표, 말씀보존학회 간> 참조). 그러나 그들의 주장처럼 그 구절이 로마 카톨릭이 아니라 로마 제국을 말하는 것이라면 요한은 분명히 “크게 의아해 하며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계 17:1-7). 왜냐하면 로마 제국은 그를 팟모섬으로 유배시킨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학파나 과거학파처럼 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네로의 통치 기간으로 본다면 계시록 4-19장에 기록된 모든 현상을 제멋대로 사사로이 해석하여 그것이 1980-2000년 사이에 성취될 예언으로 보지 않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역사학파와 과거학파는 마치 어떤 사람이 두 손으로 양 눈을 가린 채 머리를 베개에 쳐박고서 “나는 볼 수 없어!”라고 외치는 모습과 같다(이런 모습이 썩어 버린 정통주의에서는 흔히 “공인된 학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펨버(Pember), 바이스(Weiss), 뉴웰(Newell), 라킨(Larkin), 맥클레인(McClain), 피터스(Peters), 로이 켐프(Roy Kemp) 등이 저술한 계시록에 관한 저서들을 읽은 사람치고 한 번 읽은 후 계시록을 85% 정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계시록을 읽을 때 15% 정도가 이해 안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헬라어나 히브리어 학자들, 특히 과거학파의 경우에는 그 책을 10%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나머지 90% 정도는 놀랍게도 아예 손도 못대는 형편이다).
베슈타인(Wetstein), 럭크(Lucke), 네안더(Neander), 스티어(Stier), 오벨른(Auberlen), 에왈드(Ewald), 블리크(Bleek), 게하르트(Gebhardt), 이머(Immer), 데이빗슨(Davidson), 더스터딕(Dusterdieck), 모세 스튜어트(Moses Stuart), 마우리스(F.D. Maurice), 플럼트리 학장(Dean Plumptree) 등은 모두 계시록의 기록 연대에 대한 로마 카톨릭 입장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들의 견해는 설명 없이 무시하기로 하겠다. 계시록의 올바른 기록 연대는 도미티안(Domitian) 통치 기간인 A.D. 91년에서 96년 사이이다.
헬라어 원문에 관해 제임스 모펫(Rev. James Moffat, 그의 번역본 이사야 9:6은 그의 불신앙을 잘 말해 주고 있다.)은 <킹제임스성경, 1611>에 사용된 헬라어 표준원문이 “철저히 변개된 것”이라고 말한다. 학자들은 종교개혁을 낳은 성경을 비평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관대하고 자비로웠기 때문에 우리는 그 호의에 대한 답례로 개역본(Revised Version, 1884, 이하 RV로 표기), 미국표준역본(American Standard Version, 1901, 이하 ASV로 표기)이 오히려 극단적으로 “철저히 변개된 것”이라고 말한다. 배교한 기독교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B” 사본(Vaticanus, 바티칸 사본)은 계시록을 포함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오리겐이나 유세비우스, 교황들 중 누구도 하나님께서 세상의 정치적 지배권을 그들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가시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A” 사본(복음서들의 비잔틴 원문)과 “C” 사본(그 시대의 90%가 비잔틴 원문) - “사본 고증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지침서”(The Christian's Handbook of Manuscript Evidence)와 “알렙 사본”(Aleph, 시내 사본) - 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자는 계시록에 대한 네슬(Nestle)의 저서들 중 복음서에 관한 주석의 분량에 비하여 계시록에 대한 비평적인 주석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안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계시록은 성령께서 그러한 방법으로 역사에 “슬그머니 넣으신” 유일한 책이기에 <킹제임스성경, 1611>을 파괴하려 했던 보수주의 학자들조차(1881-1970)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책이 된 듯하다. 성경 변개자들도 계시록 22:14과 22:19을 제외하고는 계시록에 손을 대지 못하였던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이며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이 책에는 “모든 일의 마지막”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데, 그것이 너무나 위엄있고 끔찍한 일이 사실적으로 계시되어 있기에 배교한 카톨릭과 명예를 추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세속적인 보수주의자들은 그 말씀 앞에 떠는 것이다. 이것이 계시록을 영적으로 해석한다든지 아니면 오리겐의 비유적 방법을 사용하여, 계시록을 “의미 없는 책”으로 만들려는 온갖 시도를 행하는 이유이다. 모두들 한결같이 “계시록은 비유적이고, 상징적이고, 애매하고, 지극히 묵시적이다.”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한 마디로 ??우리는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노라.??(요 16:18)인 것이다. 헬라어 학자들은 “애매함, 변개, 신비”를 주장하고(사 29:11) 평신도들은 무지와 교육의 부족을 주장하지만(사 29:12),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모두 거짓말하고 있음을 아신다(사 29:13). 계시록은 성경에서 가장 쉬운 책 중 하나이다. 마태복음, 사도행전, 스카랴, 히브리서, 솔모몬의 노래는 수수께끼로 쌓여 있는 책들이지만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에게 계시록은 가장 소중하고 꿀보다 단 책이다. 이 책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쓰시고, 봉인하셨으며, 성령께서 배달한 영광의 편지이고,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일의 결말을 보여 주는 책이다. 이 책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하늘의 처소에 새겨진 자기들의 이름을 선명히 읽으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 1:3,4)께서는 성경의 일점 일획을 다 이루시는 그분의 신실하심을 새롭게 하신다. 계시록을 믿는 우리는 각 시대에 난립하는 모든 비평과 견해들을 무시할 수 있고 더불어 그 내용에 대해 청결한 양심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정확 무오한 성경 66권의 모든 책에 접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킹제임스성경, 1611>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신뢰를 가지고, 성경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학식있는 자기본위주의자들을 무시한 채 성경의 마지막 책에 접근한다.


피터 럭크만 박사(Dr. Peter S. Ruckman)
플로리다주(Fla.), 펜사콜라(Pensacola), 1970.


계시록 4장 1절, 2절 주석 본문 내용

우리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한 일곱 메시지로 유형지을 수 있는 교회시대를 끝까지 도달했다. 비록 이 메시지들이 역사적으로 A.D. 90년의 일곱 지역 교회에 적용되고 교리적으로는 환란 때의 지역 교회들에 적용되지만, 유형으로 보면 첫 번째 교회(에베소 교회)와 마지막 교회(라오디케아 교회)를 비교함으로써 교회시대의 역사를 나타낸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교회”라는 말은 계시록 3:22에서 사라지고 4-21장까지 두 번 다시 언급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무엇인가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성령은 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지상에 있는 교회들의 한가운데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일곱 영으로 불려진 성령은 계시록 4:5에서 셋쨰 하늘에 올라간 것으로 나타나면서, 교회들의 위치와 성령의 위치가 다 바뀐 것을 보여 준다.

4:1 이 일 후에 내가 쳐다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는데 내가 들은 첫 음 성은 나팔 소리 같았으며,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리 올라오라. 내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네게 보여 주리라.” 하더라.

"하늘에 한 문"(1절)이 열린다. 하늘은 계시록에서 단지 두 번 열리는데, 한 번은 누군가 올라갈 때이고 한 번은 계시록 19장에서 누군가 내려올 때이다. 문이 열릴 때에(계 4:1) 음성과 나팔소리가 있는 것을 주목하라. 본문을 데살로니가전서 4:15-18과 비교해 보면 음성이 무엇이며 나팔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주께서 누군가를 부르시는 것이며 양쪽 구절 모두 듣는 자들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구름 속으로 올라간다.


4:2 또 내가 즉시 영 안에 있게 되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보좌가 놓여 있고 한 분 이 그 보좌에 앉으셨는데

"내가 즉시 영 안에 있게 되었는데"(2절). 이 표현을 다시 주목하라. 계시록 1:10에도 "성령 안에"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거듭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처럼 성도가 성령 안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다른 차원으로서 형태나 구조의 기적적인 변형을 의미하는 “성령 안에”이다. 이것을 고린도전서 15:49-52과 비교해 보면 그리스도의 몸이 “휴거되는” 또는 “들림받는” 것임을 알 것이다. 바울은 이 신비가 “나팔 소리가 나면”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그것이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난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데, 여기 계시록 4:1-2에서 우리는 모든 요소가 나타나는 것을 본다. 즉 음성, 나팔, 부르는 소리, 영적인 체질(spiritual condition)로의 변화, 그리고 “순간에” 요한은 즉각적으로 셋째 하늘에 올라간다. 필자가 “셋째 하늘”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고린도후서 12:1-4에서 하늘을 분명하게 셋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밀턴의 “일곱 하늘”은 로마 카톨릭의 생각이지 성경 계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성경은 세 개의 하늘을 말하고 있다.
첫째 하늘은 “그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표현처럼 땅에서 구름까지이다.
둘째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 있고”라는 표현과 같이 태양과 달, 별들이 있는 곳이다.
셋째 하늘은 별자리들을 지나 성운들을 지나 여러 은하수, 성단들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는 곳으로서 그 방향은 북쪽이다(뒤에서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계시록 4:1,2이 교회의 휴거를 묘사한 것이라는 데 대해 의심이 간다면 여기서 직접 자신의 체험을 쓰는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형태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다면 다음 설명을 주의깊게 살펴 보라.

먼저 에베소서 5장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그분에 대한 관계는 아내가 남편을 대하는 것과 같은 관계임을 주목하라. 더 나아가 아내와 남편의 원래 관계는 이브와 아담의 관계(창 2장)인 것이다. 따라서 한 남자의 아내인 이브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신분인 것처럼,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진리를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담이 그의 아내를 얻었을 때 그는 아내를 얻기 위해 죽어야 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얻기 위해 죽으셔야 했다. 아담의 아내는 그의 몸의 일부였으며 그리스도의 아내도 그분의 몸의 일부이다. 즉 “뼈 중의 뼈이고 살 중의 살”이다(엡 5:28-33). 아담의 신부는 아담의 가슴 아래에서 취해졌으며 그의 옆구리는 한 개의 갈비뼈를 취하기 위해 뚫린 바 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다섯 번째 갈비뼈 아래를 찔리셨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엡 5:25)고 말한다. 아담은 그의 아내를 얻기 위해 죽어야 했거나 아니면 죽음과 같은 잠을 자야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죽으시고(땅 속에 삼일 밤과 삼일 낮을 계시다가) 그분의 아내를 얻으신다. 아담의 아내는 “그의 뼈 중의 뼈이고 살 중의 살”이다. 그녀는 그분의 몸이다. 아담의 신부는 피를 흘림으로써 얻어진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신부도 피를 흘림으로써 얻어진다.
이 모든 것은 사도 요한에게 간접적으로 모아진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에게 다른 제자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랑을 보이셨으며 요한도 그것을 알았다. 요한복음 3:16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다고 우리에게 말하지만 성경은 그분이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주셨다.”는 특별한 사랑을 말해 준다.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예수님께서 모든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끝까지 사랑하셨으나”(요 13장), 요한은 특별하게 사랑받았던 것이다. 요한복음 21:20에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바로 요한이다. 요한복음 13:23,25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신부(교회)의 유형인 이브가 나온 곳이었던 바로 그곳(심장 아래)에 기대어 있었다. 반복하면 요한은 교회가 특별히 사랑받는 것과 같이 특별히 사랑받았고 그것을 알고 있었다. 주의 만찬 때 요한은 교회가 나오게 되는 바로 그곳(심장)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의 몸의 유형이라는 것을 명백히 지적하는 그의 미래에 관한 진술이 있다. 요한복음 21:21-24을 주목하라.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잠시 머물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성령 안에 붙들어 1900년의 시간을 통과하여 환란 기간으로 이동시켜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여 주었던 계시록 1장에서 그가 살아 있었다고 할 때만이 참된 뜻이 되는 것이다. 요한은 분명히 죽었지만 그는 죽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무천년과 후천년 주석가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요한이 죽기 전에 오셨다고 생각하도록 한다! 물론 이것은 함정이다. 요한은 90년에 “성령 안에” 붙들려 “주의 날”로 와서 주님의 재림을 보고 그것을 계시록에 기록한다. 따라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부, 곧 교회의 유형이다. “요한”은 “사랑받는”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요한이 계시록 4:1,2에서 들림받을 때 그는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이 들림받는 것을 상징한다.
그밖에 계시록 4:1에서 우리는 “이리로 올라오라.”는 표현을 본다. 이 표현은 성경에 오직 세 번 나온다. 이 세 번이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은 여러 세대에서 성도들이 들림받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언급은 여기 계시록 4:1이고, 두 번째는 계시록 11:12에 그리고 세 번째는 잠언 25:7에 있다.
이것은 “첫 번째 부활”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부활이 세부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그렇기 때문에 모든 수확도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 부활을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은 여러분이 땅에서 거두는 수확에 비유했는데 부활의 위대한 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는 부활을 세 부분으로 분명히 지적하였다. 즉 고린도전서 15:22-24에서 첫 번째 부활은, 마치 수확이 세 번 이루어지는 것처럼,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1. 첫 수확 - 처음 익은 열매들을 거둔다.
2. 추수 - 나중에 익은 열매들을 거둔다.
3. 이삭줍기 - 끝에 익은 열매들을 거둔다.
고린도전서 15:22에서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23절에는 더 구체적으로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 열매들이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밖에 나가서 수확의 첫 열매들을 거두어 보라. 그 다음에는 추수이다. 추수는 신약 성도들과 연관되는 것이다).
"그 후에는 끝이 오리니(여러분들이 추수한 뒤에는 항상 이삭들이 남는다.), 주께서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폐하시고 그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바칠 때라"(고전 15:24).
"주께서 모든 원수를 자기 발 아래 두실 때까지 통치하셔야 하리니(천년 기간) 멸망받게 될 마지막 원수는 사망이라(계 20장, 천년 기간의 끝에)"(고전 15:25,26).
그래서 첫 번째 부활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요한이 계시록 20장에서 이 세 부활이 모두 끝날 때 비로소 “이것이 첫 번째 부활이니”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첫째 부분은 구약 성도들이며 둘째 부분은 신약 성도들이고 셋째 부분은 환란 성도들이다.
1. 첫 수확 - 그리스도 부활 때의 구약 성도들
2. 추수 - 교회시대 끝에 휴거되는 신약 성도들
3. 이삭줍기 - 재림 때의 환란 성도들
부활의 세 부분은 신명기 16:16에 언급되어 있는데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세 절기로 나타나 있다.
계시록 4:1,2의 본문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유형인 사랑받은 자 요한의 부활에서 신약 성도들의 몸, 곧 교회의 부활과 휴거에 대한 그림을 간단히 살펴 본다. 그는 “들림받아서” 계시록 후반부에 일어나는 일들, 곧 환란 기간에 일어날 일들을 목격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계시록 4-19장에 나타나는 모든 일은 환란 때에 일어나는 사건들임을 전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 계시록 4장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교회 시대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중요한데 그 이유는 제칠일 예수 재림교, 몰몬교, 로마 카톨릭, 그밖의 다른 많은 종파들이 계시록 4장과 22장 사이에 있는 구절들을 취하여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경우이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그와 같은 적용은 말씀을 잘못 나누는 것이다. 계시록은 분명히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우리는 지금 두 번째 부분에 있는데 4장에서 시작되어 19장에서 끝난다.
"또 내가 즉시 영 안에 있게 되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보좌가 놓여 있고 한 분이 그 보좌에 앉으셨는데"(22절). 이것은 물론 요한이 셋째 하늘로 옮겨진 것이다(여기서 요한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12:1-4에서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은 일들에 관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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