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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좋은부모 > 육아 > 육아법/육아 일반
· ISBN : 9791186117439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16-02-29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_ 엄마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순간
1부. 공부가 다는 아닌데, 참…
진짜 주입식 교육은 잠자리에서
공자도 제 자식은 못 가르쳤다
서울대라니, 아들아
나도 일등 콤플렉스 엄마였다
아이가 공부할 때 방해할 줄 아는 엄마
내기로 점수를 초월했다
진정한 상류층으로 키우고 싶다면
아직도 시험 치는 꿈을 꾼다
논술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2부. 엄마가 가장 아픈 말, “엄마 미안해.”
앞으로는 착한 아들이 될게요
때로는 극렬한 투쟁이 필요하다
아이가 나를 미치게 할 때
이중부정하는 아들과 이중구속하는 엄마
아이가 살아갈 2030년
모든 엄마는 방학이 두렵다
엄마의 레토릭, 잔소리는 딱 반만
고차원적 상상력이 필요해
몽테뉴도 어렵다 했다
3부. 아이에게서 좌절감의 기회를 빼앗지 말자
엄마는 자살할 거야?
적절한 정도의 좌절감
화를 내는 엄마는 네 번 괴롭다
이성적 엄마라는 신화
‘장그래’의 성장 비결은 멍 때리기였다
인증사진 보내줄게요
아이에게 결핍을 선물할 수도 있다
스크림프리 부모라고?
아들에게 주는 편지
4부. 너무 착한 아이는 외로운 어른이 된다
반항에도 의연한 엄마
원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는 위태롭다
엄마를 위로했던 아이
아이가 준 생일선물
사랑하는 능력
나쁜 애인보다 더 지독한
아이의 다이어트를 말리는 이유
자신의 연대기를 써보는 것
나쁜 딸이 돼서 기뻤다
5부. 책 읽는 엄마는 위험하다
이상한 엄마와 창의적인 아이
“엄마는 너를 믿어”라는 말의 함정
짜증은 정서적 알레르기 반응
자아고갈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에게 오는 것
엄마는 역할이 아니라 존재여야 한다
아이의 기억을 편집해주자
엄마-여자라는 존재
엄마의 유서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6부. 엄마에게 필요한 건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
호르몬이 요동칠 때
아이에게 자존심 상하지 말자
일기장을 들키다
두 시간 기다려 한 건 했다
존경이 아니라 상호인정이 필요하다
완벽한 사람이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아이도 80세가 된다
너는 ‘노 땡큐’, 나는 ‘땡큐’
어느 날, 에피파니
에필로그_ 엄마는 힘들다, 그러나 그 힘듦을 이길 힘도 있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한마디로 인문학이란, 인간이나 인간성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 세상에서 엄마와 아이의 관계만큼 인문학이 더 필요한 경우가 있을까.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보내고, 인간관계 중 가장 넓고 깊은 관계도 모자 혹은 모녀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와 아이 사이는 인문학이 개입하기 힘든 영역이기도 하다. 도무지 ‘생각’이란 걸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본능’이 더 빠르고, ‘생각’보다 ‘사랑’이 더 먼저 아이를 껴안는다. 그러다가 종종 엄마는 미혹에 빠진다 내가 좋은 엄마인가? 하지만 이 질문을 틀렸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만 노력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죄책감’이 쌓이게 된다. ‘좋은 엄마’라고 하는 개념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심하게 야단을 쳤다면 그것에 대해 후회하게 되고 그럼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회의가 생긴다. 아이의 잘못을 꾸짖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아이와 자신의 갈등 상황이라고 착각하고 마치 아이의 양육에 실패한 것처럼 느낀다. 상황 해석의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좋은 엄마에 대한 강박은 명백히 좋은 엄마 콤플렉스일 뿐이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고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한다. 그럼 좋은 엄마는 못 돼도 조금은 나은 엄마는 될 수 있다. 좀 더 나은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는 조금 더 행복해진다. 아이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이 엄마에게 행복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_ 프롤로그
자기 아이가 공부만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은연중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숨처럼, 그 어떤 말 끝에도 결론을 내리듯이 덧붙인다. 공부만 한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공부만 하다가, 세상이 일방적으로 가르친 대로 아무 생각도 없이 살 수도 있다.
아이가 게임만 한다고 치자. 그럼 대부분의 엄마는 아이가 게임을 그만두고 공부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게임하는 아이에게 다그친다. “그만 하고 공부해.”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게임과 공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게임을 하는 이유에도, 게임이 재미있는 원인에도,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하는 그 근원에도 ‘공부’의 자리는 없는 거다. 단지 엄마의 욕망이, 사회적 편견이 ‘공부’라는 답을 내놓았을 따름이다. 이 고정불변의 답 ‘공부’가 아이에게 왜 게임을 그만 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막아버린다.
_ 아이가 공부할 때 방해할 줄 아는 엄마
아직도 아들이 유치원 때 쓴, 삐딱삐딱한, 한 자 한 자가 살아 있는 어버이날 카드를 보면 뭉클해진다. 게다가 거기에 “엄마 미안해요, 앞으로는 착한 아들이 될게요”라고 써 놓은 것을 보면 마음이 더 아프다. 아이가 엄마에게 미안해하면 엄마는 더 미안해진다. 이 어린 것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싶다.
아이는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주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도 한다. 그런데 부모는 자식이 그저 주는 사랑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받아주지 않을 때가 많다. 사실, 아이가 주는 사랑을 받는 것이 더 큰 사랑인데 말이다.
_ 앞으로는 착한 아들이 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