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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방랑

경성 방랑

(근대 지식인들의 경성 탐닉기)

백석, 윤동주, 이효석, 이광수, 나혜석 (지은이), 구선아 (엮은이)
알비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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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방랑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경성 방랑 (근대 지식인들의 경성 탐닉기)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6173985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0-12-31

책 소개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자본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만 같던 그 시절. 서울은 동경의 도시이자 혼란과 방랑의 장소였다. 100여 년 전, 도시의 모습도 문화도 생활양식도 급변하는 때였다. 혼란과 방랑 사이에서 근대 문필가, 예술가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목차

서문

Ⅰ. 근대 지식인들의 경성 방랑기
백석, 마포
윤동주, 봄을 쏘다
박팔양, 모-던뽀이 촌감, 모-던껄・모-던뽀-이
박노아, 카페의 정조, 서울 맛・서울 정조
이효석, 도시의 일면
이광수, 서울 열흘 •57
채만식, 상경 후 서울 •73
나혜석, 하이칼라가 늘어나는 경성 •89
유광렬, 대 경성 회상곡 •89
이상, 방랑의 도시

Ⅱ. 근대적 감수성을 만든 공간과 장소
조선의 끽다점 평판기
경성의 서점
도시의 만물, 백화점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라디오, 스포츠, 키네마
극장 만담

원문자료

저자소개

나혜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지식인 중 한 명으로, 화가이자 작가, 여성운동가, 독립운동가로서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라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며 한국 여성으로서 최초로 여러 영역에서 선구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도전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자아를 찾으려 했던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문필가로서 나혜석은 ‘신여성’ 담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조선일보》《동아일보》《여자계》《신여자》 등 각종 신문과 잡지에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혼고백서」「부인문제와 결혼관」「여자도 사람이다」와 같은 저술을 통해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임을 역설했다. 당시 그녀의 글은 보수적인 조선 사회에서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녀의 그림과 글은 일제강점기 조선 여성의 억압된 현실과 그 속에서의 저항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나혜석은 끝까지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개인의 비극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여성 해방과 민족 해방의 가치를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나혜석의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삶은 비극과 투쟁, 창조와 저항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후에도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그녀는 198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의 부흥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나혜석은 한국 근대 여성사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미술, 문학, 사회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보여준 그녀의 활동은 당시 조선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으며, 이후 한국 여성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 ‘신여성’이라는 말과 함께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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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白石, 1912~1996)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로 평가받는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과를 졸업했다. 1934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했고,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8월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여성』지 편집 주간,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직원, 만주 안둥 세관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시를 썼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고향 정주로 돌아왔고, 1947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분과 위원이 되어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이 외에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 편집위원,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1957년 발표한 일련의 동시로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 삼수군 관평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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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 사건으로 폐교 조치되자,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로 편입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연길에서 발행되던 『가톨릭소년』에 여러 편의 동시를 발표하고 그 외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도 시를 발표하였으며, 문예지 『새명동』 발간에도 참여하였다. 대학 시절 틈틈이 쓴 시 19편을 골라 시집을 발간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신변을 염려한 스승과 벗들의 만류로 뜻을 보류하였다. 1943년 독립운동을 모의한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여 고향 용정에 묻혔다. 일제의 생체 실험 주사에 따른 희생으로 추정될 뿐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1948년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고, 1968년에는 연세대학교 내에 그의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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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2. 3. 4. 평북 정주 출생. 호는 춘원(春園).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람. 1905. 일본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해 《소년》 지 발행. 1910. 귀국해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음. 1915. 다시 일본에 가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 1919.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후 이를 전달하기 위해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도산 안창호를 만나 민족독립운동에 공감하고 여운형이 조직한 신한청년당에 가담. 1921. 귀국. 1910년 중매로 결혼한 백혜순과 이혼하고 1918년 결핵 치료에 도움을 준 의사 허영숙과 결혼. 1928-1929. 〈동아일보〉에 『단종애사』 연재. 1937.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석방 1950.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가 자강도 만포시에서 병사. 『개척자』 『선도자』 『재생』 『마의태자』 『단종애사』 『군상』 『흙』 『무정』 『유정』 『이순신』 『그 여자의 일생』 『이차돈의 사』 『그의 자서전』 『사랑』 『원효대사』 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 수필,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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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7년 강원도 평창에서 한성사범학교 출신의 교사였던 아버지 이시후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일생의 벗이자 문학적 동지였던 현민 유진오를 만나면서 그와 더불어 문학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경성제국대학에 함께 진학하여 더욱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쳤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인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유진오 등과 함께 경향소설을 쓰며 동반자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이효석이 작품 세계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경성농업학교 교사로 재직할 무렵이었다. 이후 평양으로 직장을 옮긴 그는 안정된 집필 환경 속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고,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해마다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던 그는 1940년 아내와 아들의 잇단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잠시 만주 등지를 방랑하다가 돌아왔으며, 다시 창작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지만 뜻을 펼치기도 전에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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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아 (지은이)    정보 더보기
매일 읽고 쓰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 건축과 미술 교육을 전공하여 중등 정교사 2급 자격을 갖추었고, 도시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어린이 미술 교육을 시작으로 대기업 광고대행사에서 9년간 스토리를 공간에 입히는 일을 했으며, 이후 10년간 책방연희를 운영하면서 청소년, 성인까지 대상을 넓혀 책방과 학교 안팎에서 함께 읽고 쓰는 기쁨을 나누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언어 감각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의 파편화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는 데 중요한 힘임을 깨달았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아이 스스로 자기 언어를 가꾸어가는 리터러시 교육을 지향한다. 요즘은 매일 밤 독서일기를 쓰는 아이를 보며 독서유치원, 독서학교를 꿈꾼다. 지은 책으로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 『책만 팔지만 책만 팔지 않습니다』, 『책 읽다 절교할 뻔』(공저), 『일상 생활자의 작가 되는 법』, 『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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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모래사장은 물새가 없이 너무 너르고 그 건너 포플러 나무의 행렬은 이 개포의 돛대들보다 더 위엄이 있다. 오래 머물지 못하는 돛대들이 쫓겨 달아나듯이 하구를 미끄러져 도망해 버린다. 나무 없는 건넛산들은 키가 돛대보다 낮다. 피부 빛은 사공들의 잔등보다 붉다. 물속에 들어간 닻이 얼마나 오래 있나 보자고 산들은 물 위를 바라보고들 있는 듯하다.
<백석 ‘마포’ 중에서>


하루 동안 서점에서 발견하는 놀라운 사실은 고객의 종류인데 대부분은 루바슈카(rubashka) 입은 장발 청년(이렇게 유달리 차린 청년이 서울 안에 몇 사람이나 있으랴마는)이나 첨단적 지식분자연(智識分子然)한 양복 계급이리라고 예상한 기대를 벗어나 고객 대부분이 중등학교 정도의 생도들이라는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 서점을 찾는 수백 명의 고객의 구십구 퍼센트가 두발 단삭 한 목을 둘러 여민 교복의 중학생들이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효석 ‘도시의 일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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