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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6644928
· 쪽수 : 428쪽
· 출판일 : 2019-09-11
책 소개
목차
그대 그림자 되어 … 7~424
작가의 말 … 425
저자소개
책속에서
집채만 한 무게를 이마 끈으로 버틴 포터가 문 없는 설주를 돌아선다. 거대한 짐에 눌린 등이 구부정하게 굽는다. 포터를 덮은 망태기가 허공을 가른다. 삼박사일을 견딜 식량과 텐트, 포터가 쓸 물건, 다섯의 배낭을 담은 짐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맨 몸으로 걷기조차 벅찬 고소다. 돈을 받는 일이라지만 집채만 한 짐을 걸머지고 산길을 걷는 그들이 초인처럼 비친다. 서둘지 않는 그들 뒤를 맨몸인 나그네가 허둥거리며 좇는다. 는개처럼 어린 황사가 눈코 입을 덮친다. 해발 4천에 밴 기압이 존재를 으른다. 얼굴을 때리는 마파람 탓에 눈을 뜰 수 없다. 입으로 날아든 모래가 서걱거린다. 율이 고개를 깊이 묻는다. 앞뒤 옆을 살필 겨를이 없다. 지금 떼는 걸음에 사력을 다한다.
갈 곳 없는 백수에게 종잡을 수 없는 사내가 알 수 없는 나라를 들이대었다. 율과 동떨어진 티베트가 영혼 없이 떠돌았다. 치언의 눈이 빛을 쏘는 티브이 화면에 닿아 있었다. 율이 함께 시선을 꽂았다. 노란 유채꽃 덮인 들판 뒤에 세모꼴로 선 한라산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율이 귀에 선 낯선 땅을 들으며 아직 못 가본 섬을 바라보았다. 제주도든 티베트든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원시 또는 시원에 닿은 땅을 들으며 어릴 적 오가던 산길을 그리기는 했다. 조각난 기억 틈새로 살아야 할 날과 날마다 드는 비용, 등이 휘도록 일해야 할 하루가 희뜩거렸다. 일자리를 찾아야 할 텐데, 엎어진 김에 쉬어가지. 두 문장이 엇갈렸다.
얽힌 난마가 실마리를 풀었다. 함축된 뜻이 결대로 풀렸다. 붕괴. 생각 못한 단어가 튀어들었다. 밖이 아닌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괴멸이 잇따랐다. 보이지 않는 실금이 빌미가 되어서 망가진다. 몸과 마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낱개로 떠돌던 검부러기가 모이더니 하나의 꼴을 이루었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줄을 그었다. 씨앗을 뚫은 새싹의 힘이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