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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사상가/인문학자
· ISBN : 9791186900833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19-03-29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너무 빨랐다. 너무 분노했다.
너무 똑똑했다. 너무 어리석었다.
너무 정직했다. 너무 의기양양했다.
너무 유대인다웠다. 유대인답지 못했다.
너무 사랑이 넘치고, 증오가 넘쳤으며,
너무 남자 같은 반면, 충분히 남자 같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한나 아렌트라는 인간의 일생이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에 잃어버린 나라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태어난
이 난민 철학자이자 사상가의 이름을 아마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남는(그리고 처음 떠오르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인 이 사람은 왜 철학을 포기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의 사상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주는가?
- 서문 중에서
나흘째가 되자 검은 유리창 아래서 헛소문이 곰팡이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마침내 합리적인 논쟁을 벌이며 함께 대화를 이어갈, 지각 있고 진실만 말하는 상대를 찾아냈다. 나 자신이었다.
‘한나, 이건 인간의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야.’
‘아니야, 한나. 이건 완전히 새로운 인종이야.’
‘왜 그렇지?’
‘이 사람들은…적에 의해서…강제수용소에 갇혔고…’
‘이번에는 동지의 손에 의해…포로수용소에 갇혔어.’
‘아주 좋은 지적이야.’
나는 미친 듯이 글을 써댔지만, 가짜 전쟁이 시작된 지 3년, 내가 가짜 포에니 전쟁을 벌인지도 3년이 지나자 상황이 급변했다. 독일의 방어선의 안쪽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이 처음으로 흘러나왔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집단 처형이 이루어진다는 단편적인 소식들이 신문지면을 조금씩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더 테이번의 단골들은 물론이고 블뤼허도, 심지어 나까지도 그런 소문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1943년 여름, 대량 살상 공장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왔다.
심연의 문이 열렸다. 이전과 이후 사이에, 과거와 현재 사이에, 그때와 지금 사이에 매울 수 없는 깊은 골이 생겨버렸다. 우주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어떻게 내 사랑하는 독일어가 가스실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이해하려고 끙끙대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나은 결과물이 괴테와 쉴러의 언어를 확장시켜 지구 전체를 없애버릴 만한 기계를 탄생시켰다. 독일이 무너지며 원자 폭탄 제조 계획도 무산됐다. 하지만 좋은 발명품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이들은 무시무시한 원자 폭탄으로 2나노초 만에 일본의 도시들을 불바다로 만들어 전쟁을 마무리 지었고, 그로 인해 심연은 더욱더 깊어졌다.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전통이 산산이 부서지는 걸 못 본 체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해해야만 했다. 답을 찾아야만 했다. 이 세상의 무언가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를 위한다며 동족상잔을 일으키게 했고, 다른 인간을 매립지에 묻어버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