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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목회일반
· ISBN : 9791187227779
· 쪽수 : 814쪽
· 출판일 : 2020-07-24
책 소개
목차
이 책을 내면서 / 5
서문 / 9
욥기 1장 / 45
욥기 2장 / 67
욥기 3장 / 84
욥기 4장 / 102
욥기 5장 / 113
욥기 6장 / 131
욥기 7장 / 150
욥기 8장 / 165
욥기 9장 / 177
욥기 10장 / 196
욥기 11장 / 205
욥기 12장 / 217
욥기 13장 / 237
욥기 14장 / 253
욥기 15장 / 275
욥기 16장 / 297
욥기 17장 / 312
욥기 18장 / 322
욥기 19장 / 332
욥기 20장 / 357
욥기 21장 / 369
욥기 22장 / 397
욥기 23장 / 411
욥기 24장 / 429
욥기 25장 / 445
욥기 26장 / 454
욥기 27장 / 472
욥기 28장 / 487
욥기 29장 / 517
욥기 30장 / 531
욥기 31장 / 548
욥기 32장 / 574
욥기 33장 / 586
욥기 34장 / 609
욥기 35장 / 638
욥기 36장 / 648
욥기 37장 / 672
욥기 38장 / 686
욥기 39장 / 736
욥기 40장 / 759
욥기 41장 / 779
욥기 42장 / 792
책속에서
서문
성경은 보편적인 책이다. 그래서 성경은 나이나 성별에 상관 없이 모든 인류의 모든 형태의 삶에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 66권은 25세기가 넘도록 계속 이어져 내려왔으며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쳐왔다. 성경은 “진리의 대양에 있는 한 방울의 진리”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진리의 대양이 한 방울로 응집된 것이다. 다섯 개의 대륙에서 성경 독자 500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성경에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나 성경 중 가장 위대한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로마서, 요한복음, 요한계시록을 들 것이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선호했고, 샘 존스(Sam Jones, 1847-1906)와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잠언과 야고보서를 사랑했다. 예언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편중한다. 소수만이 누가복음과 베드로전서를 꼽을 것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마태복음을 선택하고, 오순절파와 성결교는 십중팔구 사도행전을 선택할 것이다. 갓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진리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데살로니가전서를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책에 관심을 기울인다. 고린도후서가 사역에 관한 가장 위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사도행전을 선호한다. 몇몇 배짱좋은 사람들은 히브리서를 좋아하고, 이사야서나 시편 같은 구약을 손꼽는 그리스도인도 있다.
그러나 문학인에게 있어서 책 중의 책은 욥기이다. 욥기는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깊이 느끼는 사람에게는 책 중의 책이다. 시편은 혼의 마음 속 외침을 생생하게 묘사할 뿐이며, 잠언은 지혜의 샘을 다룰 뿐이다. 그런데 이 지혜가 갑자기 욥기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욥기에 관해서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욥기야 말로 인간 지성의 가장 위대한 걸작품일 것이다”라고 했다. 필립 샤프는 “이 책에 필적하거나 이 책의 선배라고 할 만한 책은 없다”라고 기록했다.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욥기에 관해 “욥기와 같은 문학적 업적을 남긴 작품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딘 브래드리는 “욥기는 성경에서 독보적인 책이며, 세상의 문학 작품 중에서 영감받은 히브리 시의 꽃으로 우뚝 솟아 있다”라고 말했다(<성경 주석가>, 엑셀 저, 베이커 출판사). 왓슨은 사무엘 데이빗슨을 인용해서 “제 일급 광도를 가진 별처럼 욥기 저자의 눈부신 천재성은 사람의 감탄을 자아낸다”라고 말했다. 테니슨 경(1809-1892)은 “욥기는 고대와 현대의 모든 시 중 가장 위대하다”라고 했고, 루터는 욥기는 “성경의 어떤 다른 책들보다 웅장하고 숭고하다”라고 했다.
...(중략)...
엘리후가 B.C.1700년이 되기 훨씬 전에 이 책을 썼다는 타당한 4가지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다.
1. 출애굽기에 나온 연대를 비교해 보면 벌링거가 제시한 연대(B.C.1996)보다 훨씬 이전에 아브라함이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라킨(Larkin)은 B.C.2111년으로 못 박고 있는데 이는 벌링거보다 115년 앞서는 것이다. 이 115년이 에서와 그의 아들들의 연대(창 36장)에 더해지면 욥기 2:11의 “테만인”은 B.C.1780년에 욥을 “위로”하게 된다(창 36:15). 왜냐하면 테만은 에서의 손자이고 에서의 형제인 야곱은 B.C.1700년 전에 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35-37장 주석에서 어셔 주교가 제시한 연대는 B.C.1800-1780인데 이 날짜는 이집트에서의 “430년”을 고려해 볼 때 맞지 않는다(출 1:8-10 주석 참조).
2. 욥기에 나오는 인물의 배경은 모두 족장 시대이다. 수하인 빌닷(욥 2:11)은 수아와 연관되며(창 25:2), 예레미야 49:8의 에돔과 명백히 연결된다. “테만인 엘리파스”는 창세기 36:10-11에서 그 이름을 얻었고, 분명히 예레미야 49:7과 아모스 1:11,12에 나오는 에돔과 연계된다. “후스”(창 22:21)의 형제는 같은 문맥에서(렘 25:23) 찾아볼 수 있으며, 계속해서 예레미야에서 참조 구절을 얻을 수 있다. 예레미야는 52장으로 되어 있다(4×13). “예레미야”란 단어는 “쫓겨난”(cast out)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그 책에서 13번 나온다. 예레미야는 분명히 계시록 11:1-4의 모습을 미리 보면서 예언한 것이다. 이 때에 아이를 갖는 여자들에 대해 경고하신 구세주께서(마 24:19) 예레미야에게 결코 아이를 갖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렘 16:2). 소팔은 엘리파스와 빌닷처럼 신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스 땅”에 소팔이 살았다고 추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예레미야가 “우스 땅”을 에돔과 동시에 언급하기 때문이다(애 4:21, 렘 25:20). 창세기 36:28에서 우리는 우스 자신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그 땅 이름이 붙여졌다) 에돔 땅에 살았던 “호리인”임(창 36:20,21)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욥기의 배경은 시내가 아니라 에돔이며, 그 등장 인물은 에서의 손자들과 동시대인들이다. 모세와 동시대인이 아니다.
3.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아담이 살았던 이전 시대에 관한 참조 구절을 완전히 간과한다. 그때 홍수가 있었다(욥 8:8; 21:12; 22:15,16; 20:7-15; 31:33; 15:19). 이 구절이 언급되면 주석가들은 연대기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주석을 달지 않는다. 욥기의 등장인물들이 범죄자들과 범죄에 관해 말할 때 그들 마음 속에 아담과 홍수 때의 육체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욥기가 “모세 이후”에 기록된 것이라면 왜 파라오가 언급되지 않는가? 파라오는 출애굽 이후로 “죄수 중 우두머리”가 아닌가? 게다가 욥기에 창조에 관한 주제가 왜 계속해서 나오는가?(욥 25:5; 26:7-14; 38:4-10; 15:15 등).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왜 언급되는가?(욥 1, 2, 38). 여호수아, 재판관기, 사무엘상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언급이 없다.
4. 연대 문제를 단번에 확고하게 매듭짓자면 욥기 어느 곳에서도 “모세의 율법”에 관한 언급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호수아나 느헤미야를 읽어 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이후에는 (출애굽 이후) 히브리 성경에 “모세의 율법”이나 “율법 책”이라는 표현이 9번은 언급되며, 포로기 이후 기간에는 15번 이상 언급되는 것을 알 것이다. “토라”(히브리어로 “율법”이란 단어가 출애굽기 12:49와 말라키 4:4 사이에 100번 이상 나온다. 그런데 그 단어가 욥기에서 유일하게 언급되는 때는(욥 22:22) 하나님께서 욥에게 직접 말씀하실 수 있는 뭔가에 관한 언급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에(욥 41,42장) 욥에게 그 말씀을 하셨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벌링거가 말한 것처럼 욥이 잇사칼의 아들이라면(창 46:13) 어떻게 자신의 할아버지나 증조 할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야곱의 아들들이 아브라함의 축복에 대해(창 12:1-4) 몰랐다고 말하려는가? 욥이 야곱의 자손이었다면 욥에게는 그런 재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축복을 약속받은 후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욥이 야곱의 자손이었다면 엘리후가 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겠는가? 엘리후는 나홀의 둘째 아들이며 아브라함의 형제인 부스의 자손임이 명백한데도 말이다(창 22:21). 본문을 있는 그대로 보면(욥 32:16) 엘리후라는 이름의 증인이 이 책을 기록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책은 우리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시해 준다.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왔더라.
7 주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디서 왔느냐?” 하시니,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말씀
드리기를 “땅에서 여기저기, 위아래로 두루 다니다 왔나이다.” 하니,
8 주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종 욥을 유의해 보았느냐? 세상에 그와 같은 사
람은 아무도 없나니, 그는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9 그때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욥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리이
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가 소유한 모든 것에 사면으로 장벽을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
께서는 그가 손으로 하는 일에 복 주셨고, 그의 재산이 그 땅에서 늘어나게 하셨나이다.
11 그러나 이제 주의 손을 내밀어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쳐 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주를
정면으로 저주하리이다.” 하더라.
12 주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이 네 권세에 있으나, 다만 그
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라.” 하시니, 사탄이 주의 임재 앞에서 물러가니라.
이때 욥의 인생의 무대에 “우리 형제들의 고소자”(계 12:10)가 등장한다. 그는 성경에서 50번 이상 등장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성경에는 18명의 적그리스도의 유형이 나온다(<짐승의 표>, 말씀보존학회, 1997. 참조). 성경에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 관한 정보보다 이 “죄의 사람”(살후 2:1-3)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정보가 더 많다. 성경에서 사탄은 능력과 지혜에 있어서 하나님 다음이다(슼 3:1-2). 천사장조차도 사탄을 비방할 수 없다(유 9절). 그는 별 노력도 들이지 않고 “온 세상”(계 12:9)을 미혹할 수 있다. 그는 거의 6000년간의 기록된 역사 속에서 그와 함께 링에 오른 모든 사람을 패배시킨다(한 사람만 제외하고).
성경에 나오는 사탄은 통치자이며(그리스도처럼), 신이고(그리스도처럼), 천사이며(그리스도처럼,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갈라디아서>, 말씀보존학회, 1997. 4:14 참조), 메시야이고(“기름부음 받은,” 겔 28:14), 왕이다(욥 41:34).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는 흰 말을 타며(계 6:1-2), 성경을 인용하고(눅 4:10), 도시인 신부를 가지고 있으며(계 17장), 그리스도처럼 그에게도 사역자들, 사도들, 교회들이 있다(행 19:37). 그가 활동하는 주요 영역은 종교 영역이며 “종교”를 제거하기 위해 종종 과학과 교육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일시적으로만 그럴 뿐이다. 이 선견지명이 있는 “이 세상의 신”(고후 4:4)에게는 미래에 성취될 계획이 있다. 외계에서 지구로 내려와서(계 12:3-12) 인류의 지배자이며 구세주로 자처하며 보좌에 앉는 것이다(살후 2:1-10). 그는 과거에는 그룹이었으며(겔 28:14), 현재는 용이며(사 27:1-2), “빛의 천사”로 나타난다(고후 11:1-14). 모든 천사는 남성이므로 그도 외계에서 온 한 남자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며(계 13:18, 사 14:16), 과학, 교육, 종교가 지난 5,800년 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왔더라』(6절). 여기에 사탄과 함께 온 “하나님의 아들들”(6절)은 아담 이전의 존재들이다(욥 38:7 주석 참조). 그들은 시편 82편과 창세기 3:5의 “신들”로 창세기 6장 주석에서 이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 장면은 열왕기상 22장과 연결된다. 거기서는 거짓말하는 영이 아합을 속이고 “한 방” 먹인다.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왔더라』(6절)는 말이 과거 시제로 단순한 서술체로 본문에 나온다. 그러나 고통, 죽음, 마귀 숭배, 배교, 무지, 거짓말, 도둑질, 굶주림, 살인, 저주로 가득찬 6000년이라는 인간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말은 참으로 무시무시한 말이다. 사탄이 시몬 베드로와(눅 22:31) 다윗(대하 21:1)을 노린 것처럼 여러분을 노렸다면, 그러한 상황에서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모든 은혜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기도와, 성경에서 읽을 수 있는 모든 약속과 성령께서 주실 수 있는 모든 위로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왔더라”는 “다가올 사건들”의 전조이다. 이런 선언에 참여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피가 얼어 붙을 것이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7절) [마 26:50에서 이 질문의 짝을 살펴보라.] 이 질문에는 사탄이 지상에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행 14:12 주석에 나오는 “쥬피터”에 대한 설명과 계시록 12:10의 “우리 하나님 앞에서”에 관한 주석 참조!] “땅에서 여기 저기”(7절)라는 말은 “두루 다니는” 베드로전서 5:8의 “울부짖는 사자”와 일치한다. “땅에서”(in the earth, 7절)라는 표현은 8절에서 욥을 언급하며 나오는 “세상에”와 일치한다. 물론 이 말은 지구 안(inside the earth)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사탄이 땅 속을 여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너는 내 종 욥을 유의해 보았느냐?』(8절) 사탄이 욥을 “유의해 보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호수아(출 33:11), 모세(수 1:1), 다윗(시 19:11, 13), 야고보(약 1:1), 유다(유 1), 요한(계 1:9), 바울(딛 1:1)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사탄은 그들을 “유의해 본다.” 하나님을 섬기는 어떤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이시면(요 12:26) 경배받기를 원하는 한 신이(살후 2:2-8) 이 경쟁자에게 관심을 표명하지 않겠는가?
『욥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리이까?』(9절) 즉 “욥이 당신을 두려워하는 동기가 단순히 그가 경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마귀는 재빨리 욥을 고소한다. 『주께서...사면으로 장벽을 두르심이...그가 손으로 하는 일에 복 주셨고...』 사탄이 내세우는 전제는 분명하다. 욥은 부유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선하다는 것이다. 그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과 부를 제거하고 나면 욥은 타락하게 될 것이다.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쳐 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주를 정면으로 저주하리이다』(11절).
이것은 우주의 지방 검사가 욥을 박해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 준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시며 변호인이시다. 즉 그분은 피고측 고문 변호사로 형사 변호사이신 것이다. 사탄은 사형이나 그와 연관된 어떤 것이라도 수행할 수 있는(욥 2:6) 완전한 권세를 가진(히 2:14) 지방 검사로 나타난다. 9-11절에서 우리는 사탄의 이론을 알 수 있다. 즉 빈민가가 범죄자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생태 문제가 범죄 행위 배후에 있다. 환경 탓이다. 사회적 상황 탓이다. 소득이 문제다. 가난 탓이다. “기존 체제” 탓이다. 욥의 위치에 대해 사탄이 분석한 것은 나름대로 적절하다. 이것을 구약의 “구속 역사”로 간과하기 전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오늘밤 여러분을 발가벗기신다면 그래도 여전히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장면은 실제 상황이다. 오늘날에도 정기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 장면에는 “묵시적”이거나 상상의 산물은 전혀 없다. 죄나 죽음만큼 실제적이며 “현대적인” 일이다. 현대 과학자들이 이 장면을 본 적이 없다거나 살아서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성경은 베일을 걷고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면 전혀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영역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을 거부하고 싶다면 생명을 걸고 거부할 수도 있다. 불교, 카톨릭, 공산주의는 절대 진리를 거부하고, 어떤 분명한 목표도 없이 통합을 향해 간다. 이와 같이 현재의 모든 종교·철학 체계는 신약에 나오는 구원에 대한 계시를 거부한다. 구원이란 불못에서 나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신”(고후 4:4)에게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어떤 신학이나 과학이나 철학 단체는 실제로 살아 있는 인격인 사탄이라는 존재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 다음 사항을 거부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1. 성경적 속죄 교리(<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골로새서>, 말씀보존학회, 1997. 2:8-16 참조).
2. 믿는 자들을 위한 올바른 영적 축복(엡 6:9-15).
3. 현대의 문제들의 기원에 대해 창세기에서 하는 설명.
4. 메시야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복음서의 설명(눅 4:1-9 참조).
5. 지상에서 일어나게 될 사건을 다루는(계시록 11,12,13,19,20장 주석 참조) 계시록의 역사
적 사실성.
사탄을 “악의 원리,” “신화에 나오는 대적자,” “요정” 정도로 처리하는 사람은 성경을 믿지도 않는 것이며 마귀의 실체를 올바로 파악할 수도 없다.
『이제 주의 손을 내밀어』(11절). 하나님의 손과 사탄의 손이 얼마나 밀접하게 작용하는지 주의해 보라. 주께서는 즉시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라』(12절)고 말씀하시고, 다음 장에서는 『네가 나를 움직여 그를 대적하도록 하여, 까닭없이 그를 파멸시키려 하였으나』(욥 2:3)고 말씀하신다. 사무엘상 24:1과 역대기상 21:1에서 특이한 상호 교환 과정을 주의해 보라. 출애굽기 12:12,13,23의 말씀에서도 이와 같은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주님과 사탄은 너무도 가까이서 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와 성령의 조명을 떠나서는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난, 질병, 무능력, 죽음, 부채, 이혼, 유기, 저주, 마약 남용 등이 발생할 때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모든 헌신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맨 처음 직면하게 되는 실제적인 문제는 이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즉 이 장애는 주께서 나를 막으시기 위해 경고하시는 것인가, 이 일을 그만 두게 하려고 사탄이 하는 일인가? 욥처럼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욥의 아내처럼 생각한다. 욥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지옥으로 가는 것이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보라,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이 네 권세에 있으나』(12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뜻의 첫 번째 조치는 욥에게 속한 것은 모두 사탄에게 넘겨 줘서 “그 육신을 멸망케” 하는 것이었다(고전 5:5).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사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욥의 자녀들과 재산을 사탄에게 넘겨주셨지만 욥의 건강은 보류해 두셨다. 다음 장에서는 욥의 건강을 파괴시키고 생명은 남겨 두신다(욥 2:6). 즉 사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도록 허락하신 것만큼만 할 수 있다(롬 8:28).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것은 큰 위안이 된다. 왜냐하면 상황이 아무리 악화되더라도(예를 들면 로마서 8:25-35), “피로 씻겨진”(계 1:5) 구속받은 혼을 파괴하도록 허락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할렐루야!
『사탄이 주의 임재 앞에서 물러가니라』(12절, 카인을 언급하는 창세기 4:16의 말씀과 비교).
욥의 드라마를 계속하기 전에 잠시 로비로 나가서 “자격을 갖춘 권위자들”이 욥기의 서두 장면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 살펴 보도록 하자.
아담 클라크와 메레디스 클린(위클리프 주석)은 문제를 전혀 처리하지는 못했지만 본문에 별 큰 수정을 가하지는 않는다. 반면 헤브너는 칠십인역 필사본은 히브리 본문의 20%를 삭제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Ibid., 421쪽). 피크는 “재산”(substance, 3절)을 “가축”(cattle)으로 바꿨고, 버드는 “마음”(heart, 5절)을 “생각들”(thoughts)로 바꿨다. “저주하였을까”(cursed, 5절)란 단어가 에왈드, 델리취, 딜만, 데이빗슨, 슐롯만의 저작물에서는 “말로 표현된 작별”(bidden farewell)로 바뀌었다. [5절의 “저주”라는 단어는 어떤 경우에는 “축복”으로 변역될 수도 있다. <킹제임스성경> 본문의 독보적인 권위를 이것으로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이 “he blesses him out”이라고 하면 “그를 저주했다”(he cursed him)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에스터리와 로빈슨은 욥기의 연대와 역사적 배경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며 <리빙 바이블>(Living Bible, 틴데일 출판사)은 3절에서 셈족이라는 구절을 지우고 “그 지역 전체에서”(in that entire area)로 대체시켰다. 이상하게도(배교를 공부한 사람에게는 이상할 것이 없다.) 테일러는(죽은 성경, The Dead Bible) 여기서는 “하나님의 아들들”(6절)을 “천사들”로 번역하지 않는다. [사탄의 인도를 받는 보수주의 학자들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14,16,19장 주석 참조.] “저주하였을까”(cursed, 5절)를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다”로 변개시키기 전에 테일러는 미국 유대 출판 협회에서 영어로 출판한 맛소라 본문을 무시한다. 왜냐하면 그 출판물에는 “신성을 모독하였을까”(Blasphemed)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킹제임스성경> 본문은 대개 리빙 바이블(The Living Bible) 같은 먼지털이보다는 히브리 맛소라 구약 본문에 훨씬 더 가깝다. <뉴스코필드 성경>은 본문에서 네 단어를 고치고서는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공인 역본”이라고 생각하도록 속이고 있다. <뉴스코필드 성경>의 서문에는 그 책이 <킹제임스성경>이라고 되어 있는데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은 그 성경의 난외에 쳐박혀 있다. <뉴스코필드 성경>은 <킹제임스성경>이 전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