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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

피터 럭크만 (지은이), 윤지영 (옮긴이)
말씀보존학회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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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사도행전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85910642
· 쪽수 : 664쪽
· 출판일 : 2015-05-15

책 소개

현대의 대부분의 이단들은 사도행전을 잘못 해석해서 오류를 범했다. 이 책은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이 범한 교리적 오류들을 명쾌하게 바로 잡았으며, 초대 교회와 교리의 발전,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진짜 성경적 기독교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목차

서 문 5

사도행전 1장 19
사도행전 2장 62
사도행전 3장 126
사도행전 4장 148
사도행전 5장 174
사도행전 6장 190
사도행전 7장 203
사도행전 8장 228
사도행전 9장 251
사도행전 10장 269
사도행전 11장 291
사도행전 12장 302
사도행전 13장 315
사도행전 14장 340
사도행전 15장 353
사도행전 16장 377
사도행전 17장 399
사도행전 18장 427
사도행전 19장 447
사도행전 20장 467
사도행전 21장 490
사도행전 22장 504
사도행전 23장 516
사도행전 24장 528
사도행전 25장 544
사도행전 26장 553
사도행전 27장 574
사도행전 28장 595

저자소개

피터 S. 럭크만 (지은이)    정보 더보기
피터 럭크만 박사(1921-2016)는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였으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5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로 일했다. 특히 그의 저서 <필사본 증거>,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 <신약교회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6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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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서문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이 책에 붙인 “사도들의 행적”(Acts of the Apostles)이라는 제목은 적절한 표현이다. 이 책은 분명히 “사도들의 행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비롯한 열한 명의 사도들의 행적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뽑고, 오순절을 기다리며, 이스라엘에게 설교하고, 병자를 치유하며, 집사들을 선출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천국”의 문들을(마 16:19) 이방인에게 열어 준다. 이 책은 바울, 실라, 바나바 - 이들은 모두 “사도들”(행 14:14)로 불린다 - 의 행적으로 끝을 맺으나, 복음은 사도들의 “표적과 이적”(롬 15:19, 고후 12:12)과 더불어 땅 끝까지 전해지게 된다.
다른 주석서들을 읽어 본 독자라면<킹제임스성경-이 이 책에 붙인 제목까지 공격 대상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죽은 정통 보수주의자들(페이지, 렌돌, 로버트슨, 샤프, 모울튼, 브루스, 클라크, 래드, 벌링거, 노울링, 그로티우스, 알포드, 워즈워드 등)은 어떠한 이유로든 종교개혁 성경의 권위에 맹렬하게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예가 풀러 신학교의 “성경” 신학 교수 래드(Ladd)가 쓴<위클리프 주석-에 있는데(p.1123), 그는<킹제임스성경-에 있는 제목이 “원본”에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36:23 이후로 죽은 정통 보수주의자들이 해 온 말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원본”을 본 적이 없으며, “원본”을 본 사람을 알지도 못하며, 더구나(존 R. 라이스, 월버 스미스, 아쳐 웨니거, 로크만 재단과 마찬가지로) “원본”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1880년과 1990년 사이에 “보수주의 학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이 “원본”에 대해 고의적인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다.<사탄의 걸작품 NASV-을 읽어 본 독자들이라면 이 말이 진실이며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1880년 이후로 모든 주요 보수주의 주석가와 성경 개정자(혹은 헬라어 교수)는 자신들이 “원본”의 내용을 안다고 수업이나 논문을 통해 큰소리를 쳐 왔다.
이들이 ‘사도행전’ 대신 제안하는 제목들은 거룩한 사도들의 행적, 성령의 복음, 행적, 부활의 실증, 성령 행전 등이다. 헤롤드 만서(<참조 성경- 편집자, 1959)는 토레이, 존 샘피, 로버트슨(소위 보수주의자들)을 변호한다. 즉,<킹제임스성경-에 있는 이 책 제목은 그 책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종교개혁 성경의 권위를 전복시키는 비평가들과 어떤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때로는 진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1880년 이후로 성경 주석과 개정은 주로 장사치들과 사기꾼들의 일이 되어 왔으며, 그들 중 어떤 이들이 “근본주의”를 믿는 “경건한 사람들”로 통한다 해도 그들은 325년 니케아 공회 이후로 그리스도의 몸에서 일어난 가장 큰 배교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로크만 재단이 만들어낸 변개된 성서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킹제임스성경-의 적들조차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냈다. 즉 미국의 종교와 도덕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고대 영어”로 번역된<킹제임스성경-이 밀려나고 “대중의 언어”로 번역된 “보다 나은 번역본들”이 출판되면서부터 더 빠르고 더 심하게 타락해 왔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성령께서는<킹제임스성경-의 “고대 영어”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시며, 지금도 여전히 300년 이상 된 그 성경을 가지고 일하신다. 성령께서는 가장 최근에 나온 34개의 번역본을 합친 것보다 그 책으로 더 많은 일을 하신다.
사도행전은 28장, 1,067절, 24,250단어(영어<킹제임스성경-의 경우)로 되어 있으며, 저자는 “사랑하는 의사”(골 4:14)인 누가이다. 이 사실은 첫 구절에서부터 명백히 드러나 있으나, 학자들은 여기에마저 이론을 제기한다.
R.J. 노울링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는 또한 누가의 이름을 담고 있는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말한다(<주해 헬라어 성경- 1권 p.3). 노울링은 불가지론자이며, 바르트나 부르너와 마찬가지로, 명백한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이다(눅 1:1-3, 행 1:1 비교). 브루스도 “사도행전은 1세기의 한 그리스도인이 기록한 책...”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성경의 다른 어떤 역사서보다 더 분명하게 입증된다(행 1:1 주석 참조)는 점에서 볼 때, 보수주의 신학교의 교수들을 위한 교재를 집필한 사람들이 “학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알 수 없다고 변명한다는 것은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들이 에베소서 2:8-10 대신 사도행전 2:38을 근거로 성도를 논쟁에 말려들게 하는 것처럼, “대다수의 인정받는 학자들”은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논쟁에 성도를 끌어들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서로 다른 견해들을 수없이 제시하여 성도의 믿음을 파괴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이 사람들의 학문과 연구 결과들이 존경할 만하거나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현대의 기독교 교육의 진짜 목적은<킹제임스성경-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이론과 견해 속에 성도를 파묻어서 결국은 성경의 저자를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의도적으로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구냐는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수많은 이론들을 제시한다. 모펫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 57단어에 관해 무엇을 증명했는가? 윈디스크(Windisch)가 이것을 인정했는가? 클락은 그것을 부인했는가? 그렇다면 이유는? 낙스는 이 질문들에 답변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하르낙은 그것을 지지했는가? 호바트와 잔은 이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 캐르베리는 이것을 반박했는가? 그렇다면 브루스와 메이저의 의견이 진리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이런 논쟁의 목적은 신학에 입문한 학생들로 하여금 위대한 지적 거인들이 “원문”에 더 가까워지기 위한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확신시키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모든 사람이<킹제임스성경- 본문을 바꿈으르써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는 생각을 순진한 학생들은 결코 못할 것이다. 이 학자 무리 중 단 한 명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관해 설교할 정도의 지식도 없다. 우리는 아무도 정죄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순히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경건한 학자들”의 의견을 공부하는 데 시간과 시력과 돈을 낭비한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아 온 것이다. 세 번째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누가가 기록했다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이 세상의 지혜”(고전 2:4,6)에 우리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며, 지혜를 얻기 위해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는 “학자들”이다.
기록 연대 문제에서 우리는 다시 상충되는 많은 의견들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며, 성도의 지각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며, 아무에게도(구원받았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조명을 주지 못한다.
바우어(실제적으로는 무신론자인)와 튜빙겐 학교는 이 책이 2세기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했다. 브래스와 제롬은 57-59년으로, 산데이 박사와 플러머 박사는 80년으로, 하르낙은 최대로 잡아서 93년까지로, 굳스피드와 스코트는 90년으로, 토레이는 61년으로, 모펫은 100년으로 결정을 내린다. 먼저 이들의 비평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과 그들의 연구 동기로 인해서 이런 학자들은 무시할 수 있고, 오히려 우리는 성령께서 보존하신<킹제임스성경-에서 두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1. 저자(누가)는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이 처음 투옥되었을 때까지는 그의 책을 완성하지 못했다. 투옥은 (어떤 성경 연대기를 보더라도) 58년 이후이다.
2. 저자 누가는 그의 전 작품 어디서도(눅 21:24) A.D.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사도적 권위를 다루는 역사서에서, 저자가 사도적 권위의 원천이 되는 저자가 1세기의 두드러진 역사적 사건을 간과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행 8:14 주석 참조). 대부분의 성경적 연대기로 볼 때 바울은 A.D.66-69년 사이에 참수형당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끝마칠 쯤에 참수형당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기록 연대는 명백히 A.D.59-65년 사이가 된다. 대부분의 정통 연대기가 사도행전 28장을 A.D.62-63년에 두기 때문에(스코필드, 벌링거, 아담 클라크 등)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은 A.D.64-65년이다. 이런 “추측”은<킹제임스성경-에 나타난 사실과 숫자를 문자적으로 믿는 데서 나온 것이다. 대다수의 보수주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들과는 상관없이 사도행전 9:32; 11:25; 12:24; 15:41; 17:1; 28:30, 갈라디아서 1:18; 2:1의 성경적 권위가 앞에서 말한 연대를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기록 연대와 저자”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다뤄야 한다. 왜냐하면 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저자의 주석서<에베소서- 서문 참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계시며” 과거에 대한 역사적 정보는 현시대와 분리시킨 죽은 정통주의 보수주의자만을 매료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 관한 주석서들을 읽는 것은(지금 필자 앞에는 15개의 주석서가 있다) 철도 시간표 외우는 일로 소일하는 80세 노인이 안내하는 지루한 관광을 하는 것같다. 캠벨 모건과 존 R. 라이스는 가장 신선하지만 내용의 80%가 교리와 관련 없는 내용이다. 코넬리우스 스템은 가장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모든 곳에서 교리적이다! 그러나 나머지 주석서들은 2,3일간 부엌 싱크대에 놓여 있는 타버린 토스트 같을 뿐이다.
사도행전을 성경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현존하는 서양의 4대 이단 그룹이 자신들의 이단 교리를 정립하는 데 이 책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1850년부터 현재까지 대표적인 주석가 중 단 한 사람도 사도행전이 당대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킹제임스성경- 본문을 배격하는 모든 시대의 주요 주석가들을 성령께서 “제쳐 두셨음”을 의미한다. 모두가 본문을 파괴하고 그리스도인의 관심을 성경에서 인간의 권위로 돌림으로써 생계를 유지했다. 그리하여 성경을 배우는 데 성경 본문 대신 자신을 참조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장황한 토론들은 헌신이나 영적 지혜, 심지어는 성경 지식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들은 아무런 영적 장비가 없음에도 자신들의 두뇌를 최대한 사용해서 “진리”를 상술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사도행전에 있는 “문제점”들을 알고 있으며, 이런 점들을 매우 심각하게 토론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급급하다. 사도행전에서 죽은 정통주의 보수주의자들은 최선을 다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들은 예언을 억누르고, 실제적 적용을 피하며, 교리적 논쟁을 피하면서 불필요한 것들에 종이와 잉크를 더욱 낭비하기 때문이다.
교리적으로 볼 때 사도행전의 필수사항은 이 책이 다음 네 가지 이단 교리들의 근본적인 “근거 구절들”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1. 칼빈의 교리 및 극단적 칼빈주의.
2. 극단적 세대주의.
3. 침례에 의한 중생(카톨릭 및 그리스도의 교회).
4. 신유와 “방언”(은사주의 집단).
A.T. 로버트슨(미국의 모든 보수주의 학교에서 추천하는)은 이런 사실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F.F. 브루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4대 이단 교리 모두가 그가 주석을 쓸 때 영국에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것들은 제미에슨과 포셋과 브라운이<단권주석, One Volume Commentary-을 쓸 때에도 존재했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위의 학자들은 사도행전의 “어려운” 구절들에서 나온 당대의 교리적 혼란(벧후 3:16)을 단 한번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사도행전 주석을 썼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도행전을 더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로버트슨, 브루스,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그리고 그들과 똑같은 80명 이상의 학자들) 등이 이 책에서 중요한 것들을 지나쳤을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오류를 남겼음을 알 수 있게 된다.
1. 헬라어 “미완료 시제”를 번역하는 데 자신의 규칙들을 고수하지 않았다.
2.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부정적인 비평을 했다.
3. 본문의 단어들을 바꿈으로써 심오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참조 구절들을 파괴시켰다.
4. 구원받지 못한 헬라어 문법학자들과 작가들의 의견에 동의하기 위해 단어들을 바꾸었다.
5. 가장 심하게 변개된 필사본들을 “최상의” 사본이라고 평했다.
6. 벨과 용, 토빗, 유딧을 포함하고 있는 필사본을 “위대하다고” 평했다.
7. 개인적 주관으로 일관성 없이 성경 본문을 수정했다.
8. 성경 공부와 기도의 부족으로 어리석은 변개를 가했다.
9.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사실을 없애고자 했다.
10. 어떤 단어가 신학적 이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헬라어의 일차적 뜻을 거부했다.
11. 본문에 나타난 “실제적인” 신학적, 교리적 문제들에 직면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거부했다.
12. 그들이 사랑하는 필사본(바티칸 사본)이 표준원문과 일치할 때는 오히려 그 본문을 택하지 않았다.
13.<킹제임스성경-이 엉성한 “숙어적 표현”을 사용했다고 비난하고는 자신들도 정확히 똑같은 일을 했다.
14.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증하는<킹제임스성경-의 이탤릭체 삽입에 분개하면서 자신들은 그것을 공격하기 위해 단어들을 삽입시켰다.
15. 문자적 예언들을 비유적으로 만듦으로써 천년왕국 이전에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계속적으로 부인했다.
16.<킹제임스성경- 본문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17. “원본”에 대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다.
18.<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고어를 분명한 단어로 대체시켰다고 비난한 후 자신들도 똑같은 일을 했다.
19. “필사본 계열들” 사이에 뚜렷한 구별이 있다고 말하면서 어떤 한 계열에 속해 있는 필사본이 다른 계열에 속해 있는 것처럼 속였다.
20. 상습적으로(그리고 거의 편집증적으로) A.D.300-500년 사이에 기록된 필사본들을 사용하면서 그것들이 B.C.250-150년에 기록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이 20가지 뻔뻔스러운 거짓말과 어리석은 짓들은 “훌륭한 사람”-교육을 받았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임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기서 ‘인격’이나 ‘관점’ 이상의 것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현대 기독교 교육의 목표라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죽은 정통주의 학자의 권위로 대체시키는 것임을 거듭거듭 증명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 학교가 “사도들의 행적에 관한 램세이와 하르낙의 연구 업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약에 나타난 사실 중 어떤 것들은 역사적으로 사실임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불신자들이 한 시도”로 표현되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A.T. 로버트슨, 필립 샤프, F.F. 브루스, 라잇풋, 린드세이, 쿡, 덴톤, 낙스, 빈센트, 스코트, 알포드, 렌돌, 바움가튼, 해킷, 드웻, 메이어, 데이비슨, 하우선, 라이스, 스펜스, 로크만 재단이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본문을 거부하고, 성경을 미워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연구 결과”로 대체시키는 부분에서, 우리는 완벽하고도 결정적으로 그들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경건한지, 학자로서의 그들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를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이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세상의 지혜를 경멸한다(고전 1-2장). 보수주의 학자의 연구 결과 앞에서 위축되어 겁에 질린 토끼처럼 될 필요는 결코 없다. 이 연구 결과들이(과학적이든, 종교적이든, “기독교적”이든, 아니면 학자적이든) 성령께서 사용하시는<킹제임스성경- 본문에 위배될 때, 성도는 자신의 생각을 학자들에게 맞출 필요가 없다.<킹제임스성경-은 출판된 이후로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보수주의 학자들보다 항상 100-300년이나 앞서왔다. 향후 2,000년 내로 교육이나 철학, 과학, 종교가 그것을 따라잡을 위험은 전혀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세발자전거나 로울러 스케이트가 메르세데스 벤츠를 따라잡으리라고 기대하는 편이 나으리라.
“경건한 사람,” “훌륭한 사람들,” “근본주의자”라는 단어가 파괴적인 비평가의 글에 나올 때 학자나 교육에 점수를 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위험한 일이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용되는 속임수이며, 1880년 이후로 “대부분의 보수주의 불신자들”이 효과적으로 사용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존 R 라이스는 “구령하는” “근본주의자”이자 “전천년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는 계시록 22:14에서 자신이 성경 본문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우리가 각자의 “기호”에 따라 사도행전 8:37을 취할 수도 있고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용감하게 “믿음을 위해 싸우며” “성경의 절대 권위”를 고수하는 현대의(1930-1980) “정통주의 요새들”이 취하는 전형적인 접근 방법이다. 이들 중 누구도 성경을 가진 적도 없고 성경을 본 적도 없으며, 성경을 읽어 본 적도 없으며, 성경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없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믿을 만한 번역본”과 “믿지 못할 번역본들”일 뿐이다. 그들은 어느 것이 “믿을 만하고” 어느 것이 “믿을 수 없는가”를 결정하는 최종권위의 자리에 자기 자신들을 둔다. 즉 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최종권위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다.
무오한 성경의 권위를 믿지 않는 데 대한 라이스의 알리바이는 “그런 교리는 성경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그의 말은 진심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권위 문제에 대한 아무런 해답도 되지 못한다. 이 점에서 라이스의 논리의 두 가지 두드러진 허점을 살펴보자.
1. 성경에 “영감받은 원본”이 무오하거나 실수가 없었다는 교리는 없다. 성령께서 친히 “모든 성경은...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딤후 3:16)라고 말씀하셨을 때, “축자적으로 영감받은 원본”을 언급하는 단어는 하나도 없다. 단지 ‘성경’이라는 단어가 있을 뿐이다. 당신은 ‘성경’을 한 권 가지고 있는가? ‘모든’ 성경을 가지고 있는가? 그 구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딤후 3:16)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학자들은 “최초의 원본”을 말하고 있다. 만일 요한계시록이 요한복음보다 열등하다면(모든 보수주의 및 자유주의 학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최초의 원본”이 1611년<킹제임스성경-보다 더 열등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2.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벧후 1:21). 성령께서 성경을 기록하셨다고 되어 있는 성경은 없다. 베드로후서 1:21에 따르면 성경은 기록되기 전에 말해졌다. 바울 서신서에도 이 사실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펜을 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많은 성경이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 해도, 많은 부분이 말해진 다음에 기록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 문제에 관해 베드로후서 1:21에서 성령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감받은 원본”을 외치는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권위로서 모순되게도 원본의 ‘복사본’이나 ‘번역본’을 인용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3:16, 디모데후서 3:16, 베드로전서 1:21이 올바르게 복사되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올바르게 복사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넣으신” 성경에 대한 신약의 권위는 없어진다.
성경대로 믿는 우리들은 디모데전서 3:16이<킹제임스성경-에서 올바로 복사되었고, 1901년 ASV(훌륭한 사람들과 경건한 보수주의자들이 번역했으며 미국의 모든 주요 기독교 대학에서 추천되고 있다)에서 틀리게 복사되었음을 안다.
원본이 없는 지금,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어떤 것이 성경이며 어떤 것이 아닌지를 어떻게 아는가? 이런 아첨꾼들 중 아무도<킹제임스성경-이 무오하다고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교리는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원본”이 아닌 헬라어 필사본이나 영어 성경의 구절을 사용해서 맹세를 하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데살로니가전서 2:13과 사도행전 27:25을 믿으며, 이런 파괴적 비평가들을 무시하는 성도야말로 가장 성경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두 편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하나님의 권위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대체시키고자 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한 편만 있다고 생각하게끔 했다. 이들은 내가 펜을 들거나 타자기 앞에 앉기 훨씬 전에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었다(1880-1901). 그들은 필사본 증거와 번역본들에 대해 거짓말을 함으로써 이견을 만들어냈다(1930-1970).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순수하다(시 119:140). 부패한 필사본과 부패한 동기를 가진 이 부패한 보수주의자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부패하지 않는 말씀을 부패시키고자 할 때, 우리는 “성령의 칼”(엡 6:17)로 6피트짜리 다마스커스 강철 검과 버터 바르는 칼(히 4:12)의 차이를 보여 줄 것이다.
사도행전 1-15장을 읽을 때 독자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아무도 창세기부터 말라키까지의 구약성경 외에 다른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대한 바울의 교리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에 계시되었으며, 사도행전의 처음 일곱 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이 사도행전 2장만을 붙들고 자신들의 교리로 삼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규정해 준다. 즉 그들은 영적으로 어린 아기들이거나, 그리스도인에게서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벧후 2:1-3) 거듭나지 않은 교사들이거나, 둘 중 하나다.
성경을 올바로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도행전을 통해서 오순절 운동, 행위로 인한 구원, 침례에 의한 중생, 종교적 공산주의(행 2:44)를 주장하게 되어 있다. 사도행전 2장에 묶여 있는 사람은 일생 동안 자기 의를 내세우는 “선을 행하는 자”가 되며(행위에 의한 구원), 구원을 의심하고(침례에 의한 중생), 종국에는 순복음 그리스도인 실업인이 클라렌스 라킨을 피하듯이 교리적 진리를 기피하는 사회사업가로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물개들(침례에 의한 중생을 주장하는), 방언하는 자들, 종교적 돌팔이 의사, 자기 중심적인 인본주의자, 죽은 정통주의 세대주의자, 신학교 사서들에게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마태복음에서 로마서로 이어지는 과도기적인 책이 여기 있다. 이 책은 초대 교회와 기독교 교리의 발전, 편견 극복에 관련된 문제들,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보여 주며, 그 누구도 놓칠 수 없는 진짜 성경적 기독교의 모습을 제시해 준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거리 설교.
2. 기도 응답.
3. 구령.
4. 교리적 논쟁.
5. 박해.
6.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구원의 계시.
7. 지역 교회들 안으로 소속되는 그리스도인들.
8. 구원받은 이후의 성도들의 물침례.
9.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즉시 오시리라는 기대.
10. 그리스도인의 자선 행위와 목적의 일치.
11. 주 예수께 대한 순종의 핵심으로서의 선교와 선교 활동.
12. 지역 모임의 성경 교육.

“주여,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나이다”(삼상 3:9).
우리는 대다수의 주도적인 학자들을 향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들을 귀를 가지고 있으며 믿을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장비들로 우리는 “뜻밖의 좋은 것들”을 찾아내고 금과 은을 채굴할 것이다. 이것은 A. T. 로버트슨, 하우슨, 빈센트, 렘세이, 노울링, 웨스트, 홀트, 디엠, 브루스가 헬라어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었던 것들이다.
오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모든 스승들보다 더 명철을 얻게 될 것이며”(시 119:99),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 같은 “노인들”을 따라잡으리라는 것(시 119:100)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말씀은 처음부터 참되며, 모든 주의 의로운 명령들은 영원히 지속”(시 119:160)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장 3절 본문

3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신 후, 자신이 살아 계심을 그들에게 많은 무오한 증거들로 보여 주시고,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노라.

"자신이 살아 계심을 그들에게 많은 무오한 증거들로 보여 주시고..."(3절). 기름은 이미 불에 뿌려졌다. 여기서 본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들이 “무오하다”고 말하고 있다! “무오한”이라는 말은 미국의 모든 주립대학 캠퍼스에서 결코 들어 볼 수 없는 단어이다. 그 단어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로마카톨릭뿐인데, 그들은 무오한 성경 대신 무오한 교회(카톨릭)나 교황에게 그 단어를 사용한다. 그 단어는 “어떤 종류의 오류도 없음”을 뜻한다. 오늘날 근본주의자들은 A.V.를 공격하면서도 학교 강단에서는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원본,”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신 본문”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신들의 모든 파괴적인 비평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여전히 “믿음의 근본 사항”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 “근본 사항” 중 하나가 있다. 사실 그것은 근본 사항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 중의 하나인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에 대한 “많은 무오한 증거들”을 정작 그러한 학자들이 변개시킨 것이다. 성경의 절대 권위를 수호한다고 자부하는 학자들이 어떻게 “무오한”이라는 단어를 변개시켰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새미국표준역본(NASV) - “많은 확실한(convincing) 증거들.”
2. 무디 성경 연구원과 웨스트 박사 - “의심의 여지없는(indubitable) 많은 증거들.” 이 단어는 “무오한”이라는 단어에 비해 얼마나 복잡한 용어인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리에게 쉬운 언어로 제시해 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켄터키 루이스빌에 있는 남침례 신학교와 지금까지 미국이 배출해 낸 가장 위대한 헬라어 학자라고 하는 로버트슨 - “많은 증거들.” 기념비적인 헬라어 문법책을 쓴 그가 독자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4.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래드 박사를 포함해서) 등의 학자들은 모두 이 부분에 대해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5. F.F. 브루스 - “많은 증거들”
6. 카터, 얼 - “많은 증거들”
<영어 개역본, RV-에도 “...증거들”로 되어 있다. 신실하고 경건한 학자들이 몸의 부활에 관한 근본적 진리에 대한 자세가 이와 같은데,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NCC의 자유주의자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살펴보자.
<개역표준역본, Revised Standard Version- 및<공동성서, Common Bible-는 루이스빌 신학교의 로버트슨 박사와 마찬가지로 “많은 증거들”이라고 말한다.<새영어성경, New English Bible-과<현대인을 위한 기쁜 소식, Good News for Modern Man-,<리빙바이블, Living Bible-도 모두 본문을 변개시켜 놓았다.
“축자적으로 영감받은 원본”을 믿는 근본주의자가 그 부활에 대한 증거들을 다룰 때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는 자유주의자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 단어의 헬라어는 ‘테크메리온’(tekmerion)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리시아스는 어떤 것의 확실하고 분명하고 실증적인 증거를 말할 때 그 단어를 사용했다. “무오한”이라는 단어를 반대하는 자들은 1560년 제네바성경을 거부했던 프로테스탄트들과 카톨릭뿐이다. 1582년의 공식적인 로마카톨릭 성경(예수회의<림즈듀웨이성경-)에는 “많은 논쟁들”(arguments)이라고 되어 있다.
그 절에 대한 모든 연막과 대기 오염은 독자가 반쯤만 정신을 차려도 깨끗이 사라진다. 본문에 언급된 분의 영광을 위해 헌신된 사람이라면 모든 본문의 문제점들을 꿰뚫어 볼 수 있다.
1. 거짓말이나 망상이라 할지라도 어떤 것을 “확신”(convicted, NASV)할 수는 있다.
2. “많은 증거들”도 여전히 거짓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진화론 같은 경우이다.
3. 많은 변호사들이 해 왔던 것처럼,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되고서도 여전히 실수할 수 있다.
4. 어떤 것이 “제시되어”(demonstrated) 그것을 “확신”(sure)할 수 있다 해도 여전히 그것은 틀릴 수가 있다.
그러나 “무오한 증거”가 제시되었을 때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죽은 사람의 부활을 증거하는 500명의 증인들이 있고(고전 15:6) 그 중 11명은 사십 일 동안 그 사람과 살면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며(눅 24:38-44) 그를 손으로 만졌다면(요일 1:1) 어떻게 하겠는가!
믿음의 중요한 근본 사항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보여 줄 황금 같은 기회가 주어지면 로크만 재단(NASV)과 전미교회협의회(RSV)는 그들이 “동정녀 탄생”(NASV의 눅 2:33 참조)이라고 부르는 믿음의 근본 사항에 접근할 때 그랬던 것처럼 진리를 혼잡스럽게 만든다.
부활을 믿는 우리는 부활의 증거들이 하늘이나 땅에 있는 어떤 피조물이라도(현재나 이후에라도) 반박할 수 없는 “무오한 증거들”임을 알고 있다. 이것을 믿는다면 왜<킹제임스성경- 본문에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가? (“무오한 증거들”은 “테크메리온”의 정확한 번역이다. 왜냐하면 “증거들”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단순히 “독심”(doxime)이기 때문이다.) 많은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보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노라"(3절).<복음주의 주석-(존 더반, 1959, p.5)은 천국이 하나님의 나라와 “정확히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창세기 1:1에서부터 계시록 22:21까지 그렇게 말하고 있는 성경 구절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물질이 영원히 존속한다고 믿기 때문에 양자를 혼동하는 것이다. 하늘들은 물리적이고 눈에 보이는 영역이다. 하늘(heaven)은 육안과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문자적이고 눈에 보이는 물리적 지역이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하늘과 결코 같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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