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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7229155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18-03-15
책 소개
목차
박제
기 드 모파상
그 남자
홍실
순간처럼
분분히
꼿꼿하고
상실
거듭, 매듭
어느 곳도 나부낄 곳 없는
죽음의 병
미쯔꼬시
물음
거울
어느 계절인가
꺾어진 날개로 날다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창살 너머로 젊은이들의 정수리가 보였다. 댕강 잘라서 턱까지 겨우 닿는 짧은 단발은 주인집 딸이다. 그리고 어수룩하게 길러 놓은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남자는 그녀의 애인인 듯했다. 집주인 딸이 제 애인을 데리고 오기라도 한 모양이지. 무엇이 서로 저렇게 좋아서 들여보내지도, 가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저렇게 마주 보고 서 있을까? 시선이 닿는 곳마다 붉은 자욱이 남을 것만 같았다. 열렬한 시선, 달큰한 황홀. 좋은 때이다. 연애란 그런 것이었지. 여간 소란하고 벅차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이럴 때에는 딱 연애까지가 유쾌하지.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어리고, 파릇하고, 젊구나. 연애(戀愛), 라고 읽고 쓰는 것이 그들의 전유물인 것만 같아 입안이 온통 떫어졌다.
대의를 품었었던 만큼 소박함도 꿈꿨었다. 지난날들을 내내 비워 놓은 외로움의 자리. 누군가를 그 안에 두고 애틋하길 꿈꿔왔던 자리. 그 자리에 나는 심은휘를 앉혀도 좋은가.
쓸쓸하고 외로운 것은 당신의 죄가 아니다. 감히 연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여자다.
화미한 잎으로 겉 쌓여 저 안쪽에서부터 소박하게 피어 나오는 쓸쓸한 사람. 잎을 한 장 한 장 조심히 걷고 나면 나오는 상처의 자리에 가만히 입 맞추어도 좋다. 나는 흔쾌히 그 깊숙한 고름에도 입을 맞추어 내 삶으로 그 자리를 문지를 수 있다. 재우는 지나치게 오래도록 묵혀야 했던 자리에 그녀를 앉히기로 했다.
“꼭 함께 인사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함께 가요.”
“언제든 기꺼이.”
그의 답에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던 은휘가 뒤를 돌더니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이 새하얀 눈밭보다 우아해서 재우는 잠시 그 웃음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그거 알아요? 난 당신의 ‘기꺼이’라는 말버릇이 참 좋아요.”
사랑으로 산다는 나약한 말로 인생을 대변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사랑이 아니라 삶의 이유로 그를 택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사랑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려 했던 오만함이 지금 그녀를 눈물 쏟게 했다. 홀로 남겨져 외로운 노래를 부르는 이때에, 들어주는 그가 바로 사랑이었다. 삶과 사랑이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어찌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