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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7232360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2-11-09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뜻깊은 홍익인간, 정경현 4
| 제1장 | 준비 없는 이별
나와 남편만 몰랐던 죽음의 징조 20
당신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26
암인 듯 암 아닌 암 같은 너, 기스트 31
너, 술 좀 그만 먹어라! 37
상계백병원에서의 허리 수술, 그때 이미 죽을 뻔했다 41
준비 없는 이별 46
아빠의 청춘 시절 50
아들을 기다렸던가 보다 55
차마 말하지 못했던 ‘생전장례식’ 59
사라진 간 이식의 꿈 63
| 제2장 | 운동의 생활화, 생활의 혁명화
혁명가에서 직장인으로 68
‘검거됐을 때의 대처 요령’에 등장한 남편 77
남편의 ‘운동부심’과 집념 80
동수와 미영, 사랑과 동지애 83
‘직장인’ 입문, 쁘렝땅백화점 입사 87
한국의 이케아를 꿈꾸다 91
토끼띠 형, 박동수 95
주례 정병두 선생의 어린 스승 정경현 99
생애 최초의 ‘우리 집’과 국회의원 보좌관 102
(주)기산과 환경운동 106
마이크로통신과 한류우드 그리고 통일운동 111
병원 아닌 환자 편에 선 부원장 117
한국문화원연합회와 문화운동 122
| 제3장 | 통합과 정리_선도투쟁에서 대중운동으로
‘정경현’이라는 퍼즐 맞추기 128
CA도 아니고 NL도 아니었던 사람 133
자네, 혹시 형이 있나?_얽히고설킨 인연들 139
짧은 추도사 143
큰 빚을 안긴 고교 친구를 보내며 147
심장이 말하는 진실 그대로 151
집요하고 철저한 삶의 멘토 156
파마머리와 슬리퍼 160
‘수업시간에 한눈팔기’ 165
586과 남편을 위한 변명 169
이제는 네가 돈을 벌어라. 나도 운동 좀 해보자 175
유언이 된 마지막 당부 “이젠 이기적으로 살아라” 179
통민당·평민당 중앙당 동시 점거 농성 183
| 제4장 | 될성부른 떡잎, 정경현
부모님 전 상서(前 上書) 190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197
현상금 천만 원과 부부 싸움 도청 202
고집이 센 아이 206
선생님, 저 반장 안 하겠습니다 210
‘인사동 장학퀴즈’를 휩쓴 초등학생 형제 215
고려연방제도, 괜찮은 방안 아닌가요? 221
학교 선생님에게 호통을 친 어머니 226
석 달 만에 그만둔 태권도 232
어머니, 내 친구한테 돈 좀 빌려주세요 236
요리사 어머님과 미식가 남편 239
| 부록1 |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244
우리에게 서열은 없다 247
친구여 일어나라! - 박재항(고교 동창) 249
희망을 얘기합시다 - 유승남(변호사, 법무법인 화우) 253
경영자 정경현 - 이상수(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55
경현 형의 추억 - 이경배(대문 83) 258
사람이 오죽하면 글것냐 - 박재항(한림대학교 글로벌학부 겸임교수) 263
| 부록2 | 사진 속에 남은 그날들 267
저자소개
책속에서
당시 남편의 주요 임무는 서울대가 아닌 다른 학교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었다. 남편 하나가 아니라 여러 학교의 동기와 선후배들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자칫하면 서울 시내 주요 대학이 망라되는 커다란 조직사건으로 조작될 위험이 다분했다. 아직은 남편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대충 경찰서 사무실에 앉혀두고 동기들의 행방을 찾는 정도였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 정보가 새어 들어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남편은 큰 부상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경찰서 3층에서 뛰어내려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다.
돌아보면 남편처럼 남들은 모르는 곳에서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오픈’ 활동을 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 중 당시 활동상을 내세워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중들은 겉으로 드러난 일부 586의 모습을 당시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전부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웠다. 경력을 훈장처럼 달고 권력을 휘두르는 586이 없지는 않지만, 아니 적지는 않지만, 실제로 대다수 586은 자연스럽게 생활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젊은 시절의 꿈을 실천하려 애썼다. 내 남편, 정경현도 마찬가지였다. 뜻하지 않게 직장인으로 변신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일반인은 물론 의사들조차 이름을 잘 모르는 ‘기스트(GIST, 위장관기질종양)’라는 불치병으로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은 뒤에도 스스로 치료법과 치료제를 찾아내 가면서 불굴의 의지로 14년을 버텨냈다. 함께 살면서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의지였다. 그렇게 살면서 때로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제법 괜찮은 자리가 주어진 적도 많았지만, 남편은 ‘신념’을 버리거나 관습과 타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활 그 자체를 운동으로 바꾸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20년 동안 대여섯 군데의 직장을 옮겼지만, 어디를 가든, 그에게는 그곳이 곧 운동의 현장이었다. 근무 환경을 바꾸는 정도의 소극적인 운동이 아니라 그 현장을 발판 삼아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심지어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그는 혁명가라기보다는 ‘홍익인간’이었다. 마석 모란공원의 남편 묘비에 쓰여 있는 “뜻깊은 홍익인간”은 정말 그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