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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7413226
· 쪽수 : 230쪽
· 출판일 : 2017-12-20
책 소개
목차
제1부 석복수행 중입니다
11 장락무극
18 석복수행 중입니다
24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30 나는 아직도 비구니가 되고 싶다
37 나는 윤회를 믿는 가톨릭 신자다
43 스티브 잡스와 저커버그의 옷
50 삶의 갈림길에서
57 필레몬과 바우키스
제2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라
67 인생이란 무대는
74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사랑
82 부디,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89 스승이란 무엇인가
95 생의 힘든 모퉁이를 돌 때면
102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라
108 타인에게 말 걸기
115 산복숭아 차를 마시며
제3부 자기 앞의 생을 살다
125 자기 앞의 생을 살다
131 젤소미나의 테마곡
138 ‘스토너’에게 기립박수를
146 ‘차타레 부인의 사랑’을 보고
15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61 김훈은 내 영혼의 인질범
167 내 속에 프리다 칼로가 산다
173 쓰는 자의 운명
제4부 사랑했던 시간의 뒷모습
183 수다예찬
188 선녀와 나무꾼
193 매화
197 대중목욕탕
201 그리움, 인간의 향기
208 그리운 카바이트 불빛
213 사랑했던 시간의 뒷모습
219 그들에게 축배를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그대에게 출가해서 불법을 배우라고 권하지는 않겠다. 단지 복을 아끼는 수행을 하라고 권하겠다.” 송나라 여혜경이 항주절도사로 있을 때 대통선사의 선본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자, 선사가 한 말이다.(한양대 정민 교수의 「세설신어」 중에서)
석복(惜福), 복을 아낀다는 말이다. 석복수행은 복을 아끼는 수행(修行), 즉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을 소중히 여겨 더욱 검소하게 생활하는 태도를 말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보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저녁에 집에 와서 또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언제나 ‘하고(ing)’ 있는 중에 집중을 하는 게 수행이며 기도며 참선이라는 걸 깨닫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젊은 날 수행이나 기도나 참선은 저 높은 곳의 차원이나, 어딘가 신성한 장소에 가야지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기도가 뭔지도 몰랐다. 그저 신(神)에게 내가 원하는 걸 이루게 해달라고 비는 게 기도인 줄 알았다. 막연히 아들을 위한 기도를 일 년 전부터 시작했다. 참 염치도 없이 제발 저의 아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라고 빌었다. 첫 마음은 그랬다.
그러나 기도를 할수록 점점 내 마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며 잘못한 일들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얼마나 교만하게 살았는지, 몸이 오그라들도록 부끄러웠다. 먼지보다 더 작은 나를 발견하는 순간 사라지고 싶었다. 그동안 인간이란 존재가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건 그저 관념에 불과했다. 내게 주어진 복을 아낄 줄 모르고 함부로 쓴 죄가 이렇게 힘든 시간으로 돌아오는구나
싶었다. 석 달 열흘쯤 울고 나니 눈이 파랗게 변해 있었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이 고요한 마음이 참 좋다.
(중략)
복을 아끼기만 하면 안 된다. 복을 아껴서 덕을 베풀어야 석복수행의 완성이다. 또한 복을 저금하지 않고 쓰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저금한 복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그 복을 다시 채우려면 천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수많은 생을 ‘고달픈 삶’으로 거듭 살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복을 채워가면서 살면 복이 쉽사리 바닥나지 않을 것이다. 복을 저금하는 일은 덕을 베푸는 것이다.
덕을 베푼다는 것은 꼭 물질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 이유는 사덕(四德)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덕이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말한다. 즉 인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며, 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불의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며, 예는 사양지심(辭讓之心, 겸손한 마음)이며, 지는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이라 했다.
사덕을 잘 행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덕을 베푸는 것이고, 복을 저금하는 일이 되는 셈이다. 덕을 쌓는 일은 멀고도 험하다.
아무튼, 저는 지금 석복수행 중입니다. 세상의 모든 석복수행 중인 이들의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