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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7500025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6-10-26
목차
1. 길을 만드는 풍경
10 집념의 꽃, 오싱을 만나다
14 달집에서 나온 달
19 마흔아홉 살의 자아
24 나를 알게 하는 것은
29 목욕의 의미
34 그곳에 산이
38 창가에 옮겨온 가을
41 소중한 순간들
45 길을 만드는 풍경
49 언덕 위의 작은 집
56 국화
60 명절에
65 어머니의 안식처
70 음악 세상 1
74 음악 세상 2
79 효를 다하는 마음
2. 길의 파노라마
86 남바 고갯길
90 덩굴 나무의 기다림
94 길의 파노라마 1
98 길의 파노라마 2
102 해맞이
105 갯마을 문학비
111 태극기 물결
116 대변 초등학교
121 꼬마 시인학교
126 대변 별신굿
134 죽도
139 제1 공영주차장과 쉼터
142 오리 궁둥이
146 우대 받는 미역과 다시마
148 다시마 작업
151 봄이 오는 소리
3. 죽성리 해송
158 죽성리 해송
161 기장 아카데미 강좌를 듣고 1
165 기장 아카데미 강좌를 듣고 2
169 기장 아카데미 강좌를 듣고 3
173 기장 아카데미 강좌를 듣고 4
177 술의 가면
185 10월의 마지막 밤
188 토암공원
194 문학콘서트
198 이병주 문학관을 찾아서
202 성기조 선생님 팔순을 축하드리며
205 신평 친목회와 더불어
215 우정의 꽃을 피우다
220 갈매기의 비상을 꿈꾸며
227 삶의 충전
230 생애 첫 여행
236 오뚝이 인생
저자소개
책속에서
집념의 꽃, 오싱을 만나다
살아오는 동안 나와 책과의 인연은 그리 멀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철부지 어린 시절부터 책은 어떤 이유에서든 내 안의 잠재된 화두이면서 풀어야 할 수수께끼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물음이나 해답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일상 속에서 때가 되면 허기를 채우는 밥을 먹어야 하듯이, 주어진 관계처럼 책을 가까이 하려 애를 써왔던 것 같다.
농어촌에서 태어나 60~70년대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유년을 보낸 내 주변에는 책이 귀했다. 낮은 초가집에 살면서 아버지가 기거하신 안방 벽에 걸린 《새농민》을 읽고 또 읽었던 때부터 책을 향한 나의 염원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소위 가방끈이라고 하는 학벌이 너무 미미하여 체계적이고 순차적인 독서는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끼니를 굶을 만큼 애옥했던 집안 형편은 언감생심, 책방에서 보고 싶은 책을 사다 볼 여건이 되지 못했다. 주변 여러 지인들의 연계에 힘입어 빌려 본 책이 대다수다. 본 후엔 다시 돌려주어야 했다.
그러던 성장기의 어느 날, 마을 골목 한 모퉁이에 이사온 양장점 언니를 알게 된 것은 마음 속 기원의 화답이었을까. 조금은 멀쑥하고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의 양장점 언니는 의외로 많은 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 책을 모두 빌려주었으며 또 아는 이들로부터 책을 빌려와 나에게 주기도 했다. 『헤밍웨이 전집』으로부터 『데미안』 등 말 그대로 세계의 명작들을 읽을 기회를 그때 가졌다. 잠시라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밤잠을 설치며 많은 책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막연히 미지의 세계를 향한 알 수 없는 동경과 고뇌와 번민들, 낙엽이 쌓이듯 가슴에 쟁이며 짓눌려 온 수많은 과제와 무게 속에서 그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다급함이 간절하게 향한 곳은 오직 책 읽기였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사이에서 만나는 낯선 인물들과 배경은 끝 간 데 없는 의혹만 증폭될 뿐, 정작 내 안의 들끓는 열기는 물꼬가 트이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목마른 여행자처럼 책의 최면에 걸려 이리저리 영혼의 방황을 잠재우지 못했다.
그런 이십대의 후반 즈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오아시스를 만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를 닮은 아니 나의 실체와 동일성을 이루는 소실점을 찾았다. 그것은 ‘하시다스가꼬’의 『오싱』이었다. ‘오싱은 일본판 여자의 일생, 전 일본 여성을 울리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대하소설이며 6·25를 전후로 하여 가난과 굶주림에 찌든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가 걸어온 길을 소설화한 책’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오싱은 전대미문의 울림의 책으로 내게 다가왔다. 먼저 그 책이 내게로 오게 된 사연은 남다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우리 곁에 나타난 독실한 크리스천인 중년의 그 아저씨는 내게 분 따뜻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호남지역에 고향을 둔 누나가 살고 있는 우리 마을에 조용히 찾아와 잠시 머무는 동안, 해 온 일들은 행복전도사였다.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주사와 약을 처방해 주었고, 마음의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이들에겐 능숙한 달변과 온화한 표정으로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는 아마 작은 시골마을 전체의 살림살이를 꿰뚫어 보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어느 날 키가 크고 듬직한 그 아저씨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나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오싱의 첫회였다. 나는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다음 편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 그리 더디게 가던지…. 한 달에 한 권씩 책이 나올 때면 어김없이 책을 사들고 아저씨는 내 앞에 나타났다. 차츰 책의 스토리가 전개되어 가는 동안 내 자신은 전율에 휩싸여 갔다. 뜨거운 전율 속에는 고통으로 인한 아픔과 슬픔들이 용암처럼 녹아 흘러 내렸다. 어느새 오싱의 고통이 나의 고통인 양 착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독한 가난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세상과 자신을 향해 맞서는 용기와 인내는 내 심장을 죄어들게 하고 그만의 둥지를 일궈가는 열정과 신념을 마주하면서 스스로의 분신을 만나는 듯 흥분이 일었다. 그토록 치달으며 깊이 함몰되어 가는 성급한 내 심정과는 달리 소설은 섬세하고 차분히 진행되어 갔다.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종국에는 넓은 바다와 재회를 하듯이 불굴의 의지 속에서 피어나는 꽃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였으며 꿋꿋함과 뜨거운 애정이 이끌어내는 인간의 진정성은 카타르시스였다. 한 가족이란 소우주를 지켜내기 위한 진실된 질서와 상호 간의 협력이 공존하는 모토는 가족애에 상징성을 두었으며, 이는 곧 참된 삶의 가치와 무관하지 않음을 증명하였다.
오싱은 나약한 나의 의지를 질책하면서 절절한 내 안의 열정을 향해 새로운 단초가 되었으며 꿈을 꾸게 하였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으며 그에 준한 깃발을 보았던 것 같다. 안정되고 행복한 삶, 그는 바로 군더더기 없는 평범 그 자체였던 것이다. 평범이란 모진 역경의 피조물이란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