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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프랑스사
· ISBN : 9791187700449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1-11-29
책 소개
목차
옮긴이 서문
총서 발행인 서문
제2판에 부치는 저자 서문
1장 역사가와 공포정
_ 근대 공포정의 출현
_ 공포정은 폭력
_ 공포정은 상황의 산물
_ 수정주의
_ 후기 수정주의
2장 공포정의 서막? 1789년 혁명부터 1793년 공화국까지
_ 귀족, 교회, 반혁명
_ 루이 16세와 바렌 도주 사건
_ 지롱드파와 전쟁
_ 첫 공포정과 찢어진 공화국
_ 지롱드파의 실패
3장 1793년 3~9월, 공포정의 시작
_ 1793년 봄, 군사적 패배와 방데의 난
_ 공포정의 기구(1793년 3~4월)
_ 지롱드파의 체포
_ 구국위원회와 권력투쟁
4장 1793년 9~12월까지 파리와 지방의 공포정
_ 음식과 단두대
_ 방데의 죽음
_ 연방주의 타파
_ 구국위원회 강화
5장 1793년 12~1794년 4월, 파벌 타파
_ 지배자 열한 명
_ 에베르파와 탈기독교 운동
_ 관용파의 공세
_ 당파들의 제거
6장 1794년 4~7월의 대공포정
_ 권력의 집중
_ 프레리알 법
_ 대대적인 처형
_ 최고존재 숭배
7장 새 공화국의 새 시민 만들기
_ 남녀 시민과 노예의 평등
_ 가난, 토지, 복지
_ 교육과 선전
_ 이름과 장소, 자코뱅 클럽들
8장 1794~1795년, 테르미도르 반동과 공포정의 끝
_ 공포정의 지지 감소
_ 로베스피에르의 몰락
_ 공포정의 끝과 테르미도르 반동
_ 공포정 이후의 공포정
결론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속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대다수 역사가는 후기 수정주의 방법론으로 눈길을 돌렸다. 최근에 수정주의 역사가는 여전히 퓌레의 주장을 많이 이용하고 혁명을 노골적으로 미워하는 태도를 보여주긴 해도 이념만이 공포정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 대신 그는 사건이 공포정의 원인이며 정치가들은 이념을 활용해서 자기 행동을 정당화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다음의 서술은 대체로 공포정의 문제를 1793~1794년의 사건만 따로 떼어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후기 수정주의의 방법론과 믿음을 담았다.
왕의 처형은 정치재판이었다. 그는 왕이었다는 이유와 왕으로서 한 일 때문에 처형당했고, 여느 범법자처럼 통상의 법원이 아니라 법원 행세를 한 입법부의 재판을 받았다. 그의 지위가 특별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며, 재판 절차는 균형 잡혔고 세심했다. 그러나 일부 역사가들은 그의 처형이 정치적 행위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공포정의 진정한 출발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왕을 처형하고 몇 주 동안 처형한 사례가 없었고 왕의 지위는 분명히 특별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처형의 의미를 과장한다. 그 대신 그의 죽음은 좀더 단기적인 결과로 지롱드파의 지위를 약화시켰다는 데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789년 혁명을 돌이켜볼 때 아주 눈부신 면이 있었다 할지라도 분명히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지 못했고, 오히려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애국파가 밀어붙인 변화에 귀족 대다수, 적어도 가톨릭교도 절반과 왕이 저항했다. 왕의 바렌 도주는 애국파를 분열시키고 유럽과 치른 전쟁의 망령을 불러오면서 위기를 고조시켰다. 애국파는 좀더 차분한 정치적 분위기에서 온건한 왕정주의자를 혁명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어야 옳았겠지만 1791년 가을까지 화해를 추구하는 일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지롱드파는 전쟁으로 유럽에 혁명을 일으키고 역적들을 쓸어버리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공세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중략)
그러나 그들은 민중의 지지를 받지 않고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 더욱이 폭력과 타협해야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미처 그럴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공회의 경쟁자인 몽타뉴파는 폭력과 타협할 태세를 갖추었다. 1793년 봄, 프랑스는 공화국이 분명했지만 분열한 상태였고, 정치 토론을 한답시고 대부분 서로의 계략과 음모를 비난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유럽과 전면전을 앞두고 여차하면 폭력이 난무할 만큼 날마다 급진화하는 파리를 만나야 하는 공화국이기도 했다. 분열한 공화국, 유럽과 벌인 전쟁, 음모의 소문, 민중 폭력의 두려움은 공포정을 불러올 치명적인 요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