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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7756811
· 쪽수 : 141쪽
· 출판일 : 2020-10-26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셀프 레시피 – 11
휘발성 – 13
공중 정원 연인 – 14
기호들 – 16
오드 아이드 캣 – 18
수어(手語) - 20
오렌지 케이크가 익어 가는 아침 – 22
어느 종말론자의 드레스 코드 – 24
이즘 – 26
소멸하는 소년들 – 28
만타가오리 – 30
검정에 가까운 보라 – 32
절두(切頭) - 34
폼페이 – 36
제2부
일기예보 – 41
이것은 바나나입니까? - 42
달콤 중독 – 44
질식 – 46
통증에 대한 낭만적 이해 – 48
어제의 기분으로 – 50
배로 기는 발 – 52
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 – 54
식물 야행(夜行) - 56
뚜껑의 새로운 쓸모 – 58
범람 – 60
불타는 나무 – 62
렐리기오 – 64
제3부
사소한 요일 – 69
불안 – 71
버드이팅(Bird-Eating) 타란툴라와 연애하는 방법 – 72
현기증 – 74
낙지의 형이상학 – 76
하모노그래프 – 78
냄새들 – 80
유성우 – 82
꽃과 꽃무늬 사이 – 84
가변형 벽체 – 86
꼬리를 주제로 한 두 개의 신파 – 88
해피엔딩 – 90
고양이와 걷는 밤 – 92
비운 – 94
제4부
모래로 만든 저녁 – 99
솜틀집 가는 날 – 100
허기 – 102
바디 블루스 – 104
횡단 – 106
안녕하세요 – 108
레드 벨벳 – 110
카르마의 눈 – 112
안구건조증 – 114
물속 깊이 꽃들은 피어나고 – 116
이상한 꿈 – 118
눈의 서사 – 120
실어(失語) - 124
해설 임지훈 사랑의 잔향, 잔향의 사랑 – 126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달콤 중독
나를 스쳐 지나며 당신은
작은 바람을 일으켜 내 속눈썹을 살짝 흔들었는데
어디선가 티라미수 냄새가 났어
그건 아마 당신의 작별 인사
너무 달콤해서 목이 아리던 그걸
우린 어째서 서로 떠먹여 주고
병든 시인들처럼 기침을 해댔던 걸까
당신이 떠나는 동안
나는 그 자리에서 계속 눈을 감고
뭉개진 케이크처럼 앉아 있었어
엉뚱한 기도문 같은 걸 외면서
티라미수엔
피처럼 끈적한 커피와
덜 익은 와인도 함께 들어 있다는 거
그땐 몰랐었잖아
모양 없는 것들에 이름을 붙여 주며
당신은 달다는 말을 위험하다는 말로 바꾸곤 했지만
단맛은 혀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거라서
먹을수록 나는 텅 비어 갔나 봐
그때의 케이크는 이미 먹어 버렸고
우리가 붙여 줬던 이름들도 이젠 지워지고 없으니까
이 바람이 사라질 때까지
나를 끌어올려
하얗게 타오르는 구름 기둥처럼
달콤하고 위험한 이 기분의 끝으로
*티라미수: ‘Tirare mi su(나를 끌어올리다)’에서 유래. ***
만타가오리
평범한 표정이 무섭다고 말하자
만타가오리, 얼굴을 열어 배후를 보여 주었다
검고 차가운 유리의 입술
나로부터 흘러나와 너를 관통하는 물살
내가 닿으면 너는 아프고
신음인지 웃음인지 알 수도 없게
너는 젖은 담요처럼 날고 있어
만타가오리, 오래전 말소된 내 일곱 번째 감각
모든 동행이 시작되었던
촘촘한 침묵만이 하얗게 부유하는 심해에서
우리의 예민한 피부는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둥글게 말려 가
그리운 촉감
그러나 내가 닿으면 너는 다시 아프고
죽은 자들의 안부를 물으며 만타가오리,
평범한 표정으로 평범한 노래를 반복해
이 감정들은 너무 구질구질하고 미끌거리는데
대답해 줘, 울어도 될까 다친 개처럼
이제 막 이목구비를 갖기 시작한 슬픔이 킥킥 웃기 시작하고
나는 갑자기 살고 싶어졌다 ***
오렌지 케이크가 익어 가는 아침
어지럼증을 앓는 사람의 눈빛으로 새벽이 오기도 했다
너의 밤과 나의 아침이 뒤섞이고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 자기 그림자를 밟고 넘어지는 시간
일그러진 얼굴 위에 서늘한 잠이 고인다
둥근 빵의 가운데를 도려내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빈자리에 듬뿍 오렌지 마멀레이드
침묵이 스며들도록 깊이 오렌지 마멀레이드 오렌지 마멀레이드
설탕에 대한 상상만으로 기분은 쉽게 시작되는데
놀란 새 떼처럼 마구 흩어지는 나의 목소리
내 사랑은 굳이 따지자면 소금 쪽이야
운명은 가장자리에서 자라나는 균열 같은 것
모서리들은 너무 결연해
언젠가는 구름같이 몽롱한 케이크를 굽고 싶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기다리는 아이처럼
달콤한 냄새는 이상한 슬픔을 몰고 와
오늘은 좀 더 단단한 생크림을 얹기로 한다
너는 한 번도 같은 모양으로 깨어난 적이 없었으므로
눈을 뜨면 불쑥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만
하염없이 오렌지 케이크가 익어 가는 아침
우리는 발끝부터 불길하게 부풀어 오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