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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비평/이론
· ISBN : 9791188658244
· 쪽수 : 464쪽
· 출판일 : 2020-12-18
책 소개
목차
16 들어가며
29 코로나19 팬데믹 중의 인터뷰
45 아이디어 노트: 거리와 감정과 관객에 대해
84 이주와 공동체에 대한 기록 ━ 워크숍, 촬영, 전시 사이에서 (발췌)
104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제작노트 (발췌)
111 로스엔젤레스에서 미얀마로
170 대담1: 모리 요시타카와 다나카 고키
189 의도를 넘어선 이끌림: 후팡의 사유를 언급하며
205 ‘관계적 역사’를 위한 제안
250 <다치기 쉬운 역사들 (로드 무비)>에 대한 기록
270 제목: 아이치를 떠나서
293 2015년 4월 9일 몸으로 사고하는 것
331 퍼포먼스 이후의 수행성에 대해
355 돌봄을 공유하기, 취약성의 네트워크
367 2020년 4월 29일부터 6월 10일: 인생에 대한 생각은 추상에 관심을 갖게 한다
412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에 대한 짧은 기록 ━ 후기를 대신하여
425 포스트 포스트스크립트: 홀로 그리고 함께 (김해주)
책속에서
# 다치기 쉬운 화자
2011 년 동일본 대지진(3 ·11) 이후, 일본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직접 지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출신인 사람은 ‘지진’이나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당사자로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반대로 그 문제들과 거리가 먼 사람은 좀처럼 자유롭게 발언하기 어렵다.
나는 당시에 일본에 없었기 때문에 지진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출신도, 피해 지역 근처의 출신도 아니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지진’에 대해 혹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쉽게 비판받기 때문이다. 문제와 거리가 있는 내가 ‘지진’을 프로젝트 안에서 다룰 때 사람들은 내가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나에게 거리가 있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 어떻게 스스로 그것을 문제로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왔다.
재일 한국/조선인의 문제를 다루는 일도 비슷한 어려움을 수반한다. 나는 재일 한국/조선인이 아니다. 일본 안에서는 나는 다수 집단인 일본인이며 오히려 소수 집단인 재일 한국/조선인을 차별하는 쪽의 당사자성을 가진다. ‘지진’을 둘러싼 앞선 이야기보다 더 복잡한 구조다. 다수 집단이 소수 집단 문제를 가져가버릴 가능성이 있다. 당신은 나를 그렇게 비난할 것인가.
당사자성이 강한 문제에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관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문제에 대해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 ‘여유’를 가진 나는 거기에 책임을 느낀다. 곤란한 이야기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둘 수 있는 이는 나처럼 ‘여유’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다치기 쉬운 상태(vulnerability)를 공유하는 것. 그 위치에 스스로를 대입해서 생각해보는 것. 그 어려움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관여하는 것.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나는 이번에 얼마나 그렇게 할 수 있을까. (2018년 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