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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빚은 수필

흙으로 빚은 수필

(목우수필문학회 2018년 제2집)

목우회 (지은이)
나무향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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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빚은 수필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흙으로 빚은 수필 (목우수필문학회 2018년 제2집)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9052010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18-04-15

책 소개

목우수필문학회 회원 38인이 엮은 수필집.

목차

제1부 길을 잃고 길을 찾다

14 장 금 식 무하유지향으로
구렁이 꿈
22 조 원 석 산촌 여행
만 원의 갈등
30 김 순 남 엄마는 사진사
할아버지와 싸리 회초리
38 정 윤 규 마스터 클래스
산티아고 길을 꿈꾸다
45 오 서 윤 바짝, 렌즈를 당겨 봐
49 조 순 영 가을걷이
도산스님께
56 임 영 도 슬픈 귀향
병산서원에서
64 서 미 애 친정 가는 길
책이 준 행복
70 이 봉 길 길을 잃고 길을 찾다
개망초
77 정 가 자 용기와 소통
어쩌면 마지막 합격증일지도

제2부 가을빛에 물들다

84 최 성 록 글방의 김 여사
88 민 경 찬 우리 술 한담閑談
향일암에서
97 민 경 관 두 마음
심장박동 소리 여전한데
104 김 녕 순 ‘걍 무 시’라는 주문呪文
100원짜리 동전의 가치
109 박 남 순 가을빛에 물들다
날갯짓
117 배 정 순 밤송이 하나
바닷가 소녀
124 손 만 득 불효여식은 웁니다

130 이 경 우 서로 다르니까 친구야
133 이 수 옥 딸의 부재 1
딸의 부재 2
144 이 영 숙 지팡이
희한한 맛

제3부 발자국 속의 별무늬

154 정 순 구 시시한 남자가 사는 법
158 김 종 국 온양온천 가던 날
오월아! 어머니를 모시고 오렴
166 차 의 화 동치미 국물과 시어머니
딸기를 보면 왜 가슴이 떨리나
173 박 영 신 발자국 속의 별무늬
적빈赤貧의 붉은 입술
180 나 현 아 몽돌
프리지어 꽃향기
187 안 수 민 보배 같은 내 몸에게
190 유 정 희 내 수필
잡초
197 임 순 자 감나무 이야기
김치가 담장을 넘다
204 이 경 란 자기 것 찾아 가시오
밥상을 차려놓고
211 강제니경 유행
세속적 가치

제4부 흙으로 빚은 수필

218 류 정 득 말 속에 고향이 보인다
221 박 서 연 날개 하나
바람인형
227 이 옥 경 마음을 열다
사랑의 씨앗
235 이 용 훈 신변잡기의 오해
눈물의 원천
241 김 희 정 그치다, 멈추다, 사라지다
빨간색 양산
250 홍 승 만 낙엽의 편지
경로석
256 정 하 정 할아버지의 지팡이
안개가 걷히면
260 허 열 웅 삶이 입금된 예금통장
흙으로 빚은 수필 분청사기粉靑沙器

저자소개

목우회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정목일 교수님의 제자로 구성된 38인의 수필가
펼치기

책속에서

산촌 여행 /조원석

“와 이리 늦었능교”
“차를 잘못 타서 용수골에서 걸어왔습니다.”
“하믄 너댓 시간을 걸어왔능교….”
말끝을 맺지 못한 노모는 밤늦게 도착한 손님이 배가 고플세라 그 을림이 물씬 배어 있는 부엌으로 휭하니 나갔다.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만 다니는 오지마을이었다.
잠시 후 노모는 막 삶아 고봉으로 담은 국수 한 그릇과 나박김치 한 그릇이 전부인 소반을 들고 왔다. 그릇의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테두리가 거의 떨어져 나간 소반이었다. 소반 위엔 예쁘게 수놓 은 자개 꽃봉오리가 낙화인 양 꽃잎 몇 개만 남아 있었다.
처음엔 옻칠이 반지르르했던 나전칠기였으리라. 노모의 지난한 세 월만큼이나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 소반이었다.
남편과 자식들이 모두 떠나고 노모와 함께 퇴락해 가는 낡은 집 주변은 온통 희뿌옇게 피어난 구절초가 지천이었다. 때마침 무채색 달빛에 나염되었는가. 국수가닥이 올올이 뽀얀 옥양목 색이었다.
무 한 조각을 국수에 얹었다. 얼마만인가.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새콤한 김치 맛은 사랑과 정성이 담긴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였다. 별다른 양념 없이도 투박한 손만으로도, 무를 네모나게 어석어석 썰어 담근 향수가 절절이 배어 있다.
모든 것이 곤궁했던 벽지僻地 살림에서 오남매를 키워내신 어머니의 삶은 녹록치 않았으리라. 수제비를 끓이면 건더기는 자식들을 먹이고 자신은 국물만 먹었다는 허기진 긴긴 세월. 주림의 삶에 한을 어디에 풀고 살았을까. 마음속으로 울음을 삼키며 살아온 모정의 세월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헌신이 아니었을까.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oo학교 독서지도 관계로 도서담당 선생님과 인연이 되어서였다. 언젠가 산촌으로 여행 갈 기회가 생기면 자신이 낳고 자란 두메산골 체험도 좋으리라 해서 단박에 약속을 해두었던 일이었다. “형제들이 다 떠난 집에 어머니가 홀로 계시며 어릴 적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연보라 칡꽃을 따먹던 향기가 떠오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붉은 노을이 사위어 갈 무렵에 버스에서 내렸다. 계곡 깊은 산골이라 금세 태곳적 어둠의 적막이 침묵으로 배어들었다. 고즈넉한 밤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달빛이 환하게 떠올라 어둠을 몰아냈다. 구름 한 점 없이 수천 년 정화된 듯한 수정같이 밝은 생명의 빛. 동반자 없이 홀로 걷는 밤길의 정취는 가히 영혼을 적시고도 남을 만한 신비로 운 몽환의 밤이었다.
낮에는 그 어느 유명한 화가라도 그려낼 수 없는 선연한 빛깔로 울긋불긋 곱게 수놓았던 산빛이었건만, 달빛에 물든 산천은 어둑어 둑해만 보였다. 감미로운 달빛에 젖은 나지막한 산봉우리들이 소담 스러운 여인의 젖가슴처럼 완만하게 윤곽만 나타내어 모태의 품속 인 양 아늑하게 안식을 주는 밤이었다. 거룩하고 성스러움마저 느끼 게 했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어느 천국의 길은 아닐까. 환상幻想 에 빠져들었다.
온갖 세상욕심 다 내려놓고 보석을 뿌린 듯 영롱한 별빛이 빛나는 밤길. 시공을 뛰어넘는 황홀경에 빠져 걷는다. 무아지경의 환영幻影 에 서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적막을 깨고 길 옆으로 흐르는 깊고 맑은 계곡의 청아한 물소리는 어떤 악기로도 연주할 수 없는 천상에서 들 려주는 노래요, 기도소리였다. 입체음향의 촉촉한 이슬 촉감이 느껴 지는 부드러움이 세상 번뇌로 가득 찬 메마른 영혼 속으로 스멀스멀 번져 한결 영혼을 맑게 했다. 그로 인해 맑은 물빛과 명경 같은 달빛 으로 헹구어 낼 수만 있다면, 여생을 티 하나 없는 순백의 영혼으로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 희 것임이요.”라고 했던가. 아니, 지나친 바람일까.
사방은 사뭇 평화로운 밤으로 이어졌다. 양육강식이나, 시기질투, 생존경쟁을 벌이던 얼룩진 시간도 잠시 멈춘 안식의 밤이었다. 오묘 한 달빛에 취해 행여 돌멩이라도 차서 소리를 내면 고요한 적막의 분위기가 깨지고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균형 잡고 잠든 산새들이 놀라 푸드덕 날아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조심스레 까치발로 걸었다. 천고마비의 깊고 푸른 밤. 한 폭의 화선지 위에 오염되지 않은 산수의 묵화가 영겁의 향기로 피어난 밤이었다.
지금껏 살아온 메마른 삶에 각인된 그리움이 밝은 달빛에 새로운 모습으로 굴절되어왔다. 생각을 뒤집어 보면 천국의 생각도 있으련만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삶을 살았으랴. 욕심을 내려놓고 배려심과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아름답고 황홀한 지상낙원의 노래와 기도가 있고 수정 같은 천상의 풍광을 느끼고 볼 수도 있건만 왜 그토록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기적인 자신의 잣대로 항상 세상일을 재단하며 각박하게 살아왔던가. 그런 날들이 그만 허접해 보였다. 기계문명이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잡기란 애당초 가당치 않은 일이었건만, 좇아가려고 아등바등 살아온 미욱스러운 모순투성이의 삶이 아니었던가.
걸어온 탓일까. 피곤이 몰려왔다. 잠자려고 들어간 방 안에는 창호지 문으로 여과濾過 되어 들어온 은은한 달빛이 극치를 자아내어 얼룩진 영혼을 다시 한 번 말갛게 씻어 안식을 주는 듯했다. 자연을 닮아 모나지 않은 가을의 결실들로 방안이 가득했다. 감자, 고구마 등 그중에서도 커다란 황금빛 호박을 보는 순간, 낮에 보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가느다란 호박 줄기가 가파른 언덕배기를 기어 올라가 구황작물을 여러 곳에 생산해 놓지 않았던가. 허드레 땅에 씨 하나 심었을 뿐인데, 여리고 나약한 줄기가 잡초들의 장애물을 헤치는 생명력 이 경이롭고 심원할 뿐이었다.
자식에게 모든 것 다 내어주고 수수깡처럼 마른 노모가 떠오른다. 결실의 가을, 헛되게 보낸 세월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번 산촌 여행은 남은 내 생애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자성의 시간이었다. 삶 의 의욕이 소진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앞으로의 삶을 구도求道 의 심정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해 본다.


산티아고 길을 꿈꾸다/정윤규

‘버킷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시한부 삶을 사는 두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고, 그 일을 이루어 낼 때마다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 나간다. 장엄한 풍경 보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 보기,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스카이다이빙 하기…. 죽음의 공포와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 소원을 하나씩 이루며 미소를 짓던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내내 마음이 묵직했다.
영화를 본 후, 나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라고 제목을 단 후 목록을 적어 보았다. 해 보지 못한 일이 너무 많아서 쉼 없이 써 내려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생각보다 쉽게 목록이 채워지지 않았다. ‘버킷리스트’는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나 왔던 시간의 자취를 돌아보게 하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살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이다. 그 길을 처음 알게 된 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으면서였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 맑고 명징한 언어, 쉽게 읽히는 이야기 속에 담긴 깊은 삶의 통찰력. 작품을 되풀이 읽으면서 작가의 삶이 궁금했다. 놀랍게도 그는 17세 때부터 세 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창간한 잡지의 급진적 성향때문에 수차례 수감과 고문을 당했다지 않은가? 그런 작가가 1000킬 로미터에 이르는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난 후 쓴 작품이 바로 <연금술 사>라고 했다. 생의 밑바닥, 그 막다른 곳까지 경험해 본 작가가 육 체적, 정신적 폐허를 이기고 분연히 일어 선 곳. 그 길이 어떤 길인 지 궁금해졌다.
스페인 북부에 위치해 있는 산티아고 길은 2000년 전 예수의 제 자인 야고보가 예수 사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 여행을 떠났던 길이다. 그 후 순교해 그 유해가 죽어서 다시 간 길이고, 그가 묻힌 곳을 향해 1000년이 넘도록 많은 사람들이 걸으면서 생겨난 길이라 고 한다.
산티아고 길을 알게 된 이후, 나는 한동안 산티아고 여행기만을 찾 아 읽었다. 그리고 책 속에서 수많은 ‘산티아고 길’을 만났다. 누구는 그 길에서 신과 구원을 이야기 하고, 누구는 그 길에서 치유와 자유 를 노래했다. 또, 어떤 이는 도전과 변화를 말하기도 했다. 산티아고 길은 변화무쌍해 보였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무더위와 싸우고,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자신과 싸우는 일처럼 보였다. 자신과의 불 화와 화해를 거듭하면서,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공통의 언어는 바 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 시간’이라고 했다.
얼마 전, 사흘 동안 올레길을 걷고 왔다. 걷기 여행의 가장 큰 즐거 움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과의 만남이다. 예전에는 차창 밖으로 빠 르게 스쳐 지나던 풍경들이 비로소 내게 말을 걸어왔다. 눈 닿는 곳 마다 무리지어 핀 작은 들꽃이, 푸른 바다가, 돌담 위에 아무렇게나 자라난 풀포기조차 마음에 시로 들어와 앉았다. 천천히 걷다 보면 정신없이 휘둘리며 살아오느라 지치고 옹이진 나의 마음과도 마주하게 된다. 내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어떻게 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내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길’이란 그런 공간이 아닐까? 일상에 쫓겨 보듬지 못하고 살았던 나를 다시 만나고, 햇살과, 바람과, 나무들의 속삭임을 들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곳.
산티아고 길은 짧게는 40여 일, 길게는 두어 달을 걷고 또 걸어야만 한다. 고행의 그 길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 허약한 체력으로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길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못한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도전을 꿈꾸지 못했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하고 싶은 일도 바라만 볼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나는 담대해지고 싶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계량스푼으로 정해진 레시피처럼 살아온 내 삶이 때로는 갑갑하다. 가끔은 혼자서 배낭 꾸려 오지 여행도 해 보고 싶고, 경쾌한 탭댄스나, 열정적인 플라멩고 춤도 배워보고 싶다. 정물화처럼 박제되어 있는 삶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히고 출렁이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또 깊어지고 싶다. 별 재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글쓰기는 내 오랜 짝사랑의 대상이었다.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도 없고, 가슴을 화르르 뛰게 하는 절절한 이야기도 없고, 글을 쓸 때마다 나의 부박한 글쓰기에 절망하곤 한다. 그럴 때 나는 불현듯 산티아고 길을 떠올린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나는 변하고 싶다. 세상의 많은 것에 도전 할 줄 아는 용기를 배우고 싶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이국의 낯선 동 행들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겠지. 숙소를 찾지 못하고 캄캄한 밤길을 홀로 걸어야 할 때면, 어느 나무 밑에 배낭을 베고 누워 이마 에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며 깊은 사유에 잠기기도 할 게다.
길을 걸으며 때로는 세상의 복판에서 홀로 멀어진 듯 쓸쓸할 때도 있고, 한걸음도 더 내딛지 못할 만큼 고통의 순간도 있을 것이다. 고 통의 절정에서 나는 앞으로 남은 삶에 대해 더 진지한 성찰도 해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피레네 산맥의 보랏빛 야생화 들판에서, 메세타 평원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밀밭 가득 펼쳐진 대지 위로 바람이 불어 올 때 나는 사는 일의 경이로움에 새삼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그 때쯤이면 내게도 한 편쯤은 간직하고픈 글이 써질지도 모를 일이다.


슬픈 귀향/임영도

요양병원 중환자실은 인생열차의 종착역이다. 삶에 지친 몸과 영 혼들이 병상에 누워 고통과 어둠의 길을 걷고 있다. 창문 하나를 사 이에 두고 생사의 길이 갈라진다. 어디로 가는지 방향조차 잃은 채 기 약 없는 귀향을 기다리는 건 아닌지.
10년째 부산의 변두리 숲속 요양병원에서 살고 계시는 작은아버지 를 2년 만에 찾아뵈었다. 그때는 나를 또렷이 알아보시고 반가워하셨 는데 이젠 나를 기억해 내지 못하신다. 노인성 치매가 삶의 기억을 몽 땅 지워버렸나 보다. 아흔두 살의 작은아버지는 나에겐 또 다른 아버 지셨다. 딸만 여섯이고 아들이 없어 큰집 차남인 내가 양자로 입양 갔 다가 우리 집 장남의 유고로 파양하고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호적 이란 기록으로 부자의 관계가 오고갔지만 여전히 내겐 아버지이시다.
육신을 감싸고 있는 살과 근육은 생을 유지하는데 불필요한 굴레 가 되어버렸나 보다. 살기 위해 필요했던 치아마저 다 없어지고 신 생아처럼 눈 감은 채 누워만 계신다. 몇 올 남지 않은 하얀 머리털은 생명의 끈을 이어주는 명주실인가 보다. 허옇게 변색되어 주름 잡힌 조그만 얼굴은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한국전쟁 때의 젊은 시절, 북한군에 끌려가다 도망쳐 나오신 패기와 기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가늘게 떨리는 입술에서 “영우야!” 하며 부르는 듯했다.
‘영우’는 작은아버지의 귀한 외아들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마을 앞 강으로 멱 감으러 가는데 물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뭔가 큰 사고를 예감했지만 사촌동생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겨우 7살 동생이 익사했다. 위로 딸만 넷인 집안에서 외아들은 작은아버지 인생의 희망이었다. 강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쳐 울부짖었지만 강물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했다. 원통과 울화를 가슴속에 삼키며 “다시는 고향에 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부산으로 떠나셨다. 객지에서 딸만 둘을 더 얻어 ‘딸 부잣집’이 되었다.
인생길의 여정은 희로애락의 감정과 동행하며 추억을 만드는 여행이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가슴에 한두 개씩의 한을 품고 산다. 사람의 마음에는 한순간의 느낌을 영원히 담아둘 기억의 장치가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담아둘 수도 없게 하는 삶의 강요 때문에 뇌 속 망각의 자리에 숨겨둔다. 망각은 잠시 묻어두는 것일 뿐, 마음이 불편할 때나 육신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다시 고개를 내민다. 작은아버지도 한 맺힌 이름 ‘영우’란 말만은 잊고 싶지 않으신가 보다. 50년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말이다. 목 놓아 불러보고 싶어도 딸자식들 눈치 보여 삼키고 살아오셨을지도 모른다. 92년 동안의 삶의 기억은 거의 다 지우고 하얀 백지에 한 가지 단어만 남겨놓았나 보다.
고향을 등지고 낯선 타향으로 떠날 때의 심정은 깜깜한 동굴 속을 걸어가는 막막함이었다고 하셨다. 먼 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할 때는 객지생활 3년이 지난 후였다. 마음 속 맺힌 한과 향수는 고난과 절망의 일상 속에서 조금씩 묻혀갔다. 40대 불혹의 나이에 부 모님을 고향에 묻고 자식마저 영혼만 품고 떠나온 길이었다. 삶의 즐 거움은 고된 노동 후의 저녁 술 한잔과 딸들의 살가운 애교였다. 타 고난 건강 체질 덕분에 폐품을 모아다 쌓아두는 힘든 노동도 가난을 극복해 가는 디딤돌이었다.
내가 대학시절 주말에 작은아버지 댁에 가면 친자식처럼 맞아주 셨다. 지극한 마음으로 “너는 장한 내 아들이다”라고 하시며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작은아버지는 노래를 두 곡밖에 모르시는 것 같았다. ‘타향살이’와 ‘꿈에 본 내 고향’이다. 술 한잔 거나하게 드시면 나와 딸들을 앉혀놓고 노래를 하셨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 니….”를 먼저 부르시고 앵콜을 청하면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 세….”를 진심으로 부르셨다. 음정과 박자는 엉망이지만 눈물까지 흘 리며 열창하실 땐 모두가 박수치며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꾸지 못한다. 하시던 일을 할 수 없게 된 후의 생활은 뒤돌아가는 삶이었다. 작은 아버지는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옛일들이 하나씩 살아나는 걸 별 로 아파하지 않으셨다. 가슴속에 맺힌 설움을 끄집어내어 마음의 창에 태극기처럼 매달아 세상 밖으로 힘차게 휘날리게 해야 정리가 될 것이라 하셨다.
떠남은 언젠가는 돌아감을 예고한다. 육신이 못가면 영혼이라도 간다고 믿는다. 태어난 곳이 어딘지 기억조차 못하시는 작은아버지가 먼저 보낸 자식의 영혼은 기억 속에 남겨둔 것 같다. 살아서는 못 가는 그리운 고향이지만 통한의 강과 땅은 그대로 남아 있다. 자식의 영혼이 기다리고 있을 그곳으로 작은아버지도 슬픈 귀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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