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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9052430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2-01-25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며
제1부 무아를 담다
붙박인 시간
물 발자국
초여름 글밭을 짓다
무채색의 날들
발효를 기다리며
‘돌’의 의미
담배꽃
넋두리
바람의 얼굴
2월
동행
나무 무덤
제2부 그리움을 풀다
바닥을 잘 저어라
시집살이 노래
그늘
고지랑물 속 올챙이
어머니의 시계
동전 인생
보름달 아래서
구호품
구멍가게를 추억하다
빗물 저금통
딱 걸렸다
제3부 삶의 무늬를 새기다
산다는 건
산골 밤을 깨우는 소리
이 나이에 재미진 것은
산길에서
남자의 손
냉동실을 청소하다
적과의 공생
바퀴를 인 집
태풍이 지나가고
비탈에 선 나무
도토리를 줍다
제4부 사랑을 품다
돌 왕국
30년 후 명함에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남편이 그리는 세상
기계는 감성이 없다
결혼 풍속도
자화상
내 사랑 손녀
등나무가 사라진 자리
소리길에 들다
너에게 길을 묻는다
진정한 자유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로가 함께하는 시간의 여백과 이질적인 두 물질 사이 공간의 여백을 메워 피우는 사랑의 꽃이다. 서로에게서 순수 진액만 찾아내는 열정의 파장이다. 절대로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제 몸을 다 내어주고 상대를 품고 품어 안는 일이다.
- <발효를 기다리며> 중에서
나는 알 것 같다. 밭이 어떤 의미인지를. 평생 밭에 붙박여 살아온 시간을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밭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지문이 닳도록 호미로 일군 삶의 터전이었고 서러운 세월 잘 건너게 한 징검다리였다. 마흔 해 넘는 시집살이를 하며 긁힌 마음의 상처 같은 건 밭두둑에 묻어두었을 것이다. 일찍 가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이 뼛성으로 덮칠 때는 울부짖는 바람인 양 옥수숫대를 흔들지 않았을까. 옥수수 잎이 달리 우는 게 아니었다. 어머니가 묻어 둔 서러움이 바람의 힘을 빌려 시나브로 울부짖었으리라. 일생 밭과 집으로만 동동거리고 사느라 당신이 무엇을 원했는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돌아볼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풋풋한 시절 꿈꾸었던 삶은 흙 속에 갈아엎어 두었을까. 넓은 세상 구경조차 해 본 적 없는데 헐거워진 마음과 몸은 단단히 여며오던 정신 빗장을 풀어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 <붙박인 시간> 중에서
발자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 지닌 희망을 본다. 과거를 지나왔고 현재를 수놓으며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물방울에는 찰나의 빛이 들어 있다. 지극히 한순간만 존재한다. 그마저도 다른 사물이 있어야 드러나는 존재감이지만 그 힘은 엄청나다. 짧은 생을 살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물방울이지만 바위도 뚫을 수 있고 생명을 죽이고 살릴 수도 있는 힘을 가졌다. 가볍고도 묵직한 생이다.
물처럼 깨끗한 얼굴이 어디 있겠는가. 물방울처럼 투명하고 포용력 있는 것이 또 있을까. 나를 위해 걸어왔던 물 발자국의 시간만큼 나도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다. 어디든 맞추어 가는 물 발자국처럼 나의 색깔만 고집하기보다 어느 곳에든 잘 어울려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 <물 발자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