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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찾아가는 발걸음

역사를 찾아가는 발걸음

(서동철 문화유산 기행)

서동철 (지은이)
서연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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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찾아가는 발걸음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역사를 찾아가는 발걸음 (서동철 문화유산 기행)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9171841
· 쪽수 : 286쪽
· 출판일 : 2025-01-10

목차

머리말

제1부 역사를 찾아가는 발걸음
1. 남한강 물길과 충주 창동리 마애불
2. 원효대사가 깨달음 얻은 화성 당성
3. 하회 탈놀이와 줄불놀이의 ‘깊은 뜻’
4. 강화도에 남은 고려 왕릉의 흔적
5. 세곡창고에 지어진 아산 공세리성당
6. 조선 중화사상의 본향 괴산 화양구곡
7. 서긍 『고려도경』과 군산 선유도 유적
8. 삼별초 항거한 진도 용장성과 명량
9. 이성계의 남원 황산대첩비와 왜구
10. 충주댐에 잠긴 청풍도호부의 옛터
11. 영괴대 비석만 남은 온양온천 행궁
12. 임진왜란 이치전적지의 무명의병비
13. 청황제 매부 사살한 승전지 광교산
14. 내포 역사 그대로 간직한 홍주읍성
15. 진산사건 현장과 두 순교자 무덤
16. 백제 불비상에 얽힌 흥미로운 의문
17. 제주 유배선 출항지 해남 이진포
18. 예산 남연군 무덤과 삽교천 구만포

제2부 인물을 찾아가는 발걸음
1. 고창 동리 고택과 소리꾼 양성 시스템
2. 청주 되찾고 금산에서 순절한 중봉 조헌
3. 다산 사상의 터전 한강 변 남양주 마재
4. 매월당 김시습을 따라가는 경주 여행
5. 강릉의 수호신 범일국사와 굴산사 터
6. 삼척에 진하게 남은 미수 허목의 체취
7. 당대 명필 성달생 기리는 완주 화암사
8. 『설공찬전』나재 채수와 상주 쾌재정
9. 담헌 홍대용과 베이징의 파이프오르간
10. 시인 손곡 이달과 원주 법천사
11. 송파 삼전도비문과 백헌 이경석의 고뇌
12. 가야금 명인 우륵과 신라 제2 도시 충주
13. 문경과 상주의 후백제 견훤과 인연
14. 궁예미륵이라 불리는 안성 기솔리 석불
15. ‘의미 없다’ 동계 정온의 거창 모리재
16. 서울 은평뉴타운의 산신령 금성대군
17. 태조 이성계와 삼척의 영경묘ㆍ준경묘
18. 실천적 지식인 남명 조식과 거창 산천재

제3부 불교를 찾아가는 발걸음
1. 혜공과 원효가 가르침 남긴 포항 오어사
2. 불암산 마애부도와 왕실 불교의 자취
3. 스승 사명당과 다른 길 걸은 제월당
4. 징효대사의 사자산문과 영월 법흥사
5. 만해 『불교유신론』 낳은 고성 건봉사
6. 청양 칠갑산 장곡사의 밥그릇 부처
7. 구례 연곡사와 일본의 오래된 악연
8. 의성 고운사와 청전 신유한의 사적기
9. 정업원 구기비와 서울 낙산 청룡사
10. 소설 『임꺽정』의 무대 안성 칠장사
11. 천안 명물 호두과자의 고향 광덕사
12. 고창 선운사 창건 설화와 곰소만 소금
13. 부평 일본군 조병창과 전등사 철종
14. 공양왕의 죽음과 동해 삼화사
15. 한글 소설 『부설전』과 변산 월명암
16. 선릉과 정릉, 그리고 봉은사
17. 서산 부석사 관음보살과 천수만 뱃길
18. 강화 고려의 국가적 관음성지 보문사

저자소개

서동철 (지은이)    정보 더보기
문화유산 전문 언론인, 서울신문 논설위원. 1960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문학과 졸업.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및 매장문화재분과 위원 역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의 운영자문위원, 국립국악관현악단 평가위원 역임. 서울신문 문화부장, 국제부장, 공공정책부장, 편집부국장, 미디어전략실장, 경영기획실장, 수석논설위원, 서울신문 STV 사장 역임. 현재 서울신문 논설위원. 문화유산 기행 에세이집 『오래된 지금』, 『역사를 찾아가는 발걸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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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덕흥창이 있던 곳이 바로 창동리다. 창동리(倉洞里)라는 땅 이름부터가 조창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창동리 마애불은 고려시대 세곡을 나르는 조운선이 충주에서 출발해 도성인 송악, 곧 개성이 있는 예성강 하구로 여정을 시작하는 바로 그 자리에 새겨졌다. 조운선 뱃사람들이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마음을 다해 무사 귀환을 기원했던 대상이 충주 창동리 마애불이었다.
조선은 충주에 덕흥창과 함께 경원창을 운영했다. 그런데 곧 두 조창을 통폐합한 가흥창을 하류에 새로 만든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덕흥창과 경원창은 물론 가흥창의 흔적도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나마 목계나루에서 남한강을 오가던 뱃사람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가흥리에서 목계교를 건너면 목계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원주, 오른쪽으로 가면 제천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곧바로 ‘목계나루’라고 새긴 큼지막한 흰색 빗돌이 나타난다.
덕흥창, 경원창, 가흥창이 국가의 세곡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역할을 했다면, 목계나루는 민간의 여객과 물류를 담당했다. 그러니 목계장터는 충청도와 강원도의 전통시대 물산과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새로운 시대의 물산이 한데 모이는 장소가 됐다. 목계장터 역시 철도 개통 이후 방물장수만 오가는 기능으로 퇴화했다. 1973년 준공된 팔당댐은 서울로 오가는 물길을 완전히 끊었다. 장터 초입에는 충주 출신 시인 신경림의 「목계장터」 시비가 세워졌다.
중앙탑면의 옛 이름은 가금면이었다. 가금면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가흥면과 금천면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이름이었다. 주민들이 다시 땅 이름을 바꾸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중앙탑이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중앙탑이란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을 말한다. 남한강 탄금호의 경관과 잘 어울리는 12.65m의 통일신라 석탑이다.


군산정 앞바다는 서북쪽으로는 선유도의 북섬과 남섬, 남동쪽으로는 무녀도가 에워싸고 있다. 동쪽의 일부만 바다가 열려 있는데 그것도 신시도가 호위하듯 멀리서 가로막고 있다. 서긍이 ‘열두 봉우리의 산이 잇닿아 성과 같이 둥그렇게 둘러 있다.’고 묘사한 그대로다. 망주봉 일대 유적을 돌아보고 섬을 나서는 길에 선유교 건너 주차장에 잠깐 차를 세우고 주변 지형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일대가 군사기지는 물론 먼바다를 건너온 외교사절에게 환영 행사를 베푸는 장소로 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숭산행궁의 존재를 놓고는 논란이 있다. 우리가 아는 행궁이란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머무는 별궁이다. 지역에서는 글자 그대로 고려시대 행궁이 있었을 것으로 믿는 분위기다. 서긍은 “큰 수풀 가운데 작은 사당이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숭산신의 별묘라고 한다”고 했다. 학계는 숭산행궁이 숭산별묘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숭산은 개성의 진산인 송악을 가리킨다. “임금이 계신 곳을 그리워한다”는 망주봉의 작명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서긍은 흑산도를 지나며 “옛날에는 이곳이 사신의 배가 묵는 곳이었다. 관사도 아직 남아 있다”면서도 “그런데 이번 길에는 정박하지 않았다”고 했다. 흑산도 관사는 1987년부터 2000년까지 목포대박물관의 세 차례 지표조사에서 흔적을 찾았다. 이후 전남문화재연구원이 2013년과 2014년 발굴조사를 벌여 건물터를 확인하고 기와와 청자, 희령통보 등 송나라 화폐도 수습했다.
군산정을 떠난 중국 사신의 환영 행사는 다시 마도 안흥정에서 열렸다. 마도라면 고려시대 침몰선이 다수 발견되어 수중고고학의 보고로 떠오른 태안 앞바다 섬이다. 안흥정이 세워진 것은 1077년(문종 31)이다. 자연도는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선 지금의 영종도다. 자연도에도 사신을 접대하는 경원정이 있었다. 우리에게 외교 유적이란 흔치 않다. 선유도가 사실상 육지가 되면서 높아진 망주봉 유적에 대한 관심이 흑산도ㆍ마도ㆍ영종도 유적의 실체 확인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치에 가려면 대전통영고속도로는 금산, 호남고속도로는 논산이나 전주를 경유하게 된다. 그런데 이치전투라는 하나의 역사를 기리건만 유적은 ‘금산 이치대첩지’와 ‘완주 이치전적지’로 나뉘어 있다. 이치대첩지는 충청남도 기념물 154호, 이치전적지는 전라북도 기념물 26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금산이 1963년 충남에 편입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굳어졌다.
이치 정상이 이치전적지다. 전적지 옆에는 주차장이 있는 휴게소가 있다. 전적지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휴게소와 주차장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으로 행정구역이 갈린다. 이곳에서 금산 쪽으로 1.5㎞쯤 달리면 이치대첩지가 나타난다. ‘이치대첩문’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려 있는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권율을 기리는 충장사와 대첩비각이다. 도원수권공이치대첩비는 1902년 금곡사와 함께 세운 것이지만 1940년 일본 경찰이 모두 파괴했다. 지금의 비석은 1964년 다시 세운 것이다.
이치전적지와 이치대첩지는 행정구역뿐 아니라 기리는 주체도 갈려 있다. 전적지는 황진의 기념물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면 대첩지는 완벽하게 권율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적지든 대첩지든 승리한 관군의 역사만 기억할 뿐 의병의 희생은 외면하고 있다는 반성도 뒤따랐다.
왜군은 의병에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이치전투 당시 권율 휘하에는 의병도 가세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은 7월 3일 관군과 금산성을 공격하다 순국했다. 조헌 의병과 영규 의승군도 8월 18일 금산성을 공격했지만 모두 순절하고 말았다. 고경명 의병과 조헌ㆍ영규 의병은 모두 크게 패했지만 왜군에도 타격을 입혔다. 왜군이 이치를 돌파하지 못한 것은 무모함에 가까운 의병의 공격으로 전력에 손실이 컸기 때문이다.
전라도 익산 유생 이보와 소행진은 금산에서 들려온 고경명과 조헌 의병의 잇따른 순절 소식에 향리에서 400명 남짓한 의병을 규합한다. 이들은 금산으로 향하다 8월 27일 왜군과 맞닥뜨렸다. 의병은 활, 낫,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들고 왜군과 백병전을 벌이다 모두 순국했다. 소행진의 큰아들 소계는 아버지 장사를 마치자 금산으로 달려갔고, 작은아들 소동도 형의 순국 소식에 금산으로 달려가 모두 전사했다. 소동의 부인 민씨는 강화 친정에서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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