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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시아사 > 중앙아시아사
· ISBN : 9791189199142
· 쪽수 : 688쪽
· 출판일 : 2018-08-01
책 소개
목차
1장 중국, 세상 속으로: 실크로드
지리상의 대발견과 세계관 / 중국식 세계 발견법 / 서쪽 세계를 탐험한 사람들 / 페르가나의 과거와 현재 / 중앙아시아 문명을 만나다 / 중앙아시아 수자원 고찰 / 고지도에 남은 육상 실크로드 / 실크로드의 메아리
제2장 문명, 어우러지다: 동서양의 풍물
동서를 이해하다 / 동양의 실크와 서양의 거울 / 실크, 세상을 다시 인식하는 방식 / 동서 물류의 물꼬를 트다 / 국경을 넘어온 식물 / 실크로드의 식물 / 외국에서 온 동물
제3장 장안에서 로마까지: 융합의 길
문명의 경계를 찾아서 / 실크로드의 시작, 중국 장안 / 실크로드의 끝, 고대 도시 로마 / 중서의 융합미 막고굴 벽화 / 중국의 해외교류와 둔황 문화 / 관제 아래 천문학의 서학동점 / 낙양에 울려 퍼지는 호악 / 찻잎의 실크로드 여행
제4장 중국: 바닷길을 열다
세계관을 바꾼 해상 실크로드 / 말라카해협에 가로놓인 배 / 중국인, 광저우에서 배에 오르다 / 고전적 글로벌화 시대 / 고고학 자료 속 해상 실크로드
제5장 실크로드와 비상: 일대일로 배후의 전략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다 / 대국 굴기,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 일대일로 전략 및 추진 / 위안화 국제화의 명과 암 / 일대일로 해외 인프라 건설 계획
책속에서
인류는 고산을 넘고 큰 강을 가로지르면서 자연의 한계를 기술적으로 정복했다. 한계를 뛰어넘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고산을 넘고 큰 강을 건너고 새 길을 열면서 한 지역에서 또 다른 지역으로 들어서 문화의 교류와 융합을 이루었다. 이 또한 문명의 성취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길 자체는 특수한 연결고리가 되어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 자원을 잇고 서로 간의 왕래를 촉진함으로써 문명의 공동번영을 이룩한다. 실크로드의 지난 2000년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든 자연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되든 이 길을 통한 왕래가 끊겼던 적은 없었다.
- 제1장. 중국, 세상 속으로: 실크로드 중에서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 유역은 역사적으로 매우 발달한 관개문명이 존재했던 곳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인구와 걸신들린 듯 물을 빨아들이는 면화를 길러야 했던 적이 없었다. 1960년대부터 두 강에서 아랄해로 흘러드는 수량이 수직하강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앙아시아 지역의 수자원 중 90%가 면화생산에 쓰였고, 그중 70%는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에서 끌어온 물이었다. 아랄해의 환경재난 앞에 소련도 속수무책이었다. 소련은 1984년 북부의 물을 남부로 끌어오는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이는 시베리아 오브강 상류에서 물을 끌어와 2,400km 길이의 시베리아-아랄해 운하를 건설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1986년에 소련은 갑자기 이 프로젝트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면화에 의존하고 있다. 나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누쿠스에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면화재배지가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은 바짝 마른 밭에서 맨손으로 어린 면화 묘종을 위해 흙을 부슬부슬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토양 알칼리화가 너무 심각해 이곳의 농작물은 더 이상 생장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 제1장. 중국, 세상 속으로: 실크로드 중에서
불교가 동쪽으로 전해진 노선은 육상 실크로드가 개척한 무역로와 대체로 일치한다. 즉, 카슈미르에서 우전으로 들어가 다시 톈산 지역에서 실크로드 남북로를 거쳐 갔다. 기원전 3세기 고대 인도 공작 왕조(마우리아 왕조)의 아육왕(아소카 왕) 시대 제3차 결집(1,000여 명의 비구들이 모여서 논서를 담은 논장을 마련해 삼장의 기틀을 마련한 일) 이후 말전지 등의 승려가 계빈국과 간다라국으로 향하고 마하륵기다 등은 대하 지역으로 가 불교를 전파했다. 이때 불교와 서역 타림분지 오아시스 사이에는 파미르고원과 쿤룬산맥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카슈미르에서 피산(구마를 가리킴)과 자합(샤히둘라를 가리킴)에 이르는 노선 등 고산 곳곳에 오솔길이 나 있었다. 이후 수세기 동안 고대 신강에 자리했던 오아시스 왕국들은 대부분 불교를 국교로 숭상했다. 오늘날까지도 실크로드상에 남아 있는 불교 석굴은 카스의 삼선동부터 쿠처의 키질석굴, 옌치의 시크친석굴, 투루판의 베제클리크석굴, 그보다 더 동쪽으로 둔황 모가오쿠를 거쳐 다퉁의 윈강석굴과 뤄양의 룽먼석굴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교가 전파된 이 육로가 남긴 확실한 흔적이다.
- 제3장. 장안에서 로마까지: 융합의 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