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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9205843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0-12-12
책 소개
목차
시
김요아킴
그날, 밤의 기억법·14
운문사, 봄날에·16
윗몸 일으키기·18
김선아
궁리하는?작별·22
가시를 그리워하다·24
헛바람·26
민창홍
고양이가 앉아 있는 자세·28
불빵구·30
잔치국수·31
엄영란
잔디밭이었다·34
휴지처럼·36
2020.6.23·38
유담
하루의 눈길·40
눈주름·42
눈가에서 사랑을 보내네·43
정은영
윤이월·46
못·48
조약돌·50
김미옥
모래성 전문가·54
다만, 오늘의 날씨가 궁금해·55
큰 도화지에 점 두 개가 찍힌 것처럼·56
류인채
곁·60
수수꽃다리·61
낙타·62
손영숙
코로나 대구 풍경·64
화관을 씌운 이 누구냐·66
이강휘
개구리 씨의 수업·68
직업병·70
수진
서산 마애삼존불상·72
숲들의 수다·74
양민주
소를 그리다·78
애장터·79
보리꽃 필 무렵·80
이일우
참꽃 1·82
참꽃 2·83
참꽃 3·84
곽애리
당신, 언제 이곳을 기웃거리셨나·86
그녀의 집에는 10개의 창이 있어·88
요중선鬧中禪·90
김덕곤
밝거나 어둡거나·92
가거나 오거나 그사이·94
반달·96
김연순
가면·100
만화경萬華鏡·102
박상옥
제빵일기·106
제빵일기 2·107
제빵일기 3·108
김영완
폐업·110
밤꽃·112
이우디
낮고 푸른 당신·114
물의 순례자·116
바닥을 구르는 분홍을 위한 레퀴엠·118
양시연
촉수어 고백·122
정말, 헛손질이다·123
꽃 이름 찾기·124
정영미
백합의 노래·126
In Time·128
수필
이선국
뜨락의 벚나무·134
문학청춘작가회 회칙·137
문학청춘작가회 발자취·141
저자소개
책속에서
[발간사]
코로나19로 인하여 세상은 변화되었습니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살아야 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일을 자제해야 하고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전 세계로 번져가는 바이러스의 위력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보고 있습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사회 전반의 변화 속에서도
자연의 순리는 어김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계절은 옷을 바꿔 입으며 다가옵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나가는
문학청춘의 꿈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인들 모두 안부를 묻고 서로를 위로하며
힘든 시간을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문학청춘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3집이 나오기까지 협조해주신 동인들과
황금알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문학청춘작가회장 민창홍
[시인의 말]
2016년 첫 시집 『이연당집·上』을 출간할 때 어느 선배 시인이, 한 달은 행복할 거라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시집이 세상이 나온 다음날부터 『이연당집·下』를 생각하느라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상권 서문에 “굳이 ‘상’이라고 함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중’이나 ‘하’를 이어서 내겠다는 내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 이상 ‘하’를 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탈고를 하면서 어떤 의무감에서 해방되는 듯하여 그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 행복감에는 시집에 대한 것만이 아닌 듯합니다. 33년간의 직장(도회지)생활을 끝내고 낙향을 한다는 즐거움도 함께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시집을 준비하면서 상권 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늘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면서 시詩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는 압축이고, 생략이며, 독백입니다. 시는 불완전한 문장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를 노래하는 특징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는 짧으면 짧을수록 더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언어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넘어서는 눈빛, 몸짓, 무언의 교감 같은 형식이 때로는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하이쿠俳句의 대가였던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도 그의 문하생들에게 “모습을 먼저 보이고 마음은 뒤로 감추어라”라는 말로 시를 지도했다고 합니다. 즉 사물은 분명히 드러내는 반면, 시인이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면은 가급적 숨겨서 시적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니 어쩌면 그 표현이 맞을 지도 모릅니다.
그 동안 『이연당집·上』을 접한 분들이 이연怡然의 의미대로 얼마나 ‘그저 그렇게 즐거웠을까’ 생각하면서 『이연당집·하』를 세상 속으로 내보냅니다. 아무쪼록 이 시집을 접하는 모든 이들이 꼭 그렇게 되기를 두 손 모아 축원드립니다.
끝으로 늘 문학의 길에서 큰 힘이 되어주시는 김영탁 시인과 졸시를 크게 평해 주시고, 적확히 해석해 주신 문학평론가 권온 선생님께도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0년 12월 길일
이연당에서 신승준
그날, 밤의 기억법
김요아킴
단전이 예고되었던 그 날
모든 집들의 창엔 밤이 찾아왔다
당연히 어둠이 방안을 메우고
켜켜이 쌓여만 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둘러
눈을 붙이려는 사람들
침묵은 이미 거미줄처럼
방바닥으로 타고 내려앉았다
길들여지는 시간 속으로
아른거리는 벽지의 무늬
물방울과 꽃잎의 환영이
머리맡으로 교차했다
익숙함은 이내, 촘촘한
밀도로 생을 움켜쥐었다
‘아닐세! 라는 용기는
가장 훌륭한 살해자’
무명을 거부한 1970년 11월 13일
비로소 방안의 촛불이
검은 습도를 한입씩 베어 물었다
벽면의 진실을 밝혀줄
그날이 떠올랐다
* 인용된 부분은 전태일과 니체의 말 중에 따옴.
운문사, 봄날에
담은 야트막하다
아침 햇살로 기와를 얹은
성과 속의 경계는 한없이 낮다
수백 년 중생들의 고통을
처진 그리메로 대신한 소나무가
절집 마당으로 환하다
투박하게 합장한 마음은
솔바람 어슬렁거리는 산길을 쫓아와
엷은 풍경소리로 닿는 매화빛 화두,
댓돌 위 가지런히 놓인
비구니의 고무신들은, 벌써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겨우내 소리죽여 터뜨리지 못한
분심憤心들이, 일제히 꽃을 피운다
근엄하지 못한 불전의 대웅이
빙긋 웃고만 계신다
여전히 담장은 낮기만 하다
윗몸 일으키기
불룩해진 뱃살을 들여다본다
매번 몸을 곧추세워
하늘의 명을 알아야 할 나이만큼
지탱해야 할 허리가
연소하지 않은 욕망을 걷어내려 한다
이미 반복된 스무 개의 동작은
결국 짙은 땀범벅으로 귀결되어
눈 따가운 광장의 일탈로 꿈꾸려 한다
서른 고개로 접어들며 누군가에
간절히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호흡은 가빠오고
짧은 숨으로 잉태된 생명을 위해
혹함이 없는 나이테만큼
허리둘레를 들여다본다
하나하나 일으켜 세워야 할 생의 함수는
윗몸의 굳은 신경에 대응하며
손아귀에 쥐어야 할 힘으로, 다시
부푼 욕망을 지켜본다
살아낸 나이만큼 돌아다보는
이 하루하루의 날 선 경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