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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9205850
· 쪽수 : 128쪽
책 소개
목차
1부 이연당부怡然堂賦
순례를 떠나며·12
이순耳順·14
농부, 봄을 깨우다·16
지금 이 시간·17
늙어 간다는 것?·18
누옥지복陋屋之福·19
초하의 이연당에서·20
어느 여름날·21
취우지홍驟雨之虹·22
길을 걷다·24
시월의 만월·25
만추사색晩秋思索·26
이연당부怡然堂賦·27
시작詩作·28
향호 가는 길·29
찬견불리讚見佛里·30
어이연당於怡然堂·32
2부 시후여정時候旅情
초춘지정初春之情·34
꽃비·36
불사춘不似春·37
오늘 유달산·38
영춘迎春·39
영랑 숲길·40
춘심春心·41
화신花信·42
봄꽃 약속·43
작은 초상肖像·44
홍도야 울지 마라·46
가을 해변·47
이 가을에·48
시베리아 횡단열차·49
하조지몽夏朝之夢·50
아 바이칼·52
그리고, 여독·53
3부 와초관세臥草觀世
외과병동·56
역류逆流·58
도시의 야경·59
광화狂花·60
현상現狀·61
유랑민流浪民의 꿈·62
실명失明·64
길·65
그 시절 광화문·66
구도求道·68
여명기黎明期·69
혹서일기酷暑日記·70
노승의 기도Ⅱ·71
고백 시대·72
홍콩을 위하여·74
한 번쯤은 나무로 살아가자·75
새벽-인시寅時·76
4부 유수부사流水浮思
미로·80
연서戀書·81
기다림의 의미·82
향심向心·84
연모Ⅱ·85
장덕리에 복사꽃 피면·86
여름비·88
사모불망思慕不忘·90
회복기의 기억·91
연모Ⅲ·92
팔월 어느 날·93
해변단상海邊斷想·94
그리움은 별이 되고·95
영매靈媒·96
회중언어懷中言語·98
11월을 보내며·100
연군戀君·101
해설 | 권온_성숙, 재발견, 갱신으로서의 ‘시간’·102
저자소개
책속에서
신승준 시인은 부처를 보았다는 전설이 있는 견불산見佛山 자락 견불리에서 구도의 정신으로 일상의 삶을 사랑하며 시를 쓰고 있다. 신승준 시집 『이연당집·하』의 시편들은 앞서 나온 『이연당집·상』보다 평범하면서도 단순한 시어로 화조지화花鳥之和를 꿈꾸며, 구도와 연연戀戀이 그윽한 산수화를 선보인다. 전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를 넘어서 오히려 평이하게 쓰인 시편들은 삶이라는 현실을 더욱더 끌어안으면서, 시의 정신이 향하는 건 묵언 수행자처럼 하나의 나무로서 오롯이 살고 싶어하는 구도의 자세라 할 만하다. 그리하여 그는 흐린 세상을 통하여 “보지 않고도 아름다움을 느끼”(「실명」)며, 그의 마음을 “꼭 닮은 견불산 산빛을 마주하고”(「누옥지복陋屋之福」) 싶은 것이다.
한편, 그는 구도의 여정에서 길항하는 세속의 사랑과 마주하며, 대상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 절절한 연서를 보낸다. 이 사랑은 대체적으로 회고적이지만, 그가 집중하고 있는 구도의 정신과 맞물리면서, 사랑은 하나의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랑의 흔적엔 선홍빛 상처가 선명하
더라도 “그 상처 밑에서는/ 무심히도 새살이 돋는”(「회복기의 기억」) 것처럼, 구도와 사랑은 하나일 터. 그러므로 앞으로 다가올 시의 여정에서 구도와 사랑을 꽃피울, 새롭게 태어날, 그의 시편들이 기다려질 뿐이다.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
1부 이연당부怡然堂賦
순례를 떠나며
항해는 끝났다
잠시 휴식을 위해
배는 항구에 정박한다
긴 여정에서
함께했던 눈 부신 햇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던 미풍
방향각을 알려주던 무수한 별
이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길지 않은 휴식이 끝나면
다시 길을 떠난다
그 길은 순례
햇살도, 미풍도, 별도 없는
철저한 혼자만의 길이다
목적은 있으나
목표는 존재하지 않는
오롯한 순례의 길
내 길이 끝나는 날
그 길도 끝나겠지
이순耳順
나이가 삶의 영광도
세월의 벌도 아니라지만,
귀가 세상의 이치를 따른다는
이순,
육십 년의 세월을 살았다
이제야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참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새벽에 보았던
영롱한 초로草露도
아침 햇살에 사라지듯
평생 참이라고 믿었던
그 수 많은 명구名句도
한낱 티끌과 같이 흩어지고
우리는 또 침묵의 밤을 맞이한다
육십 평생
나를 성가시게 하던
사사망념邪思妄念에 쫓기어
그 굴레의 의미마저 의심하였건만
이 세상은 그들까지도
존재해야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나도 이제
이순임이 분명하도다
농부, 봄을 깨우다
봄은 농부가 깨운다
그게 농부가 할 일이다
봄!
만물이 생동한다 한들
농부가 깨우지 아니하면
어찌 시작될 수 있으랴
농부를 천하의 대본이라 함은
시절의 근본인 봄을
깨우기 때문이리라
지금 이 시간
폭풍 같은 망념妄念과
갈등의 시간이 지나간다
저만치 밀려갔다
다시 해일처럼 밀려온다
인간의 의지는 배반당하고,
?침묵만이 지배하는 무언의 시간으로
안거安居에 든 수도승이 되어
축소된 백 일로 견성見性에 이른다
수없는 곡절을 겪으면서도
정점을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격정의 클라이맥스는
초라한 자유에 절규하고
?파도에 밀려 산산이 부서지는
모래 같은 시간이 지나간다
- 인생
늙어 간다는 것?
속절없이 가는 청춘이 아쉬워
그 한 자락 떼어내 감춰 두었다가
오는 황혼 끝에 슬쩍
붙여 놓으려 했더니
야속한 세월 어찌 알았는가
뒤돌아온 세월에
머리에는 하얀 꽃이 만발하네
막을 수 없는 세월이라면
늘어나는 백발만큼 만이라도
늙은이의 지혜로
세상을 보게 하소서?
누옥지복陋屋之福
세상사, 제 뜻대로 되는 일 있을까마는
늙어 마지막 한 가지 내 뜻대로 하리라
호사수구狐死首丘라 하지 않았던가
떠날 때 떠날 수 있으니 아쉬울 것 없구나
이곳에 이런 친구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골바람 맞으며 산모퉁이 돌아서면
내 마음 꼭 닮은 산빛과 마주하고
해 떨어져 들어서는 토방에는
그윽한 차향茶香과 함께
해변에서 찾아오는 파도소리 벗하며
노변정담爐邊情談 나눌 수 있으니
이만한 복락이면 족하지 아니한가
초하의 이연당에서
자라목 재峴를 넘어
불어오던 바람은
마당 한편에 자리한
자미화 향기 머금고
문지방을 넘어선다
창공을 나르던 새 한 쌍이
그 향기를 쫓아서
팔랑팔랑 뒤따르니
세상에 귀한 것 또 무엇 있으랴
속세를 떠나 등 돌리고 앉은 이곳에
꽃향기와 새들이 친구가 되어주니
차안此岸일망정
이만한 복락이 어디 있겠소
곧 찾아들 피안彼岸이 이만하겠나
화조지화花鳥之和의 벗들과
오래오래 머물고 싶을 따름이니라
어느 여름날
여름날
태풍이 쓸고 지나간
바다를 들여다본다
파란 바닷물 속에 비치는
흰 구름도 나를 바라본다
바다는 시간의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나는 바다 위에 흩어진 시간의 조각을
가슴에 새긴다
구름을 몰고 온 바람은 그저
시간의 한 토막을 남기고 떠날 뿐
남쪽에서는 또 다른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고
나는 내일로 간다
흘러간 시간을 밟으며
내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