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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89437343
· 쪽수 : 504쪽
· 출판일 : 2022-05-29
책 소개
목차
피젤
마법사
초흐르테난
멈춤
요정 니네브
쇠사슬
감옥에서
마녀를 불태워라
조제법
수습 선원
여행
리워드와 윈드워드
미사
침입자
워드룸
다리
꼭대기
미끄럼
강자의 권리
진퇴양난
맹인
악령답게
당근 한 자루
담판
대장의 자격
종지기
영약
불가능
벌
광기, 그리고 또 광기
다른 대륙
진전
책속에서
파린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아로스에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그가 물었다. “나벤슈타인의 고아원 출신이라고 했지?”
“응.” 아로스는 짧고도 강한 어조로 답했다. 더 말하고 싶지 않은 주제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갈색 말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아보고 파린에게 물었다. “그리고 너는 매장꾼이고. 맞지?”
“응.” 파린도 짧게 대답했다. 더 말하고 싶지 않은 주제라는 뜻이었다. 그는 뤼베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일에 집중해 보는 게 낫겠어. 네 안에 있는 악령에 관해 얘기해 봐.” 파린이 움찔했다. 아로스는 진지하게 묻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금 자신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고 떨떠름하게 웃었을 테니까.
“대체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파린이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내가 예언가라는 거 벌써 잊었어? 그리고 너는 뼈를 보는 사람이고. 악령과 환영 이야기는 네가 먼저 꺼냈잖아.”
파린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얼핏 보기에 그는 어딘가 모자라고 굼떠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생기를 잃는 법이 없었다. 혹시 지금 악령과 대화라도 나누는 중일까?
아로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서 네 악령이 뭐래?”
파린의 얼굴은 ‘아차, 들켰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에… 그러니까…” 그가 비밀스럽게 주위를 돌아보고는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혹시 내 머릿속 망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래. 우린 서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어. 원래 동맹이 그런 거 아니야?”
“좋아. 악령이 자기가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지 너한테 얘기해 주래.”
아로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악령, 되게 재미있는 녀석인가 봐.”
파린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응, 엄청 웃기긴 해. 하지만 좀 단순하기도 하고.” 파린은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자기가 없다면 난 그냥 겁쟁이일 뿐이라고 전해 달래.”
며칠 전이었다면 물론 그 말에 동의했겠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아로스는 파린을 완전히 달리 보게 되었다. “그 말은 못 믿겠어. 네가 정말로 겁쟁이라면 나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전하지도 않았겠지.”
“그건 그렇고, 아로스. 난 우리의 싸움이 이제 겨우 시작 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두려워. 그 스승이라는 자는 네코르인을 이끄는 우두머리인데 다른 악령이 그를 지배하고 있어. 그래서 그는 극도로 위험하고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지. 사람들은 그 악령을 감히 부를 수 없는 존재라고 불러.” 그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감히 부를 수 없는 존재는 인간에게 낙인을 찍어. 손목 위쪽에 찍힌 낙인을 통해 그 사람의 몸 안에 숨어들어 간 다음 마음대로 조종하지.”
“그 말을 믿으라고?”
“믿기 어렵다는 건 알지만, 사실이야.” 파린이 허리띠에서 칼을 뽑더니 화단의 부드러운 흙 위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땅에는 금세 오각형 별이 생겨났다. 그는 한가운데에 무언가 다른 형태도 그려 넣었다. 굉장한 솜씨였다.
“원으로 둘러싸인 거꾸로 선 별, 그리고 한가운데에 불꽃. 감히 부를 수 없는 존재의 낙인이 바로 이렇게 생겼어.” 파린이 설명했다. “이런 표시가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무조건 도망쳐야 해. 알겠지? 방화와 약탈을 일삼는 사탄 추종자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지?”
아로스는 파린의 그림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그림이었다. “응. 소문이 자자하니까.” 아로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파린은 분명 ‘우리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대체 언제부터 그의 싸움이 그녀의 싸움이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