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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89437350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22-05-29
책 소개
목차
새로운 세상
모래와 물
왕궁
프라이머스
규칙을 알아라
연회
모든 것은 둥글다
상자
진실
시험
분노와 비열함
보물 창고
검시
교훈
빨강과 파랑
항명
귀향
말을 타고 나선 길
빈자리
마지막
퍼즐 조각
항구에서
정화된 자
포기
영원
소원
책속에서
파린은 지게스문트 성벽 위에서 멍한 눈으로 저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고향 마을 하우펜을 떠난 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어느새 그는 사건 하나가 해결되기가 무섭게 다른 사건에 휘말리는 긴박한 상황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며칠이 흘렀다. 성안의 구설수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나도는 소문에 귀를 닫으면 그만이었다. 스콰이어 파린은 어느새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저습지에서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모자라 성문 앞에서 기사와 기이한 대결을 벌인 그를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모든 게 고약한 마법에 걸린 기사를 구해 내기 위해서였다니! 신하와 하인과 병사들 사이에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수록 사실과 무관한 황당한 소문이 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파린은 되도록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어차피 해명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어제는 멍청이, 오늘은 영웅. 그렇다면 내일은 뭐가 될까? 변하지 않는 진실은 단 하나, 바로 그가 하우펜 마을 출신 매장꾼의 아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제 그는 에미코의 스콰이어이기도 했다.
멍한 표정으로 어디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거야? 징글징글이 기지개를 켰다. 요 며칠 너 게룬다보다도 더,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지루한 거 알아?
“무슨 소리야?”
싸움도 없고, 결투도 없고, 화끈한 잠자리도 없고. 넌 지금 유한한 네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가끔은 느슨하게 지내는 것이 건강에도 좋아.”
그런 거라면 죽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지금은 긴장과 흥분 그리고 자극이 필요한 때라고. 그게 바로 인생이지.
“인내심을 좀 가져 봐. 지금도 어디선가 또 다른 사건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가만히 숨어서 적당한 때만 기다리는 강도처럼 말이야.”
인내심은 천하의 지루한 인간들에게나 어울리는 거야. 그러고 나서 징글징글은 뒤통수에서 무어라 불분명하게 중얼거렸다.
사실 징글징글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망상과 불길한 사건은 바늘과 실처럼 늘 붙어 다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