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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국내 BL
· ISBN : 9791189504229
· 쪽수 : 864쪽
책 소개
목차
1권
서장
1징 교오
2장 간린
3장 미색
4장 분노
5-1장 해태
2권
5-2장 해태
6장 질투
7장 탐도
종장
외전
후기
책속에서
성호를 그은 로넨이 입을 열었다.
“……저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우선 혼인 관계가 아닌 사내들과 잠자리를 일삼았습니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혹은 함께 제 침소를 찾았고 제 몸을 탐했습니다.”
로넨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죄는 너무도 많아 모조리 나열할 수도 없었다.
그가 말이 없자 에카르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로넨을 보았다.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 마치 처음 본 그날과도 같이, 에카르트의 시선이 사로잡힌 듯 꼼짝할 수 없었으니까. 눈을 감고 있음에도, 오묘한 색상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음에도 그랬다.
가면을 쓰지도, 면사로 가리지도 않은 로넨을 보는 순간 에카르트는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으나 돌이키지 못했다.
“절대적으로 쾌락만을 위한 행위였습니다. 음란한 행위를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달싹이는 그 입술을 보자 대공의 손가락에 희롱당하던 붉은 혀가 떠올랐다. 에카르트는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음란한 행위라 함은…….”
“서로의 몸을 만지고, 핥았습니다.”
대공의 손가락을 핥아 올리는 붉은 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해 에카르트는 황급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더욱 생생해지기만 했다. 몸에 열이 오르고 숨이 거칠어졌다.
지금에라도 사죄한 뒤 이곳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는 손을 모은 채 마음을 다스리려 애썼으나 눈앞의 로넨이 음행하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그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래서 로넨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작 한 뼘. 두 사람의 거리였다.
성인 남성의 손바닥 하나만큼 벌어진 공간에 기묘한 공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흥분한 사내들이 내뱉는 숨결이 방 안을 데우던 것처럼, 에카르트와 로넨 사이에 알 수 없는 열기가 차올랐다.
로넨은 마치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에카르트를 보며 당혹스러워했다. 같은 고행의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사제와 성기사는 이토록 다름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의 고백에 유혹당하여 괴로워하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