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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89787547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5-01-25
책 소개
목차
제1부 제사 :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1. 각 제사의 규례 1장 번제의 규례
2장 소제의 규례
3장 화목제의 규례
4장 속죄제의 규례
5장 속건제의 규례
6장 각 제사의 규례 1
7장 각 제사의 규례 2
2. 제사장에 대한 규례 8장 제사장의 성결의식
9장 제사장의 직무에 대한 규례
10장 제사장의 불성실에 대한 규례
3. 각종 정결법 11장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12장 출산에 대한 규례
13장 나병에 대한 규례 1
14장 나병에 대한 규례 2
15장 유출병에 대한 규례
4. 속죄를 위한 규례 16장 속죄일에 관한 규례
17장 화목제와 피에 관한 규례
제2부 성화 : 하나님과 교제하는 길
1. 백성의 성화 18장 성범죄에 대한 법규
19장 사회질서를 위한 법규
20장 가증스런 범죄에 대하여
2. 제사장의 성화 21장 제사장에 적합한 규례
22장 성물과 희생 제물에 대한 법규
3. 절기를 위한 법 23장 각종 절기에 관한 법규
24장 신성모독에 대한 형벌
4. 가나안에서의 율법 25장 안식년과 희년
26장 순종과 불순종에 관하여
5. 서원에 관한 법규 27장 서원에 대한 규례들
저자소개
책속에서
물건이 고발한다.
속건제와 속죄제는 죄의 대상과 종류에 따라 구분될 뿐, 사실상 같은 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속건제는 특별히 어떤 물건과 관련되는 경우에 필수적으로 드려야 하는 제사인데, 말하자면 그 물건을 중심으로 소유권에 대한 다툼 등 죄가 발생했을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물건으로 인하여 일어난 다툼이 사실은 사람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벌금과 원금과 손해배상금 등 형사와 민사 소송으로 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오늘날 상품에 바코드 등으로 식별이 가능하게 만든 것처럼 물건에 감각이 있거나 인격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물건이 하나님께 고발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물건이 스스로 고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물건에는 눈이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눈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눈으로 다 살피고 계십니다. 물건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대한 말, 혼자 중얼거림, 하나님께 드린 불평이나 원망, 거짓 맹세나 증언, 속임수 등 모든 것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반면에 똑같은 물건이라도 주인을 찾아주었다거나 누군가에게 나누어 준 일, 아무 대가 없이 선물한 일 등도 다 알고 계십니다. 언어로 누군가를 세워주고 위로하며 격려하거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 등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무형의 돈에도 눈이 달려있습니다. 물건이나 돈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고발합니다.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계 10:6)
적용하기 : 당신은 어떤 물건, 집, 교회건물 등에 대한 욕심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속건제를 드려야 한 조건이 됨을 알고 있었습니까?
환경의 피부병을 조심하라.
의복에 곰팡이가 피면 당연히 그 옷은 태우거나 빨거나 버려야 합니다. 당시에 의복은 오늘날처럼 쉽게 버릴 수 있는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복을 태워버리는 일은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이것을 제사장이 진단하여 폐기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하심으로써 죄 자체와 함께 환경까지도 정하게 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곰팡이에 오염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죄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죄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모든 것을 육신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그런 세상의 원리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곧 죄란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예수님의 대속하시는 흐름을 거슬리는 모든 사상과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 백성들은 때때로 의복에 오염된 것을 제사장이 진단하고 처리했지만,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입고 사는 옷 자체가 죄와 관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이 옷을 빨아야 하겠습니까?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씻어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영적으로 보면 오히려 이것이 실체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로 돌아가서 주님과 함께 다시 못 박히지 못하면 또다시 의복이 곰팡이에 노출될 것입니다. 곰팡이가 생긴 옷에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입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 아래로 가서 못 박히고 매달림으로써 환경의 청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적용하기 : 당신의 환경은 영적 청결을 유지하기에 적합합니까?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합니까?
광야로! 광야로!
앞 장에서 피부병에서 정하게 되었을 때 비둘기 두 마리를 드려 한 마리를 속죄제로 잡아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죽은 비둘기의 피를 일곱 번 뿌리고 들판으로 날려 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만 비둘기 두 마리는 개인의 정결예식에 사용한 것이고 본문의 염소는 대속죄일에 모든 백성들을 위하여 사용했다는 것이 차이점일 것입니다. 공동체의 정결을 위하여 염소 두 마리를 필요로 했고, 제비를 뽑아 속죄제물로 드릴 염소를 바치고 살아있는 염소에게는 안수하여 백성들의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고, 염소는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광야에까지 가지고 가서 놓아주라고 하셨습니다. 광야로 데리고 가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광야의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말도 있고 또는 야생동물의 먹이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어찌 되었든 아사셀 염소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단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마귀에게 패배하신 것이지만 그렇게 하셔야 우리의 죄가 씻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마귀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성막과 울타리로 보호되고 있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백성들의 현실과는 전혀 반대되는 곳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도 정결함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광야에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꼭 물리적으로 광야만 광야인 것은 아니고 심령의 광야, 마음의 광야, 영적인 광야, 목적의 광야 등 광야는 얼마든지 언제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속성은 지금도 자꾸 광야로 광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대속죄일을 정하여 아사셀 염소를 만들어 우리대신 광야로 보내는 것이 아닙니까? 매년마다 반복하여 아사셀 염소는 광야로 나갑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아사셀 염소이십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적용하기 : 당신은 자꾸 광야로 나가고 싶을 때 어떻게 합니까? 당신에게 있어서 아사셀 염소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