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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89787523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25-02-25
책 소개
목차
제1부 원시역사
1. 창조 이야기 1장 천지창조
2. 인간의 타락 2장 안식일, 에덴동산, 여자의 창조
3장 타락, 심판, 에덴에서의 추방
3. 죄 아래의 인간 4장 가인과 아벨
5장 아담의 족보
4. 심판의 과정 6장 넘치는 죄악, 홍수 예고, 방주 준비
7장 방주로 들어간 노아, 홍수 시작
8장 홍수 그침, 까마귀와 비둘기
5. 갱신과 새 백성 9장 무지개, 술 취한 노아, 가나안 저주
10장 노아의 족보
6. 바벨탑과 가나안 11장 바벨탑, 아브람의 등장
제2부 선택된 가족
1. 아브라함과 언약 12장 복의 근원 언약, 애굽으로 내려감
13장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지다.
14장 사로잡힌 롯을 구출하다.
15장 아브람의 칭의, 애굽 예고
16장 사라, 하갈, 이스마엘 이야기
17장 아브라함 개명(할례), 이삭 언약
18장 이삭 언약 확인, 열 명의 의인
19장 소돔성의 멸망과 롯의 가족
20장 아비멜렉에게서 사라를 구하심
2. 이삭과 시험 21장 이삭 출생, 이스마엘 추방
22장 모리아산의 제물, 믿음의 조상
23장 사라의 죽음
24장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25장 아브라함의 죽음, 야곱과 에서
26장 이삭이 판 세 우물
3. 야곱의 굴곡진 삶 27장 축복을 가로챈 야곱
28장 꿈에 사다리를 보고 서원
29장 야곱의 처가살이
30장 야곱의 자녀와 재산 축적
31장 라반과 언약을 세운 야곱
32장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
33장 에서와 다시 만난 야곱
34장 강간당한 디나와 세겜 족속 진멸
35장 벧엘로 돌아옴, 라헬과 이삭 죽음
36장 에서의 족보
4. 요셉을 인도하심 37장 꿈쟁이 요셉, 팔려간 요셉
38장 유다와 며느리 다말 이야기
39장 시위대장 집 총무에서 죄수로
40장 두 관원의 꿈 해몽과 2년의 고난
41장 바로의 꿈 해석과 총리가 된 요셉
42장 양식을 구하러 온 요셉의 형제들
43장 요셉과 베냐민의 만남
44장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
45장 형제들의 상봉
5. 애굽에서의 야곱 46장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
47장 바로를 만난 야곱
48장 에브라임과 므낫세
49장 열두 아들의 미래 예언
50장 야곱의 죽음, 요셉의 죽음
저자소개
책속에서
당신이 세상을 다스려라!
요한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끝까지 이긴 자들에게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스리는 권세란 무엇일까요? 왕좌에 앉아서 명령하고 가르치는 권한일까요? 다스림이란 일반적으로 통치하는 것을 뜻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섬김과 관리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꽃씨를 땅에 심고 그 꽃을 다스린다고 하면 그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씨를 심고 물을 주고 싹이 나면 잘 잘라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담으로 하여금 에덴을 돌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곧 아담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사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사명은 곧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비록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죄로 더럽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섭리의 관점에서는 아담에게 명하신 다스림의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원래 아담을 회복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씻어주시고 회복시켜주셨다면 우리의 사명도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고 곧 섬김과 돌봄인 것입니다. 많은 환경들 앞에 놓여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다스림의 본질과 원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적용하기 : 당신은 어떤 관점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다스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며 사람들을 변화시키겠습니까?
까마귀와 비둘기로 분별하라.
노아는 홍수가 그친 후에 땅이 말랐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까마귀와 비둘기를 사용하였습니다. 부정한 짐승의 대명사격인 까마귀는 죽은 짐승을 먹는 새이고, 정결한 짐승의 대명사격으로 제물로도 사용되는 비둘기는 곡식과 풀만 먹는 짐승입니다. 까마귀는 방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땅이 마를 때까지 공중으로 날아다녔고 비둘기는 물이 마르고 나무에 싹이 난 후에 스스로 사라져갔습니다. 그것으로써 노아는 방주에서 나가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지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을 분별하는 데에는 부정적인 짐승도 정결한 짐승도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성경말씀으로도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까마귀와 비둘기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부정한 짐승인 까마귀로써 죄나 악들을 분별하여 그 길을 가지 않아야 합니다. 죄와 악 뿐 아니라 재물, 부귀, 권력, 영광, 자랑과 같은 것들도 까마귀에 해당되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훼방하거나 미혹하는 모든 것들이 까마귀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둘기로 분별해야 합니다. 착한 일, 선한 일, 타인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 등 정결한 행위에 대해서 분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서는 안 되고 그 동기와 목적과 근원을 헤아리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는 것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작정 착한 행위에 끌려가게 되는데 사실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하기 : 당신은 세상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분별하고 있습니까? 혹시 정치적 견해, 선입견, 경험, 지식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까? 한번 까마귀와 비둘기로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에벨 온 자손의 조상
많은 이름들 중에는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셈을 소개할 때에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에벨이 믿음의 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히브리 민족이라고 부를 때 ‘히브리’의 어원이 아마도 ‘에벨’(Eber → Heber → Hebrew)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백성인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의 믿음도 에벨로부터 계승되어 내려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았지만 그 중에서 에벨은 믿음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셈 족속들 중에서도 경건하게 사는 모델과도 같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에벨의 자손’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에벨의 자손라고 통칭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조상 셈까지도 ‘에벨의 조상’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받았을 것입니다.
함과 가나안의 후예들과는 완전히 정 반대의 위치에 있었던 이름이 바로 에벨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에벨의 자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볼 때에는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예들이라고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벨의 후예라고 불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영적 히브리인으로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구약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구원의 성취의 개념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에벨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마치 노아나 아브라함처럼 당대에 의인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그런 육신적인 의미에서의 가문, 족보 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믿음의 자손들이 계승되어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이름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에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후예요 부르심 받고 구속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적용하기 : 에벨의 시대에는 교회와 같은 집합적인 종교행위가 없었습니다. 에벨의 삶과 일생을 통하여 믿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삶은 종교적입니까 신앙적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