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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img_thumb2/9791190147613.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90147613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21-05-28
책 소개
목차
저자의 말
1부 실록에서 찾아낸 역사의 진짜 주인공
정조가 17년간 사랑한 남자, 정약용
그는 어떻게 일등공신이 되었나, 원균
상소를 가장 많이 올린 벼슬살이의 달인, 정태화
새로운 왕조를 꿈꾼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
역신이 된 조선을 사랑한 스파이, 강홍립
북벌의 꿈에 숨겨진 명분은 무엇인가, 효종
2부 실록에서 찾아낸 싸움의 뒷이야기
독도 지킴이 안용복과 10인의용사
최종병기 활 편전, 무소의 뿔을 독점하라
조선의 운명을 건 왕실의 족보 전쟁
최강 사병집단, 이성계의 히든카드 가별초
민란은 생존을 위한 투쟁인가, 반역인가
3부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왕조의 유별난 제도
조선시대에도 논술 시험이 있었다
왕에게 돌직구를 던져야 하는 직업이 있다
사관, 바닥에 엎드려 역사를 기록하다
오직 독서를 위한 휴가가 있었다
진짜 양반과 가짜 양반을 구별하는 법
재테크에 눈뜬 노비, 재벌 노비의 탄생
4부 실록에서 찾아낸 우리가 몰랐던 조선
위대한 군주, 그러나 슬픈 아버지
사약은 형벌인가, 임금의 은혜인가
과거시험장의 다양한 부정행위
왕자는 누구의 젖을 먹고 자랐는가
권력 유지를 위한 영조의 장수 비결
담배 피울 것인가, 끊을 것인가
한양 거리에 나타난 이야기꾼 전기수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간원은 조선 시대 관료 중 가장 자유분방한 근무 형태를 보여줬는데 업무의 시작은 사헌부와 비슷했지만 업무가 끝나면 아란배鵝卵杯란 술잔을 챙겨 들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근무 모습은 더 가관이었는데 근무 중에 후원에 나가 옷을 벗고 드러눕기도 하고, 집무실 바닥이 싸늘하다고 사간원을 거쳐 간 선배 관원들의 이력부인 선생안先生案을 방석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사간원은 왜 이런 특별대우를 받았던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은 왕에게 직간直諫을 올리는 간신이었기 때문이다. 열 명도 채 안 되는 사간원 관원들은 목숨을 내놓고 임금에게 충간忠諫을 하는 것이 그들의 직무였다. 어지간한 배포가 아니라면 왕에게 바른말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잘못 말했다간 언제 목이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들은 관원을 뽑을 때도 신중했고, 한번 뽑은 관료라면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교육을 했다.
왕자의 유모로 뽑혔다는 것은 젖을 생산할 수 있는 상태, 즉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산모여야 했다. 유모는 자기 자식에게 가야 할 젖을 왕자에게 먹였던 것인데 실제로 그 때문에 자식을 굶겨 죽인 경우도 있을 정도니 엄마로서는 못할 짓이었다. 그런데도 유모가 되겠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유모 선발에 덤벼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인생역전을 위한 로또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보다 유모의 손을 더 탔던 왕실의 아이들에게 유모는 인간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젖을 물려 키운 왕자가 왕이 되는 순간, 이들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보통 내수사 노비 출신이 많았는데 이들이 순식간에 봉보부인(奉保夫人, 임금의 유모에게 내려주던 봉작으로 종1품이었다)이 된다. 이는 왕비의 엄마, 즉 왕에게는 장모가 되는 부부인府夫人보다 한 등급 아래이고, 외명부 최고 품계인 정경부인貞敬夫人과는 같은 수준이었다.
임금은 기본적으로 하루 다섯 끼를 먹었지만, 영조는 세 끼면 족해했다. 그마저도 육류가 아니라 채소 위주였다. 단백질은 주로 어류를 통해 섭취하였다. 영조가 현미나 잡곡을 섞은 밥을 먹었다는 것도 주목해서 봐야 한다(당시 왕들은 백미를 먹었다). 현미에는 비타민 B, 이노시톨, 가바 등이 함유되어 있어 당뇨나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 특효약이라 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끼니를 챙겼다는 점이다. 신하들과 회의나 토론을 하던 중이라도 식사시간만 되면 잠시 중단하고 혼자 식사를 했고, 신하들은 영조가 수저를 내려놓을 때까지 그냥 기다렸다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당연히 신하들은 배가 고픈 상황이어서 영조의 의도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고, 그는 이를 십분 활용해 자기 뜻대로 회의를 진행해 신하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