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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0301367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5-08-1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천년사찰 숲길 걸으며 아나빠나사띠! 12
1장. 싱숭생숭한 봄날에 명상하기 좋은 천년사찰 숲길
01 고양 흥국사, 숲 명상길 19
02 서산 보원사, 마애삼존불길 30
03 의정부 망월사, 깨달음의 숲길 38
04 남양주 봉선사, 사색의 숲길 49
05 강진 백련사, 동백숲길 58
2장. 녹음 짙은 여름에 힐링하기 좋은 천년사찰 숲길
01 송광사 불일암, 무소유길 72
02 강화 정수사, 함허 대사길 82
03 부여 무량사, 설잠스님길 92
04 대구 파계사, 노송(老松)길 102
05 공주 마곡사, 백범 명상길 113
06 김천 직지사, 직지숲길 122
07 안동 봉정사, 극락숲길 132
3장. 비우고 채우기에 좋은 가을 천년사찰 숲길
01 정읍 내장사, 비자나무 숲길 144
02 고창 선운사, 꽃무릇길 156
03 영주 부석사, 선묘길 164
04 의성 고운사, 최치원길 174
4장. 찬 겨울에 마음 힐링하기 좋은 천년사찰 숲길
01 상주 남장사, 석장승 숲길 186
02 강화 전등사, 삼랑성길 걷기 194
03 여주 신륵사, 나옹선사 숲길 206
04 평창 오대산, 선재길 214
05 여수 향일암, 거북바위 숲길 224
06 양평 용문사, 우국의 숲길 233
에필로그; 숲·명상으로 치유와 위안 얻으시길… 24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조문(弔文)한 ‘시대의 방랑자’가 머물렀던 만수산 무량사에 든다. 불볕더위 날씨에도 만수산의 깊은 숲은 더위를 품어 열기를 식혀준다. 계곡은 오랜 가뭄으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외기둥 2개가 오래된 기와를 이고 있는 일주문 너머로 수백 년 넘은 느티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무량사로 들어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사찰의 역사를 말해주는 사적비와 공덕비가 늘어서듯 서 있고 사찰이 배려해 준 듯한 휴식처인 정자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들면 천왕문이 눈썹과 마주친다. 계단을 오르면 천왕문 너머에 석등과 5층석탑, 2층 규모의 극락전이 액자에 들어차 있는 듯이 눈에 쏙 들어온다. 무량사의 풍경은 전국에 사진 찍는 작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늦여름 평일임에도 사진을 찍는 작가들의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종각 옆에 서 있는 느티나무와 소나무의 늘어짐이 석탑과 5층석탑, 극락전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한여름 내린 비로 자란 이름 모를 대형 버섯도 느티나무 아랫둥치에서 자기 멋을 더하며 자라나 있다.
- 03 부여 무량사, 설잠 스님 길
비단 황학루를 비뚜름하게 지은 것만 아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전각은 천년고찰이 지어질 때의 모습을 최대한 복원하고 살리는 방향으로 지어졌다. 그 길에 서 있는 나무는 최대한 살려놓았다. 건물은 낡아 허물어져 보수하고 복원된 흔적이 보인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나무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아름드리 고목이 되어 천년고찰 천년 숲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풍광은 세월이 담보되지 않고는 연출될 수 없는 모습이다.
잘 가꾸어진 직지숲길의 남다른 특징은 물길이다. 숲길이 나 있는 사이사이에 물길이 나 있다. 계곡에서 물을 끌어들여 사찰 경내 곳곳으로 흐르게 했다. 특별한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평지에 세워진 사찰에 물길이 있으면 조경학적으로 멋이 있을 게 분명하다. 여기에 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은 말하지 않아도 알 법하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경내의 물길은 요즘 같은 계절에도 더위를식혀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경내 곳곳에 서 있는 노거수도 주목할만하다. 매표소 입구에 나 있는 오솔길의 전나무와 소나무, 벚나무는 천년고찰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또 일주문을 지나 부도전 옆에 우뚝 서 있는 갈참나무의 수령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몇백 년은 됨 직한 갈참나무는 성인이 안아도 몇 아름은 된다. 그 나무에 은근히 기대어 속삭여 본다.
“아름드리 갈참나무야! 내 마음이 바로 보이니?”
- 06 김천 직지사 직지 숲길 중에서
용문사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의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라고 하여 천왕목이라고도 불렸으며, 조선 세종 때에는 정3품 이상에 해당하는 벼슬인 당상 직첩을 하사받기도 했다. 정미년(1907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는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으나 이 나무만은 화를 면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는 순간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천둥이 쳤다고 한다. 또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는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으며,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용문사는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었을 때 분연히 일어난 ‘양평 의병’의 근원지였다. 당시 일제는 대한제국의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키며 국권을 찬탈하려 했다. 이러한 시기에 양평 의병은 대일항전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양평 의병은 용문산 용문사를 비롯해 상원사와 사나사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06 양평 용문사, 우국의 숲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