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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0458597
· 쪽수 : 184쪽
· 출판일 : 2025-02-23
책 소개
목차
*序文
1부_ 진성이씨 노송정 종가
1. 노송정 종가 개창
_진성이씨 온혜파조 노송정 이계양 공 14
_선조의 권학 환경 조성과 해동 대현의 탄생 20
2. 노송정의 가계도 33
3. 노송정의 유산
_노송정 38
_수곡재사, 고산재사 47
_국망봉 50
_노송정 각소 52
2부_ 삶의 고비에서 배운 것들
1. 학창 시절 58
2. 베트남전 파병 64
3. 교사 시절 67
4. 대학교수 시절 69
5. 종손으로서의 삶 72
3부_ 소중한 나의 가족
1. 나의 아내 78
2. 나의 두 아들 83
4부_ 전통을 이어가다
1. 문중을 위하여 추진한 일
_노송정 종택 개·보수 108
_산소 정비 사업 116
_요산정 이건 119
_수곡재사 중건 121
_국가문화재 지정 130
_노송정 도감록 편찬 137
_그 외 문중을 위해 한 일들 140
2. 가양주를 계승하다 142
5부_ 전통을 알리다
1. EBS 한국기행(2015년)
<어린 종손의 눈에 비친 불천위 제사> 148
2. KBS 다큐공감(2017년)
<노송정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152
3. TBC 고택음악회(2014년)
<전통과 현대의 만남> 156
6부_ 80년의 삶, 그리고 남은 길
1. 지인들의 축하 162
2. 동생들의 편지 173
3. 지난 세월의 회고와 감사 176
4. 앞으로의 다짐과 남기고 싶은 말 178
*後記
저자소개
책속에서
<노송정 종가 개창> 중에서
퇴계 선생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헌신적인 어머니의 가르침 아래 성장하며 학문적 열정을 키웠습니다. 어머니는 “학문은 도덕적 수양의 수단이며, 사람의 본성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라는 가르침으로 선생의 학문적 방향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선생은 6세에 천자문(千字文)을 배우며 비범한 학문적 재능을 보였고, 아침마다 전날 배운 내용을 공손히 복습하며 가르침을 받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유년기의 경험과 가정교육은 선생의 도덕적 철학과 성품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퇴계 선생은 성균관에 입학하기 전까지, 노송정과 용수사에서 형들과 함께 학문에 매진하였습니다.
성균관에서의 수학은 선생의 철학적 토대를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성리학의 이치를 깊이 탐구하며 자신의 학문적 세계를 확립하였습니다. 선생의 학문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도덕적 삶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실천적 성격을 띠었습니다. 특히, 이(理)와 기(氣)의 상호작용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으로 조선 성리학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습니다.
퇴계 선생은 관직에 진출하여 다양한 행정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언제나 학문과 도덕적 실천을 우선시하였습니다. 높은 관직 제안을 수차례 받았음에도 청렴과 소박함을 유지하며, 48세에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습니다. 고향에서 제자 양성에 힘쓰며 조선 학문과 정치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배출하였습니다.
퇴계 선생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유산 중 하나는, ‘도산서원(陶山書院)’입니다. 도산서원은 선생께서 후학을 양성하고 자신의 철학을 실천한 공간으로, 한국 교육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학문적 토론을 나누며 삶의 도리를 탐구하였습니다. 또한, 선생의 저서 <성학십도(聖學十圖)>는 조선 성리학의 핵심 텍스트로, 인간의 도덕적 완성과 사회적 조화를 위한 학문의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퇴계 선생의 철학은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실천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의 핵심을 이루며, 선생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와 교육에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노송정의 유산> 중에서
노송정(老松亭)
노송정은, 정면 7칸, 측면 6칸의 ㅁ자형 안채와 별도의 건물인 사랑채 ‘노송정’, 그리고 사당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노송정은 단순한 고택을 넘어 학문과 전통을 이어가는 공간으로, 진성이씨 온혜파 가문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노송정의 정문은 ‘성림문(聖臨門)’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인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선생이 지은 이름으로 유명합니다. 이 문은 단순한 출입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춘천박씨 부인께서 퇴계를 회임(懷妊)하셨을 때, 성인이 제자들과 함께 대문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학봉 김성일 선생이 ‘성인이 들어온 문’이라는 뜻으로, ‘성림문’이라 하였으며, 태중 교육의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
<종손으로서의 삶> 중에서
일반 가정에서는 4대 봉제사(奉祭祀)를 모시는데, 노송정의 경우, 불천위(不遷位) 제사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6대에 걸친 제사를 지내야 했기에, 모두 13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차려지는 제사상도 일반 가정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제사 형식과 전통에 맞게 차려지는 음식의 종류도 많아 자연스럽게 음식 하나하나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정성과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불천위 제사의 경우는 모이는 자손들의 숫자부터 여타 기제사와 달라서 준비 과정이나 수고로움, 그리고 준비되는 음식의 양도 훨씬 많습니다.
‘불천위(不遷位)’라는 말은, “위패를 옮기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주(神主)를 사당(祠堂)에 영구히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노송정 고비위(考?位)를 모시는 우리 진성이씨 가문의 제사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