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526005
· 쪽수 : 230쪽
책 소개
목차
살계(殺鷄)
초록야차의 환시(幻視)
범잡이
천왕봉
붕괴
환희동의 5월
황홀한 젊음
해우(解憂)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철이 닭의 목에 칼을 댔다.
순간, 몸속에서 취기와는 다른 기이한 열기가 솟았다. 닭목의 중간을 겨냥하고 도끼질하듯 내리쳤다. 삼 분의 일쯤 잘렸을까,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철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내리치는 두 번째 칼에 목이 떨어져 나갔다. 순간, 다리를 휘저으며 몸을 일으키려는 듯 닭이 꿈틀거렸고 목에서 뿜어지는 피가 붉은 리본처럼 허공에 너울거렸다. -「살계(殺鷄)」
한 시간 반. 휘발유가 소진되고 시동이 꺼졌다.
온몸뚱이가 왕달맞이꽃, 명아주, 벌개미취, 쑥, 바래기, 억새의 육편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역하고 진한 초향은 어느새 쪽빛 핏내로 내 시각과 후각을 점령했다. 보안경을 벗었다. 희뿌옇게 빛나던 사위는 초록색 안개로 가득했고 희뿜한 햇살 자리만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이후, 나는 청무에 갇혀 방위를 잃을 때까지 두 시간 더 예초기를 돌렸다. 얼룩무늬 작업복이 검푸른색으로 젖었고 소금꽃이 피기 시작했다.
하루 반나절 동안 나는 초록색 야차가 되었다. -「초록야차의 환시(幻視)」
어렴풋이 잡히던 하늘이 정상에서 빗장을 열었다.
청명하기 그지없는 날이다.
뛸 때 뛰더라도 시야에 들이치는 장관을 밀어낼 필요는 없다.
지리산은 땅에서 가을을 빨아 하늘로 내뿜고 있었다.
여기가 남쪽이겠구나. 저게 덕산인가? 이쪽은 산줄기, 발아래 산맥들이 굽이치고 있다. 낮은 구름 한 무리가 부유하고 있다. 해발 1915미터. -「천왕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