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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526203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20-08-31
책 소개
목차
미리내, 그곳에 갔었다
남편의 집
고리
향기가 있는 집
무허가 컨테이너 집
남편이 있는 집&없는 집
김준수 기사, 그의 위대한 배반
해설
한상윤의 「무허가 컨테이너 집」과 문제적 개인 / 오양호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쭈나는 역시 신비주의자였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비밀이었다. 비밀 빼면 시체였다. 이것도 쭈나의 마지막 부탁이려니 싶어 집에 돌아와 골방에서 비밀스럽게 개봉했다. 맙소사. 내 심장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때 절감했다. 조막만 한 살 뭉치는 더운 피를 순환시키느라고 무리했다. 나의 존재 의미는 쭈나의 편지 따위에 자극받지 않는 일이라고 훈수를 두었지만 헐거운 너트처럼 제멋대로 놀았다. 괘씸한 노릇이었다.
<소설 ‘호반의 장’은 내가 최초로 사랑에 눈뜬 나의 기록이야. 주인공 청년은 너와 내가 잘 알고 있는 실제 인물(너의 막내 오빠 친구), 나는 그에게서 사랑을 배웠어. 소설에서 청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허구를 이제야 고백하게 된 나의 슬픔을 이해 해 주기를…. 쭈나가.> (「미리내, 그곳에 갔었다」)
은제의 푸서리 맞은 듯 흐느적거리는 육신은 끝내 의지를 따라 주지 않는다. 자존심이 상한다. 첩 시어머니의 용떡처럼 둥글둥글 하얀 얼굴, 시동생 명기의 헌걸찬 허위대, 울보 어린 막내 시누이의 노리끼리한 얼굴, 시아버지 이세중의 눈썹 짙은 얼굴…. 도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노비 정심의 근심 어린 표정이 보일 듯 말 듯 하는데 따스하고 부드러운 혀가 뺨을 핥았다. 포근한 깃털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은제는 분신 같은 존재 삽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당겨 안고 싶지만 그조차도 은제의 의지를 따라주지 않는다. 어둠과 추위와 눈보라와 짐승처럼 울부짖는 바람 소리에 온전히 자유롭게 내동댕이 처졌다. (「남편의 집」)
“어디 가시게요?”
“미꾸라지 한 사발 사서 방생 할란다.”
나는 고리 만들던 비닐 끈을 든 채 늙은 나무뿌리와 돌무더기와 낭창거리는 나뭇가지를 피해서 주춤주춤 기슭을 내려가는 시어머니를 우두망찰 바라보았다. 처마 끝에 매달린 연꽃등이 샛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그늘이 해를 따라 자리를 옮겼으므로 태호의 승용차는 햇살 속에 방개처럼 엎드려 있었다. 시어머니가 징검돌을 디디며 내를 건넜다.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