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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90526302
· 쪽수 : 556쪽
· 출판일 : 2021-02-22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프롤로그
1부, 천왕봉을 바라보다 · 15
2부, 두류산에 눈이 내리다 · 149
3부, 얼어붙은 덕천강 · 259
4부, 광풍이 몰아치다 · 353
5부, 들불 · 461
에필로그
해설 _1862년, 그 해 임술년 / 이병렬 · 533
일러두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머니의 꺽진 넋두리가 날실처럼 베틀방에서 새어 나왔다. 땅뙈기 한 평 없는 양반집에 시집와 애옥살이로 오 남매를 키웠으니 지칠만했다. 유계춘은 베틀방을 힐끗 보았다. 베릉빡(바람벽)에 삐져나온 지푸라기가 거년스럽다. 광 옆 자투리땅에 대쪽을 엮어 진흙을 발라 까대기를 지었다. 지금이야 동짓달이라 추위에 견딜 만해도 덕천강이 새파랗게 얼어붙으면, 안채야 남향이라 그나마 따뜻해도 모로 앉은 베틀방까지 햇볕이 들 리 없어 어머니도 겨울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박수익의 밭에 보리가 된서리를 맞았는지 시퍼렇다. 서릿발 때문인지 논바닥이 버름했다. 밟아주지 않으면 내년 보리농사도 글러 보였다. ‘보리는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라며 서안을 물리며 아전들의 갓걸이 놀음을 비아냥거리던 아버지가 설핏했다. 어렸을 때여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지금에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죄다 도망가고 마을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기껏해야 격쟁이니 산호 따위밖에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망궐례 때 격쟁이라도 하려면,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목사나 우병사 앞까지 나아가기도 어려워 유계춘은 철시를 염두에 두었다.
내평들을 지나 덕천강을 건넜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한낮 햇볕 때문인지 숙숙하게 들렸다. 밤새 내린 눈으로 내평들은 하얗게 햇살을 산란시켰다. 찔레 넝쿨에서 영실을 쪼아 먹으려던 참새 떼가 미륵산으로 날아올랐다. 덕천강 강변에 모래밭을 개간한 땅에 목화 대가 앙상하게 남아 지난해 소출을 가늠하게 했다. 지난여름은 가뭄과 폭우가 번갈아 오는 바람에 목화 수확이 줄어 오승포는 고사하고 이승포 공납도 어려울 거라고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집집이 두 냥씩 추가하면 되겠지만, 도결이니 통환이니 소문도 무성해 함부로 나서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수년간 군포 공납이 지체되어 더는 미뤄달랄 수도 없었다. 목화 수확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댔다가 인징이니 족징이니 마을이 또다시 시끄러워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