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92828657
· 쪽수 : 444쪽
· 출판일 : 2024-10-04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부 · 유학사 / 9
2부 · 충주성 방호별감 / 83
3부 · 충주성 / 167
4부 · 중원의 바람 / 231
5부 · 국원경
에필로그
일러두기
감사의 말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금대의 짧은 대답은 단단했다. 김윤후는 혜심 스승님이 오래전 말씀을 더듬었다. 영소월광검은 고려 어느 사찰에 있는데,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신라와 후백제를 무너뜨리고, 태조대왕이 고려를 건국할 때 세상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 뒤로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국난이 닥치면 세상에 나타날 거라며 조계산 멧부리에 걸린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혜심 스승님의 처연한 모습이 떠올랐다. 백성들이 얼마나 전쟁에 시달렸으면 대장장이들조차 영소월광검이 나타나기를 기다릴까. 김윤후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중 같지도 않은 중으로 사는 게 안타까웠을 것이다. 만우는 중도 노비도 아니었다. 사찰 뒷일 치다꺼리로 힘이나 쓰다가 죽으면 그뿐인데, 수원승 따위에게 불심을 논하다니 가당찮은 말이었다. 만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렵고 힘들 때 내 말을 기억하거라.”
혜심은 만우의 수원승 신세를 물은 게 아니었다.
“예, 스승님.”
만우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나오고 들어감이 넉넉하더라도,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않는 하나의 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直饒出入俱備 更須知有不出不入底一路 且道 作麽生是那一路)
만우는 그 하나의 길을 알 수 없었다.
혜심은 만우를 힐끗 보았다. 가슴에 한이 다닥다닥 응어리져, 부처님의 자비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마음이 아팠다.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티끌조차 움직이지 못하고 달빛이 바다를 뚫어도 물결에는 흔적도 남지 않는단다.”(良久云竹影掃堦 麀不動 月光穿海浪無痕)
만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체 높은 사람들의 몫이지 수원승 따위가 알 바 아니었다.
몽골군이 금당계곡으로 지나갈 리 없었다. 방호별감의 뜬금없는 명령이었다. 유학사에서 4년 동안 귀양살이한 방호별감이 충주 지리는커녕 세상 물정을 제대로 알 리 없었다. 백성들이 한꺼번에 성으로 몰려들어 병참 일도 버거운데, 금당계곡에 매복하라는 방호별감 명령은 병서조차 읽지 않은 말단 장수 창정이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명령이었다.
금당계곡은 깊고 가파른 외길이라 적 병사들이 한꺼번에 이동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금당사 고갯길은 마주 오는 사람을 겨우 비껴갈 만큼 좁은 길이었다. 설혹 몽골군이 침투하더라도 금당사 수원승 여남은 명만 매복하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어 굳이 충주성 병사까지 동원해 매복할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충주 지리에 무지한 몽골군이 청풍강 뱃길과 달래 들판을 놔두고, 위험을 무릅쓰고 병사들을 굳이 금당계곡으로 몰아넣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