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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0631174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0-12-2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외국 비지니스라는 긴 여정 | 6
--- 가슴에 꿈을 안고
모스크바야, 내가 왔다 | 10
네 개의 가방 | 16
몸으로 익힌 통관 노하우 | 22
김치의 위력1 | 31
김치의 위력2 | 34
신종 인플루엔자 | 39
앞으로 약 40분후 | 44
미녀천국 | 51
--- 광활한 대지, 러시아
칼 | 60
러시아에서 안 되는 일이란 없다 | 67
러시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 73
실크로드 | 82
외국인은 봉이다 | 87
생명의 위협 | 93
--- 낯선 풍경, 낯선 문화
무서운 사람들 | 98
정말 일 보기 힘드네 | 101
의사의 철가방 | 105
야반도주 | 111
엠마와 따마라 | 115
해적이 왜 나쁜 건가요? | 120
보드카 | 124
타쉬켄트의 개갈비 수육 | 130
양의 눈알을 먹다 | 133
사랑스러운 독수리 IL-76 | 138
13인승 비행기 | 143
--- 칼과 악수
어이없는 죽음 | 150
이노겐치 | 156
항로 변경 | 160
진정한 보복 | 164
쉬운 일이란 없다 | 174
카자흐스탄 구형 비행기 | 180
--- 회고와 새로운 도전
저녁주의보, 휴일경계령 | 188
건강한 육체가 건강한 회사를 | 193
중국 첫 출장 | 198
워 야오 빠이주 | 204
마오타이 4병 | 209
중국 한인타운, 마사지 | 217
저자소개
책속에서
러시아에 온 지 보름 정도 지났을 때쯤, 물건이 잘 판매가 안 되어 지쳐 있던 그 분은 나에게 사무실에 있는 물건 한 개만이라도 팔 수 있냐고 농담을 했다. 그러나 그 말은 나에게 큰 자극이었고 자존심 문제였다. 나는 사무실 창고에 있는 여성용 화장솔 박스를 들고 나와서 고려인 여직원에게 판매가를 떠듬떠듬 물어보았다. 한 세트에 3천 루블, 두 세트에는 5천 루블(삐아찌 띄쉬챠)이라고 하면서 박스 겉에다가 ‘한 세트 3천 루블(뜨리 띄쉬챠)’라고 적어주었다. 그러나 두 세트에 5천 루블(삐아찌 띄쉬챠)이라고는 적지 않았다.
나는 그 박스를 들고 걸어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어느 역에 큰 시장이 있는지 알 수도 없었고 러시아 돈도 전혀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전철역 주위를 보니 간이시장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와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보니 시장 가판을 여러 개 만들어서 옷, 신발, 휴지, 설탕, 치즈 등을 구분 없이 팔고 있었다. 그 가판 옆에서 판매해볼까 생각해 봤지만 시선이 좋지 않을 것 같아 무조건 가판 주인에게 아무 말 없이 화장솔 한 세트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그 옆에 있는 가게 주인이 내 손을 잡으며 떠들어댔다. 가만 들어보니 한 세트에 얼마인지 물어보는 것 같아 박스에 적힌 가격을 손으로 가리켰다. 상인은 그 자리에서 3천 루블을 주었고 그 옆 가판 주인이 다시 내 손을 잡고 뭐라고 외쳤다.
가전제품, 특히 전기밥솥은 러시아는 있지도 않거니와 전압이 달라 휴즈가 자주 망가져서 이것도 무조건 한국에서 가지고 와야 한다고 했다. 식품은 대개 라면과 김치, 건어물 등인데 한국사람 체질은 매운 것을 못 먹으면 감기가 자주 걸려서 모스크바에서 버틸 수가 없다고 변명해 댔다.
그런 식으로 고비를 넘기고 있다가 세관원이 박스 하나를 더 개봉했는데 칼로 박스를 개봉하다가 그만 김치 포장을 건드렸다. 운송 중에 생긴 공기 팽창으로 김치 포장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는데 칼이 닿는 순간 퍽 하고 터지면서 김치 국물이 세관원 얼굴로 튀었다.
세관원은 놀라서 난리가 났고 주위 사람들은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멀리 달아나는 상황이 되었다. 세관원이 김치 국물을 뒤집어쓰고 자리를 비우니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나에게 계속 짜증을 내고, 나는 한 시간 가까이 정말 바보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이 사태를 어쩐다…….
얼굴에 튄 김치 국물은 한 시간을 닦아도 소용이 없었나 보다. 세관원은 새빨간 얼굴로 다시 오더니 진저리를 쳤다.
“빨리 덮어라! 그리고 이런 것 또 있냐?”
“나머지 30%는 그렇다. 또 보여줘야 하나?”
“여기 서류 있으니 빨리 가지고 나가라.”
그러면서 통관 승인 도장을 ‘꽝!’하고 찍어 주었다. 그 승인 내용이 정말 기가 막혔다.
‘모두 원조품이고 누가 구입할 사람이 없어 판매가 불가능. 무상처리 요망’
난 그날 세금 한 품 안 내고 통관을 했다.
공항장이 연설을 끝마치고 나를 불렀다. 서울에서 귀한 보스가 와서 이렇게 만찬을 열었으며 축하드린다고 하더니 삶은 양 머리의 눈을 꼬챙이로 꾹 찔러서 나에게 줬다. 이 나라 관습에 양의 눈을 보스가 먹고 잘 보고 다스리라는 좋은 뜻이 있다고 말하면서……. 30명이 다 나만 보고 있었다. 밖에서 보는 양의 눈과 꺼내서 보는 양의 눈 크기는 정말 달랐다.
이걸 정말 먹어야 하나? 도저히 그냥은 못 먹을 것 같고, 보드카 두 잔을 들이마시고 입에 확 집어넣었다. 뭐라 표현을 할까……. 동태찌개에서 동태의 눈을 먹었을 때와 맛은 비슷했지만 워낙 커서 끔찍했다. 대충 씹지 않고 삼켜버렸다.
내가 양 눈알을 먹는 것과 동시에 모두가 보드카 건배를 했고, 공항장은 이어서 양 머리에서 이것저것을 잘라냈다.
“선생님 나오세요! 여기 혀를 먹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세요!”
“학생 나와라! 여기 귀를 먹고 잘 듣고 배워라.”
먹는 부분마다 다 뜻이 있고 먹을 때마다 보드카 잔이 높여졌다. 30명 대부분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