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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90946292
· 쪽수 : 452쪽
· 출판일 : 2023-09-12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1부
뿌리 찾기 | 천재 소년 응규 | 영남루에 맺은 사랑 |
사랑이 만들어 낸 다리, 승교(僧橋)와 처자교(處子橋) | 사랑의 흔적을 찾아서 | 바라만 보는 사랑 |
아랑의 죽음 | 응규의 선택 | 사명대사와 아랑의 전설 | 호신불 | 미옥의 결혼 | 승과시험 합격 |
빈의 탄생 | 사명의 귀향(歸鄕) | 허균과 사명대사의 첫 만남 | 율곡 이이와 사명대사 |
사명과 허난설헌의 만남 | 사랑의 고통 | 빈을 사랑한 남자 | 허봉과 허난설헌의 죽음 |
정여립 역모사건과 사명대사 | 허균의 구명운동 | 1591년 일본, 이에야스의 고민 | 손현과 빈의 약혼 |
작원관(鵲院關) 전투 |
2부
칼을 품고 슬퍼하다(抱劒悲) | 히데요시의 착각 | 사명대사의 평양성 전투 | 빈을 찾아 헤매는 손현 |
평양성 탈환 이후, 이여송과 사명대사 | 세월이 상처를 아물게 하다 | 배가 부족하다 |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의 파견 | 벽제관 전투의 패배 | 강화협상의 시작 | 엇갈린 운명 |
2차 진주성 전투 | 일본에 끌려온 미옥과 빈 | 4년간의 휴전, 그리고 강화조약에서 배제된 조선 |
고향을 그리워하는 미옥과 빈 | 히데요시의 선택 | 허균의 방문 |
1594년 4월, 사명과 가토 기요마사의 1차 회담 | 두 영웅 |
사명과 가토 기요마사의 2차 회담과 설보화상(說寶和尙) | 사명대사의 토적보민사소(討賊保民事疏) |
일본에 알려진 설보화상의 전설 | 히데요시의 고뇌 | 1594년, 이에야스와 히데요시 | 미옥과 오긴 |
1595년 7월, 조카를 죽여라, 간파쿠 히데쓰구의 처형 | 1596년 6월, 가토 기요마사의 소환 |
1596년, 조선 의병장의 수난과 반란 | 1596년 9월, 명나라 사신이 히데요시를 만나다 |
손현이 사명을 찾아오다 | 고니시 유키나가의 복수와 이순신의 운명 | 이에야스의 고민 |
조선의 선제공격 | 이에야스와 미옥의 만남 | 정유재란의 시작 | 비격진천뢰 | 손현의 칠천량 전투 |
천안 직산(稷山) 전투 | 1598년, 울산성 가토 기요마사의 위기 | 히데타다와 빈의 만남 |
1598년 8월, 히데요시의 죽음 | 히데요시의 죽음을 비밀로 하라 | 살아남기 위한 철수 전쟁 |
조선인 포로의 탈출과 히데타다의 도움 |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운명 | 세키가하라 전투 |
고니시 유키나가의 죽음 | 빈과 히데타다의 사랑, 그리고 번민 |
3부
탐적사(探敵使) | 사명과 강항(姜沆)의 만남 | 히데타다와 빈의 결혼 | 전별시(餞別詩) |
일본으로 떠나는 사명 | 빈의 아들이 태어나다 | 설보화상이 일본으로 오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사명의 분노 |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 조선인 포로와의 만남 |
사명과 후지와라 세이카와의 만남 |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만남 |
사명의 소식을 듣고 놀라는 미옥과 빈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속마음을 털어놓다 |
히데타다, 에도에서 교토로 들어서다 | 사명과 이에야스의 마지막 만남 | 왜덕산(倭德山) |
사명과 히데타다의 만남 | 빈의 고민, 그리고 히데타다 | 일본에서 만난 사명과 미옥 |
손현의 고뇌 | 눈물의 재회 | 마지막 만남, 그리고 영원한 이별 | 미옥과 빈의 이별 |
세월은 상처를 안고 흐른다 | 사명대사의 십자가 | 사명의 귀환 | 사명의 망향가(望鄉歌) |
사명의 죽음 |
에필로그
허균의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慈通弘濟尊者四溟大師石藏碑) |
흔적들 |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정여립 역모사건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일 년 전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이때 이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정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 동안 조선은 내부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으로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자멸의 길을 가고 있었다. 서로의 이익만 좇는 당파싸움과 권력투쟁으로 이미 조선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명은 칼을 들기까지 수많은 번민과 고뇌에 휩싸였다. 무고한 백성들이 왜군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것을 보고 부처님 앞에서 기도했다. ‘부처님! 부처님은 살생을 금하셨지만 무고한 중생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만 볼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의 살생을 막기 위해서 저는 칼을 들어야겠습니다.’
노원평 전투는 한양 사수를 위한 왜군과 승군의 싸움으로, 이 전투에서 사명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행주대첩과 함께 명나라 군대 없이 승리한 싸움으로, 특히 노원평 전투는 사명의 승군이 왜군을 섬멸해 한양 수복의 전초기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전투였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유학자들에 의해 역사에서 묻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