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큰글자책] 규슈에서 일주일을](/img_thumb2/9791191192681.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일본여행 > 일본여행 에세이
· ISBN : 9791191192681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2-08-17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첫째 날-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윤동주- 후쿠오카 현)
둘째 날- 신이 된 사나이(이삼평- 사가 현)
셋째 날- 슬픔을 삼키다(군함도- 나가사키 현)
넷째 날- 난공불락을 꿈꾸다(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현)
다섯째 날- 미야마 느린 산책(미야마마을- 가고시마 현)
여섯째 날- 되살아난 왕의 전설(남향촌- 미야자키 현)
일곱째 날- 히메시마, 그녀를 만나다(히메시마 섬- 오이타 현)
에필로그- 다시 제자리에 서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공원에는 벤치가 서너 개, 미끄럼틀과 놀이기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윤동주와 관련된 어떤 것도 없다. 미끄럼틀 뒤에는 철망으로 담이 쳐져 있고 그 너머가 후쿠오카 구치소이다. 여기서 매년 2월마다 담장을 마주하고 20년째 추도식이 열린다.
천천히 공원을 가로질러 그 자리에 서 보았다. 가슴이 무겁게 뛴다. 추도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오고 싶었는데 이제야 와서 이 자리에 섰다. 세찬 비 때문에 바닥에는 금방 물웅덩이가 생겼다. 내 마음에도 슬픔이 고인다. 텅 빈 공원에 서서 뜨겁게 그를 추모한다.
이마리에는 행복을 부르는 세 개의 다리가 있다. 모두 한눈에 들어오는 거리에 있다. 부부나 연인이 함께 건너면 사이가 좋아진다고 하는 상생교를 지나, 건강을 기원하면서 걸으면 장수한다는 연명교―다리 이름이 구구하지만 오래 산다니 건너고 싶어졌다―를 걷고 평생 행복해진다는 행복교를 건넜다. 나는 오늘 ‘평생 사이좋게 행복하게 오래 사는’ 티켓을 거머쥔 셈이다. 15분 산책이 주는 즐거움, 여행자에게 건네는 위안이다.
조선의 도공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버려진 벽돌을 깨고 적토를 이겨서 습관처럼 담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담장 위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흙이 주는 온기가 느껴진다. 나는 지금 무엇이 그리운 걸까? 마음 밑바닥까지 묵직하다.
담장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았다. 좁은 도랑이 맑은 소리를 낸다. 바닥에는 하얀 돌 다섯 개로 만든 꽃이 피어 있다. 골목은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잊은 듯 천천히 흐른다. 손을 내밀면 시간의 끝자락에 닿을 듯하다.
긴 시간을 뛰어넘어 그리운 그분들이 근처 어딘가에 계실 것 같다. 나는 느리게 과거 어디쯤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