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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그리고 발자국

석양 그리고 발자국

배종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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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그리고 발자국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석양 그리고 발자국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201963
· 쪽수 : 164쪽
· 출판일 : 2025-09-30

목차

■시인의 말
■ 서문: 놀라운 연비어약鳶飛魚躍의 필봉과 소박한 인간미__이광녕

1부 고목의 가지엔 뭇별이 내려앉고
어떤 서법書法
공空
고향의 당산堂山나무
사기리 탱자나무
남산 소나무
창경궁 주목朱木
바보 대추나무
사과나무 엿보기
봉감모전5층석탑鳳甘模塼五層石塔
거실바닥 묵란도墨蘭圖
천마도 장니天馬圖 障泥
광화문 해치
청자오리모양연적
천년 주목, 혹은 풍장
주목, 그 붉은 뼈대
비천상飛天像
노송老松
광우병? 글쎄
명퇴한 날

2부 사랑! 아름다운 아픔, 그 다음은
설움이 북받치는 밤
그리움
비련悲戀
미움이 그리울 때
나목裸木의 옷
갈대의 모정母情
어느 한센병 환자들의 성자聖者
대못
기다림
영지影池에서 무영탑을 찾다
혼자 스러지는 종소리
이혼한 친구를 위하여
우울증 탈출
단풍놀이, 가슴으로 추는 막춤
조각보, 꽃 피우다
총알과 험담
어떤 불사조
헌책방 엿보기
참숯, 눈을 읽다
헌책방 그 여자
명지바람 떠돌던 밤
수학여행

3부 천음天音의 고요한 난타
화병의 꽃
원각사지 10층 석탑
탑동 삼층석탑
비즈니스 룸에서
이주노동자
중고차와 초보운전
섣달 그믐밤 보신각에서
제도制度가 닿지 않는 그늘
새장을 벗어나다
갈대밭 일구는 봄
한티역 스낵카
하오의 실루엣
호랑나비 안개 위만 날다
쇠고기 두어 근
광우병? 글쎄
봄 판타지아

4부 석양, 그리고 발자국
정서진 석양
혼자 스러지는 종소리
석양, 그리고 발자국
영종도의 낙조
늙은 싸움소
유랑견의 불망기
저문 날의 방랑자
어떤 별리別離
환생
갈매기 오페라단
노을 속 유랑자
토종닭, 처절함을 숨기고
누, 뿔을 세우다
태양을 품은 거미
저문 날의 유기견
뜬장 삽화
야생으로 간 백수의 왕
잉어의 춤사위
등용문을 넘는 잉어
어떤 별리別離 ․ 1
황조롱이, 도시의 하늘에서 길을 묻다
날자, 검독수리

■ 해설: 정형의 윤리와 잔광의 미학__김태균

저자소개

배종도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남 마산 출생으로, 배재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및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광영고등학교에서 36년간 교편을 잡았고, 과학기술부 장관 표창과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한 바 있다. 《월간문학》과 《시사문단》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모상철 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국시조협회 이사, 시조인천문학회 부회장, 정형시학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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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해설

정형의 윤리와 잔광의 미학
- 『석양, 그리고 발자국』의 상징 구성과 발화 전략


1. 여는 글

한 권의 시조집을 연다는 건, 낡은 문살을 여는 일과 비슷하다. 살짝 미는 손끝이 먼저 떨리고, 문턱을 넘자마자 공기의 냄새가 달라진다. 배종도 시인에게 ‘정형’은 제 몸을 지키는 뼈대이자 숨을 고르는 리듬이다. 시인 스스로 밝힌 바처럼 “시조는 자유시가 아니고 정형시”라는 다짐에서 출발해(그 서늘한 엄숙을 우리는 시조집 전편에서 반복해서 만나게 된다), 그는 허리를 펴고 고개를 세워 정형의 골격을 빈틈없이 세운 뒤, 그 위에 풍경과 사유, 삶의 세목을 올린다. 이 작업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추錘’에 가깝다. 무거운 생의 끝에 매달아 리듬을 고르고 음을 정조定調하는 것.

이 시조집의 핵심 정조를 한 줄로 말하자면 ‘석양의 미학’이다. 낙조가 책의 시작과 끝을 번갈아 물들이고, 그 사이를 나무와 탑, 새와 짐승, 이주노동자와 도시의 밤이 오가며 옮겨 심는다. 서늘한 저녁 빛은 그의 시각을 현실로 견인한다. 예컨대 「창경궁 주목朱木」의 첫수에서 “한 번만 더 몸통 틀면 용이 될 수 있었는데”로 시작하는 신체적 상상은, 주목의 생장과 사도세자의 비극을 겹쳐 놓는 방식으로 역사적 상흔을 현재의 표면으로 끌어올린다. 여기서 말은 과장으로 치닫지 않는다. 나무의 “줄기 고대가 갈라졌다”는 묵직한 서술은 과잉의 표현을 거부한다(“아뿔싸! 벼락이 내려 줄기 고대 갈라졌다” 대목). 곧바로 독자는 잎맥과 피부, 궁궐의 처마와 비바람의 질감까지 촉각적으로 만지게 된다. 그 정직한 묘사가 이 시조집의 품위를 만든다.

그는 자주, 사물의 전면을 보되 사물에 기대어 사람을 본다. 이를테면 탑, 석상, 해치 같은 존재들을 마주한 순간, 시선은 ‘뒷면’을 더듬는다. 이곳에서 유용한 개념 하나를 빌려오면 ‘우의’다. 감추인 사연을 사물의 몸에 옮겨 새겨, 독자가 둘러보게 하는 장치. 우의는 비유의 친척이지만 표적이 더 깊다. 표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기억까지 불러낸다. 그가 한 번 더 밀어붙이는 지점은 ‘내재율’이다. 고정된 장단 속에서 어휘와 행갈이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박동. 이 박동이 있기에, “덜 여문 구름 한 장 불콰하게 타다 걸린 / 첨탑에서 흘러나온 때를 잊은 종소리” 같은 구절이 미끄러지지 않고 제자리를 찾는다.

상징과 은유의 밀도도 짚어볼 만하다. 나무가 유난히 많다. 주목, 노송, 대추, 소나무, 탱자… 거기엔 ‘뿌리’와 ‘결’과 ‘옹이’가 있다. 나무는 생의 인장印章이다. 그 인장은 이력서처럼 반듯하지 않다. 꺾이고 갈라지고 뒤틀린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뚝·뚝·뚝 땀은 흘려도 / 붉은 뼈대 곧추선다”라는 대목은, 세월과 폭풍을 통과한 뒤에도 스스로의 중심을 세우는 존재의 의지를 응축한다. 상징은 과잉으로 흐르지 않고, 정확히 피멍 든 언어에 실려 제 길을 걷는다.

물론 이 시조집의 태도는 단정하여 때때로 경직되어 보일 때도 있다. 정형의 의식이 강한 만큼, 서술의 탄력이나 구성이 조금 더 느슨했더라면 하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 사회적 현안(광우병, 룸살롱, 이주노동자)을 다룰 때, 시적 압축력이 경직되는 지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조차도 ‘정형’이라는 자각 위에서 나온 선택이니, 내러티브의 온도를 떨어뜨리되 대상의 윤곽을 흐리지 않으려는 의지로 읽힌다.

결국 이 시조집은 석양의 자리에서 세상을 배우는 법을 가르친다. 저문 빛을 보며 물러나지 않고, 그 빛으로 사물의 옆모습과 사람이 남긴 무늬를 오래 더듬는 법. 그래서 이 시조집의 미학은 퇴락의 미가 아니라 ‘잔광의 미’다. 사라져가는 순간에 한줄기 핏빛이 박히고, 그 사이로 “갈바람 / 날개를 접어 / 숨결 곱게 안겨드는” 세계가 있다. 그 잔광을 오래 붙드는 일, 그것이 이 시조집이 제안하는 미학적 훈련이다.

2. 나무의 윤리

나무는 먼저 버틴 뒤에 말한다. 껍질의 금과 옹이의 방향, 벼락의 자국이 그 나무의 지난 시간을 대신 증언한다. 주목의 붉은 결 위로 석양이 내려앉는 순간, 사물을 빌려 다른 뜻을 드러내는 방식이 또렷해진다. 겉모습의 화려함보다 등 쪽의 거친 질감에 귀 기울이는 시선, 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박동이 그런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이 시조집의 상징들은 과장이 아니라 기록처럼 느껴진다.

1. 낭패를 보다
한 번만 더 몸통 틀면 용(龍)이 될 수 있었는데
뒤주 속 앰한 혼령 품어 안고 다독이다
아뿔싸! 벼락이 내려 줄기 고대 갈라졌다

2. 사도세자의 최후
후려치는 비바람이 우레를 몰고 와서
잦아들던 헛웃음도 에둘러 덮었던 건
빛 한 점 못 보고 가는 감읍 할 성은(聖恩)인가

손톱이 다 빠진 날 힘없이 늘어진다
불여귀 울음 울어 혜경궁은 합장하고
세손의 통곡이 아파 나도 함께 울었다

3. 오늘
적소(謫所)인 듯 인적 없어 옛 생각에 한숨 쉬자
어깨 가만 두드리고 궁궐 지붕 넘는 석양
거듭난 가지도 모두 회오리칠 준비 한다
-「창경궁 주목(朱木)」 전문

이 작품은 한 그루 주목의 몸에 사도세자의 비극을 겹쳐 놓는다. “한 번만 더 몸통 틀면 용이 될 수 있었는데”라는 첫 구절에서 이미 거의 도달했지만 꺾인 운명이 감지되고, “뒤주 속 앰한 혼령”이 곧바로 역사적 사건을 환기한다. 이어 “줄기 고대 갈라졌다”는 말은 비극의 흔적을 나무의 상처로 바꾸어 보여준다. 말맛이 가장 날카로운 곳은 “빛 한 점 못 보고 가는 감읍 할 성은인가”인데, 겉으론 공손한 듯하면서도 권력의 냉혹함을 비트는 문장이다. 혜경궁과 세손의 눈물이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정서로 불러와 무게를 붙여 주고, 끝의 “궁궐 지붕 넘는 석양”은 감상용 장면이 아니라 오늘의 빛으로 과거를 단정하게 비추는 조명에 가깝다. 그래서 전편이 울분으로 치닫지 않고, 차분한 추도의 어조를 끝까지 유지한다. 사물로 사람을 비추는 이 간접 말하기가 작품의 힘이며, 초장?중장?종장의 고른 호흡이 과장 대신 긴장을 남긴다.

저 말 아직 살아있다, 깊은 잠 깨어났다.
장승이 된 천관녀의 붉은 사모 접지 못해
엎어져 피를 뿜었던 백마 아직 살아있다.

흰털 곱게 벗겨내듯 머리맡에 빛 들던 날
자작나무 장니 속에 숨어 지낸 시간 들을
부르르 앙다문 입이 자꾸자꾸 토해낸다.

갈기를 휘날리며 구름 감은 그 발짓도
천년을 하루같이 발싸심 하던 것이
저렇게 진저리치고 성큼 뛰어 나온다.

꼭 한번 달렸어야 할 황산벌이 보이는가.
노을 타고 날아가다 주춤하고 숨 고르고
기어이 참았던 울음 터뜨리고 있는가.
-「천마도 장니(天馬圖 障泥)」

여기서는 유물이 현재형의 숨을 얻는다. “저 말 아직 살아있다”라는 현재형 선언이 시간을 열어젖히고, 장니의 결, 백마의 피, “앙다문 입” 같은 촉각적 어휘가 그림 속 말을 눈앞으로 끌어낸다. 셋째 연부터 속도가 붙어 “황산벌”이 호출되면 역사와 신화, 지금의 감정이 하나의 장면으로 겹친다. 달리지 못했던 말의 응어리가 마지막에 “기어이” 터지는 설계도 분명하다. 다만 그 결말의 직진은 독자에 따라 감정의 고도가 빠르게 치솟는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런데도 유물?현재?역사를 잇는 통로가 매끄럽게 열려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두 작품을 나란히 읽으면 법칙이 보인다.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를 비춘다. 나무는 왕자의 운명을, 말은 전사의 시간을, 석양은 종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상호 비춤이 작동하려면 시의 기본 박자가 먼저 단단해야 한다. 삼 장에 알맞게 힘을 배치해 문장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붙잡는 일, 바로 그 내적 박동이 의미를 지탱한다. 그래서 결론도 간명해진다. 배종도의 ‘나무의 시’는 자연 예찬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관한 글이다. 버티고, 견디고, 다시 선다는 것. 정형의 틀은 그 태도를 우리 몸에 붙이는 도구가 된다. 읽고 나면, 우리도 모르게 등을 펴게 된다.

3. 사랑의 잔향 - 그리움과 상실의 발화법

사랑의 말은 키울수록 가벼워진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말하되 장식을 덜고, 통속의 관습을 비켜선다. 애틋함을 곧장 앞세우기보다 먼저 호흡을 맞춘다. 리듬을 낮추고, 톤을 낮추고, 감정의 체온을 문장 바깥으로 잠시 밀어둔다. 그 여백에서 비로소 말이 스며든다. 기다림이 감정의 주인이 되고, 서술은 뒤에서 따라간다.

종일 그대 기다리다 몸으로 우는 밤은
달빛도 구름 가려 깊은 시름 삼키는데
남몰래 / 타는 가슴을 / 어떻게 더 사르리.

매정한 님 기다리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짙어지는 지난날들 울면서 휘저어도
설움이, / 설움이 자꾸 / 북받치는 이 한밤.

애증의 정기인가 잠 안 자는 달
그리고 별 / 가만히 하나 따다 밤새워 품으리라
차디찬 / 볼에다 대어 / 뜨거운 눈물 적시리라.
-「설움이 북받치는 밤」 전문

「설움이 북받치는 밤」은 제목이 큰 파문을 예고하지만, 첫 행의 문장은 낮은 음으로 시작한다. “종일 그대 기다리다”라고 말하면서도 1인칭의 전면 등장은 끝내 자제되고, 밤의 기운과 달빛의 흐름이 감정의 앞자리를 대신한다. 이 미세한 거리 두기가 울분의 확성을 막고, 오히려 기다림의 밀도를 끌어올린다. 종장에서 별 하나를 “따다”가 아니라 “품으리라”로 데려오는 제스처가 중요하다. 점유가 아닌 보듬음, 과시가 아닌 체온의 이전. 사랑의 과열을 피하고 밤의 물성 속으로 감정을 침전시키는 길, 바로 그 길이 이 시조의 호흡을 지킨다.

1.
성공 가도街道 열차에서 여린 손 흔들었어.
앙가슴에 대못 박혀 / 눈물 훔친 어머니와
한평생 / 이별이 될 줄 / 플랫폼은 알았을까.

2.
어둠을 밝히는 건 / 촛불 든 환영幻影인가.
내 손 잡던 고운 손이 뼈마디로 등을 쓸어
그 품속 / 아련한 체취 / 뜨겁다, 눈시울이.

3.
몇십 년 기억들이 강물같이 흐르는 밤
잠 못 이뤄 돌아눕자 / 복장 자꾸 뻐근해서
만져본 / 내 명치에도 / 대못 하나 박혀있어.
-「대못」 전문

같은 절제가 「대못」에선 더 묵직하게 응축된다. 플랫폼의 이별을 그는 ‘대못’이라는 촉각으로 박아 넣는다. 추억의 서사를 길게 펼치지 않고, 차갑고 무거운 물성을 먼저 건네는 선택이 정확하다. 둘째 수에서 “뼈마디로 등을 쓸어”라는 구절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손이 대신 말한다. 신체의 기억이 정서의 표면을 뒤집을 때, 울음은 문장 바깥에서 이미 시작된다. 마지막에 이르면 “내 명치에도 대못 하나”가 확인된다. 사적 장면이 독자의 몸으로 옮겨붙는 순간이다. 심상은 장식이 아니라 기억을 다시 작동시키는 장치가 되고, 한 사람의 사연은 보편의 통증으로 번역된다.

두 작품이 보여주는 건 사랑의 언어가 ‘성찰의 형식’으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그는 사건의 인과를 늘어놓는 대신, 몇 개의 장면과 촉감을 남겨 독자 안에서 재서사가 일어나도록 유도한다. 줄거리의 확장을 멈추고 이미지의 중량을 키우는 방식, 시조의 정형 리듬과 맞물릴 때 시효가 극대화된다. 초장에서는 장면을 세우고, 중장에서는 감각을 돌려놓고, 종장에서는 육성 대신 여운을 건넨다. 말의 양을 줄였는데 울림은 오히려 커지는 방식이다.
물론 작은 요철은 있다. 「설움이 북받치는 밤」의 별 한 줄은 관습적 상징처럼 보일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 별이 가리키는 동작이 ‘소유’가 아니라 ‘품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감정의 방향은 과잉이 아니라 정리로 기운다. 손바닥을 쥐는 대신 펼쳐 보이는 법, 그 자세가 이 시집의 정조와 닿아 있다.
사랑의 말은 작게, 상실의 말은 깊게. 두 시조는 그 간단한 질서를 엄격하게 지킨다. 먼저 기다림이 있고, 나중에 해후가 있다. 먼저 손의 감각이 있고, 나중에 눈물의 진술이 있다. 그래서 독자는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비로소 자기 명치의 무게를 더듬는다. 거기에 작은 대못 하나가 남는다. 쉽게 뽑지 말라는, 시의 조용한 당부처럼.

4. 도시의 그늘 - 룸과 공장 사이에서

도시를 다룰 때 그의 시선은 온도를 잰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뒤섞인 장소에서, 그는 도덕의 장광설 대신 감각의 붕괴를 먼저 보여준다. 비유는 꾸밈이 아니라 경보다. 어느 순간, 독자는 냄새를 맡고, 촉수를 느끼고, 속이 요동치는 자신의 몸을 자각한다. 그 자각이 곧 윤리의 기점이 된다.

룸살롱 들어서면 오염된 바다였다.
줄줄이 원자탄 터져 뒤집혀진 해저에는
혼탁한 물결이 일어 비굴해도 괜찮다.

아름다운 호스티스 갸름한 팔 문어 같아
곁에 앉은 아귀 몸을 착착 감아 녹이라고
앙가슴 골짜기에다 배춧잎을 꽂았다.

오장육부 뒤틀려져 울컥울컥 토하도록
촉수를 곤두세운 저 탐욕 역겨워도
허리를 굽혀 가면서 노래하면 가라앉는다.

낙진 섞인 폭탄주만 거푸거푸 들이키는
아! 나는 바보인가, 바보가 되었는가.
음흉한 / 아귀 아가리 / 구세주로 보인다.
-「비즈니스 룸에서」 전문

이 작품은 ‘도덕’ 대신 ‘생태’를 호출한다. 룸살롱은 “오염된 바다”로 전환되고, 인물들은 해양 포식자의 사슬로 배치된다. 문어, 아귀, 낙진, 폭탄주-맛과 냄새, 점성과 방사성의 이미지가 입과 위장을 자극한다. 그 결과, 독자는 혐오를 관념으로 소비할 수 없게 된다. “오장육부 뒤틀려져”라는 문장처럼 내부가 먼저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때 비유는 설교를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각을 예민하게 되살리고, 그 되살아난 감각이 공간의 윤리를 묻는다. 마지막의 자기 조롱-“아! 나는 바보인가”-은근히 중요하다. 비판의 칼끝이 타자에게만 겨눠질 때 발생하는 위선을 끊어 내고, 공모의 지점까지 드러낸다. 그래서 이 시조는 선악의 도식으로 닫히지 않는다. ‘훼손된 감각’이야말로 도시가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임을, 몸의 언어로 확인시킨다.

선반에 잘린 손가락 토룡처럼 팔딱였다.
몇 개나 더 베어가야 몸부림칠 수 있을까
아무리 / 애를 써 봐도 / 가위눌린 꿈이다.

일찌감치 수렁으로 탈출한 내 아우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골목길 헤집으며
버러지 같이 살아도 / 배춧잎만 먹는다.

몽당손 되기 전에 품은 의지 배반할까
신의 품에 숨어들면 매스컴도 못 보는데
어차피 / 코리아 드림 / 진땀 빼고 깨어난 것.
-「이주노동자」 전문

여기서는 아픈 사실이 서사보다 먼저 온다. “잘린 손가락”은 사건의 배경을 늘어놓기 전에 신체의 단절을 눈앞에 던진다. 토룡처럼 팔딱이는 그 한 줄에 재단된 노동, 위험의 일상, 환멸의 속도가 압축된다. 시는 피해를 선동의 언어로 포장하지 않는다. “배춧잎만 먹는다” 같은 맨말의 건조함이 오히려 배고픔의 구조를 선연하게 만든다. 종장에 이르면 “코리아 드림”이 반어로 뒤집힌다. 꿈은 번역 과정에서 구호가 되었고, 구호는 땀과 통증으로 환원된다. 화자의 시선이 높은 데 있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연민을 말하되, 대상의 초상을 박제하지 않는다. 기록하되, 소비하지 않는다. 그 거리감이 윤리의 최소 단위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도시가 하나의 계기판처럼 보인다. 화려함과 피로, 소비와 폐기의 그래프가 동시에 출렁이고, 감각의 이상치가 경보음을 울린다. “음흉한 아귀 아가리 구세주로 보인다”는 날 선 역설은 자본이 감각을 얼마나 손쉽게 전도시키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상징과 은유는 사회비판의 손전등이 아니라 감각을 재훈련하는 체육관에 가깝다. 냄새, 맛, 촉감, 무게-몸의 센서를 다시 켜야 현실의 ‘온도’가 읽힌다.

「비즈니스 룸에서」의 직설 한두 군데, 이를테면 “나는 바보인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삼갔더라도 메시지는 충분히 도달했을 것이다. 다만 그 고백 덕에 독자의 자리도 열린다. 우리 또한 때로는 공모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 그 불편한 자각을 외면하지 않게 된다. 도시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주노동자」가 환기하는 문제의식은 장소와 통제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공장의 내부, 기숙사의 규칙, 언어의 벽이 일상의 감금으로 이어질 때, 시조는 ‘누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이 작품이 굳이 설명을 늘리지 않고 신체의 조각만으로 응답하는 까닭은, 설명보다 감각이 먼저 증언이 되기 때문이다. 그 증언이 오래 남는다.

5. 석양의 미학 - 광야의 빛이 남기는 것

석양은 사라짐의 장식이 아니라 정리의 도구다. 저문 빛은 사물의 윤곽을 단호히 드러내고, 말의 과장을 덜어내며, 남겨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을 가늠하게 한다. 광휘가 아니라 윤곽, 감탄이 아니라 복기. 핏빛의 긴장은 단죄보다 망설임을, 격정보다 여백을 불러온다. 이 장은 바다와 백사장, 그리고 ‘아버지’의 호명이 교차하는 두 편을 통해 잔광이 어떻게 애도의 기술로 변모하는지 더듬는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소리보다 숨, 불꽃보다 되밟는 발자국의 리듬이다.

비장함이 서려 있다. 타는 석양 핏빛 노을
하얀 포말 달려왔다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써늘한 / 이 긴장감에 / 꽁무니를 빼고 있다.

문명에 찌든 구름 태양의 길 훼방하다
기어이 세를 불려 서녘 하늘 덮었는가.
예리한 / 섬광 한줄기 / 한복판을 가른다.

천지가 환하도록 쏟아지는 맑은 선혈
선정에 든 섬도 모두 합장하고 앉았다가
비로소 / 저를 염하듯 / 땅거미를 덮는다.
-「정서진 석양」 전문

이 시조집의 미학적 핵심을 가장 밀착해 표상하는 작품이다. 「정서진 석양」은 낙조를 풍경화의 화려함으로 진열하지 않는다. 첫 행에서부터 낭만을 지우고 긴장을 세운다. 포말이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물러서는 장면은 자연의 장식성을 거둬내며, 이어지는 “섬광 한줄기”가 하늘의 한복판을 가르는 순간, 석양은 관조의 배경이 아니라 판단의 칼날이 된다. 이 빛은 무언가를 단죄하기보다는 윤곽을 정리한다. 무엇을 보태지 않고, 무엇을 덜어내는가, 저문 빛의 일은 결국 그 정리의 기술에 닿아 있다. 그래서 섬들은 합장하고, 바다는 잠시 말을 잃는다. 여기서 배우는 건 ‘시간의 윤리’다. 저물어갈 때 과장하지 않는 태도, 끝을 끝으로 받아들이는 미덕.

아픈 상처 남김없이 지우려고 왔습니다.
수평선에 걸린 석양 지난 세월 아는 듯이
희미한 / 그림자 하나 / 바위에 새깁니다.

갓 핀 황혼 내 어깨에 켜켜이 쌓여있는
무거워도 못 내리고 / 감당하기 힘든 만상萬象
그 위에 / 덮이는 노을 / 흰머리도 벅찹니다.

내 짐 벗겨 가시더니 / 지는 해에 다 태우고
백사장의 발자국을 / 되밟고 가십니까.//
“아버지!” / 불러보다가 / 눈시울만 적십니다.
-「석양, 그리고 발자국」

이 빛의 윤리를 개인의 서사로 끌어오는 것이 「석양, 그리고 발자국」이다. “상처를 지우려고 왔”다는 선언은 높지 않다. 화려한 장례의 의식 대신, “그림자 하나”를 바위에 새기는 낮은 제의가 놓인다. 이름이 아니라 그림자, 덧없음을 새기는 행위다. 종장의 호명, “아버지!”는 슬픔의 과시가 아니라 마지막 숨을 던지는 목소리다. 파도가 오면 사라질 글씨처럼, 말은 조용히 잦아들고, 애도는 크기보다 품격으로 완성된다. ‘되밟고 가십니까’라는 질문은 남겨진 자의 예의다. 되밟음은 지움이자 복기다. 사라진 발을 따라 자기 발을 다시 놓는 일, 그 작은 절차가 애도의 방법이 된다.

여기서 석양은 감상적 장식이 아니라 정리의 도구다. 배종도는 저무는 빛으로 사물과 마음의 윤곽을 다듬는다. 붉은색은 유죄·무죄를 묻지 않지만, 핏빛의 긴장을 남긴다. 그 긴장이 독자를 해안으로 데려간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우리는 한동안 백사장을 거닐며, 우리 자신의 발자국을 되짚어 볼 것이다. 남길 것과 지울 것, 말할 것과 묻어둘 것을 가늠하면서.
덧붙이면, 「정서진 석양」의 몇 장면은 스펙터클의 문턱에 바짝 다가선다. 눈부신 광휘가 시적 긴장을 잠시 느슨하게 만들 위험도 있다. 그러나 끝내 그 빛은 잔광으로 가라앉고, 잔광은 다시 고요로 수렴된다. 이 시조집이 일관되게 지켜 온 미학, 즉 과장 대신, 여백과 정리와 배치되지 않는 이유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늘 소리 아닌 숨, 광휘 아닌 윤곽이다. 그 윤곽이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저물녘은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겨두었는가.

6. 생명의 곁

타자를 본다는 건 가까이 들이대지 않되 모른 척하지 않는 일이다. 여기서 살펴볼 두 편의 시조는 도시 변두리의 생명, 즉 버려진 개와 뜬장의 황구를 응시하면서 연민의 과장과 냉정의 잔혹 사이에서 멈춰 서는 법을 배운다. 기록하되 소비하지 않고, 묘사하되 착취하지 않는 시선. 노을빛 언덕에 선 석상 같은 몸, 끝내 옮겨 적지 못한 눈동자의 빈자리, 바로 거기서 독자의 상상과 책임이 호출된다.

꽃샘추위 바람 불어 할퀴듯이 지나간다.
옛집 몇 번 돌다가 와 / 혀를 빼문 저 유기견
노을빛 / 머무는 언덕 / 버티고 선 석상(石像)이다.

내달리는 이삿짐 차 / 피 토할 듯 짖고 따르다//
빈 길 한참 바라보고 / 쓴웃음 짓는 모습 //
다갈색 / 눈물 자국이 / 점점 검게 변해간다.

골목 돌아 누구인가, 누군가 올 듯한 날
하루가 다 가도록 중장비만 지나간다.
저무는 / 들개의 길엔 / 삭풍 아직 숨을 쉬고.
-「저문 날의 유기견」 전문

이 시조집에서 가장 아프게 빛나는 대목이다. 이 시조는 도시 개발의 그늘을 따라다니는 생명을 정면에서 붙잡되, 눈물의 과장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옛집 몇 번 돌다가 와 혀를 빼문 저 유기견” 건조한 서술이 한 장면을 단단히 고정하고, “노을빛… 석상”으로의 전환이 시간을 석화石化시킨다. 생존의 시간이 돌처럼 굳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선의 윤리를 배운다. 함부로 쓰다듬지 않고,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않는 거리. 이 절제가 마지막 연의 “삭풍”을 도식적 비감이 아니라 체감의 냉기로 남긴다. 버려진 몸의 자세가 ‘서사’보다 먼저 말을 거는 순간, 독자의 마음은 이미 언덕 위의 석상 곁으로 이동해 있다.

거친 숨결 새어나는 뜬장 개집 그립니다.
목숨 거둘 어미 개들 미리 염습하는 음지
언제쯤 햇살이 들어 / 밝은 세상 그릴까요.

비루먹고 발 갈라져 두 번 보기 역겨운데
배설물, 선지 썩어 시궁창 된 도살장엔
식칼에 낫과 도끼가 / 퍼런 살기 뿜습니다.

저승길로 이끌고 갈 올가미 그린 순간
핏물 밴 벽 구석에서 웅크려 떠는 황구
주인은 이성을 잃고 / 인간이길 접은 걸까?

측은지심 울음 울고 붓에 눈물 적시지만
하늘 찢는 단말마 비명 시허옇게 뒤집히는
눈동자, 눈동자는 차마 / 그리지를 못했습니다.
-「뜬장 삽화」 전문

여기서는 현실의 참혹을 외면하지 않되, 자극의 재현도 거부한다. “비루먹고 발 갈라져” 같은 촉각의 어휘가 냄새와 통증을 일으키지만, 시선은 끝내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다. 그 ‘못함’은 회피가 아니라 한계의 자각이며, 윤리의 시작이다. 잔혹을 반복 재현하는 것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아는 붓, 그래서 멈추는 붓. 이 멈춤이 독자의 상상과 책임을 호출하고, 작품의 여백은 구경이 아니라 증언으로 변한다. 일부 장면에서 도살장의 디테일이 과밀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것은 현실의 과밀을 반사한 결과이며, 마지막의 생략이 전편의 과밀을 상쇄해 균형을 맞춘다.

이상의 두 시조는 ‘현실을 어디까지 응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냉정이 잔인으로 미끄러지지 않는 좁은 길. 배종도는 언어의 속도를 늦추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 그 길을 통과한다. 독자는 페이지를 넘기기 전, 잠시 눈을 감게 된다. 시가 그리지 못한 자리를 자기 상상으로 메우는 잠깐의 침묵, 그 다음에 남는 것은, 생명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다.

7. 닫는 글 - 정형의 추(錘), 잔광의 숨

책을 덮고도 오래 남는 것은 낙조의 휘장, 나무의 옹이, 모래 위를 되밟는 발걸음의 리듬이다. 배종도의 시조는 정형을 신앙처럼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그 틀을 단단한 뼈대로 삼아 현실의 살과 피를 덧입힌다. 사물은 사람의 이력으로, 저녁빛은 사물의 윤곽을 밝혀 주는 조명으로 바뀐다. 이 왕복 사이에서 화자의 시선은 온기를 잃지 않으려 애쓴다. 형식은 법도가 아니라 호흡이며, 초장·중장·종장의 좁은 방에서 그는 뜻밖에 넓은 시공을 펼친다. 그 숨결을 떠받치는 것은 내재율이다. 시 바깥의 박자에 기대지 않고, 어휘의 결과 행갈이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박동-그 박동이 이미지들을 과장의 열기로부터 구해 내고, 끝내 침착한 온도로 정리한다.
이 시조집이 남긴 확인 몇 가지. 첫째, 상징과 은유는 대상의 등짝에 새길 때야 비로소 단단해진다. 주목의 붉은 뼈대, 천마의 질주, 석양의 칼날, 유기견의 석상, 이 이미지는 표어처럼 떠들지 않으면서도 기억의 밑줄이 된다. 둘째, 시적 발화는 사회적 고발보다 오래간다. “잘린 손가락”, “낙진 섞인 폭탄주” 같은 구절은 선언보다 깊다. 선언은 시효가 있지만, 감각화된 기억은 오래 지속된다. 셋째, 윤리는 말투의 문제다. 격해지지 않고 망설이며, 그 망설임으로 세계를 지키는 태도, 이 시조집의 문장들은 그 높이를 잃지 않는다. 여기서 우의가 힘을 얻는다. 사물을 빌려 타자와 역사를 지시하는 간접의 장치가 도덕의 설교를 대신하지 않고, 독자의 몸에 먼저 닿는 감각의 통로가 된다.
물론 바람도 없지 않다. 도시와 노동을 다루는 몇몇 작품에서 드문 직설은 한 칸 낮춰도 되었을 터다. 다만 그 직설은 때때로 시적 울림보다 앞서 나가기도 하지만, 결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시적 감각과 사회적 윤리의 마찰면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오히려 현장의 온도와 작가적 양심을 증거하는 지점으로 남는다. 시간이 더 흐른 뒤 이 부분은 당대의 공기를 보존한 증언으로 다시 읽힐 것이다. 정형의 규율 아래서 현실을 더듬는 이 말투, 낡은 틀을 오늘의 윤리로 갱신하려는 그의 실험은 조용하지만 분명하다.

배종도 시인의 시조집 『석양 그리고 발자국』을 통해 살펴본 배 시인의 시조는 정형의 윤리를 내일의 언어로 업데이트하는 모범에 다가섰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새로운 형식의 탑을 세우겠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전통적인 형식의 틀을 숨 쉬게 한다. 박자를 맞추고, 결을 따라가고, 지나친 광휘를 덜어 여백을 남긴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의 구호 대신 하나의 추錘를 건넨다. 언어의 높낮이를 재고, 시간을 눌러 맞추며, 마지막으로 남은 잔광을 저울질하는 하나의 추. 독자에게 남는 것은 그 추를 손에 쥐고 자신의 문장을 다시 고쳐 달아 보려는 작은 의지다.

저녁은 깊어지고, 석양은 사라지지만, 발자국은 잠시 남는다. 물결이 와서 지우면 그 자리에 새 발자국이 찍힌다. 시는 바로 그 새 자국을 향해 손짓하며 끝난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오늘, 당신의 잔광은 어디에 머무는가.
(김태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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