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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91191383652
· 쪽수 : 608쪽
· 출판일 : 2026-02-25
책 소개
대학은 지성주의의 보루여야만 한다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 어디에나 대학이 존재하는 ‘대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현대 연구중심대학의 모델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하버드대학교 교수이자 저명한 역사학자인 저자 윌리엄 커비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9세기 독일에서 시작되어 20세기 미국을 거쳐 21세기 중국으로 이어지는 대학의 거대한 여정을 추적한다. 커비는 베를린대학교가 정립한 학문 탐구와 전인교육의 가치가 어떻게 세계적인 표준이 되었는지 분석한다. 나아가 하버드와 버클리 등 미국 명문대들이 직면한 위기와 도전,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폐허를 딛고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대학들의 역동적인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 세계의 주도권과 밀접하게 연결된 지식 패권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대학의 연대기를 나열하는 역사서가 아니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사례연구법을 도입해 각 대학이 직면한 실천적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100여 명에 달하는 핵심 인물들의 솔직한 인터뷰를 통해 대학의 성공과 쇠퇴를 결정짓는 리더십, 거버넌스, 재정적 역량의 실체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대학은 당장 수요가 없는 지식이라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임을 강조하며, 21세기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지식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대학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조망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대학이라는 ‘지성의 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가장 정교하고 방대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훔볼트에서 칭화까지, 현대 연구중심대학의 탄생과 거대한 중심 이동
현대 연구중심대학의 뿌리는 1810년 빌헬름 폰 훔볼트가 설립한 베를린대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훔볼트는 대학을 단순한 직업 지식 전수처가 아니라 학술 연구(Wissenschaft)와 전인교육(Bildung)이 결합된 ‘교수와 학생의 공동체’로 정의했다. 이 모델은 교수에게 가르칠 자유를, 학생에게 배울 자유를 부여하며 인류의 지적 자산을 다음 세대로 잇는 초세대적 전당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했다. 훔볼트적 이상은 대학이 국가나 자본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지적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으며, 이는 이후 전 세계 고등교육의 표준이 되었다.
이러한 독일의 모델은 20세기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등 세계적 명문 대학들이 지식 패권을 쥐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하버드대 문리과대학 학장을 지낸 저자 윌리엄 커비는 이 책에서 독일 대학의 몰락과 미국 대학의 번영, 그리고 21세기 중국 대학의 부상을 8개 대학의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통해 자세히 추적한다. 그는 학자이자 행정가로서 현장에서 목격한 생생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 시대의 지성을 상징했던 ‘지성의 제국’들이 각국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이동하며 재편되는지를 방대한 문명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연구비 중심 대학’으로의 변질과 ‘지성주의의 보루’라는 본질의 상실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대학들은 ‘연구중심대학’이라는 명분 아래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해제를 쓴 이종식 교수에 따르면, 현대의 많은 대학은 교육 기능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고 오직 논문 실적과 대형 연구 사업 수주에만 몰두하는 ‘연구비 중심 대학’ 혹은 ‘연구 사업 중심 대학’으로 변모했다. 대학이 정부나 기업의 거대 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학문의 자유는 위축되었고, 당장 경제적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기초 학문이나 인문학적 탐구는 ‘비생산적인 것’으로 낙인찍혀 대학 내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커비와 이종식은 대학이 외부 요청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전락하는 현상을 강력히 비판한다. 대학만이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은 당장 수요가 없거나 정치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지식이라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고 생산하는 ‘지성주의(intellectualism)’를 지키는 것이다. 외부의 압력과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앎과 배움의 자율성을 확보할 때만 대학은 비로소 ‘큰 배움(大學)’의 장소라는 본연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곧 대학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미국 명문 대학의 내적 균열과 중국 대학들의 역동적인 부상과 도전
지난 세기 세계 고등교육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미국 대학들은 현재 심각한 내외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하버드와 같은 사립대학들은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와 복잡한 거버넌스의 한계로 인해 내홍을 앓고 있으며, 버클리로 대표되는 공립대학들은 주 정부의 재정 지원 감소로 인해 교육의 ‘수월성’과 사회적 ‘접근성’ 사이에서 고전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명문 대학들이 과거의 성공 모델에 안주하며 혁신의 동력을 잃어 가고 있는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적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의 칭화대와 난징대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참혹한 암흑기를 지나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적 수준으로 급부상했다. 저자는 중국 대학의 성공이 단순히 국가의 통제나 자본 투입 덕분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오히려 그들은 당의 강력한 개입과 비자유주의적 환경 속에서도 학문적 탁월성을 향한 개방적 탐구의 가치를 끈질기게 수호해 왔으며, 이러한 내적 역동성이야말로 21세기 지식 패권의 무게중심을 아시아로 옮겨 오고 있는 핵심 동력임을 보여준다.
대학의 운명을 가르는 리더십의 연속성과 거버넌스 체제의 명암
대학의 흥망성쇠는 결국 대학을 이끄는 리더십의 성격과 운영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 저자는 20세기 하버드가 세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리더십의 안정성을 강조한다. 찰스 엘리엇부터 데릭 복에 이르기까지 단 6명의 총장이 평균 20년 가까이 장기 재임하며 일관된 교육 철학과 장기적인 전략 계획을 추진했던 전통은 하버드를 흔들리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이는 총장 임기가 짧아 장기적 비전 수립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한국 대학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이 책은 듀크대학교가 중앙집권적·하향식 거버넌스를 통해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단행하며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 대학으로 도약한 사례를 심층 분석한다. 반면 버클리와 같은 대학에서 나타나는 민주적·분산적 거버넌스가 때로는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대학 리더들이 국가 권력이나 자본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불가근 불가원’의 지혜를 발휘하면서도, 내부 구성원들의 지지를 어떻게 끌어내 대학의 자립적인 성장을 도모했는지가 지성 공동체의 운명을 갈랐음을 입증한다.
미래를 향한 통찰: 번영한 국가에 품격 낮은 대학은 존재할수 없다
윌리엄 커비는 “오랜 시간 동안 번영한 국가에 원칙적으로 품격 낮은 대학은 존재할 수 없다”라며, 대학의 수준이 곧 국격과 직결됨을 단언한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거나 취업 스펙을 쌓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고결한 정신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다. 효율성과 수익성만을 따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오직 대학만이 ‘느리고 골치 아픈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과정을 허용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
저자는 대학이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외적 성과를 넘어, 대학만이 할 수 있는 본질적인 연구와 교육을 보호할 때 비로소 그 사회의 진정한 명성과 소프트파워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21세기의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의 대학들이 창업의 시기를 지나 수성과 재도약의 길목에서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지 고민한다면 이 책이 제시하는 훔볼트적 이상의 회복과 현실적 균형의 지혜에 주목해야 한다. 이 책은 대학의 과거를 거울삼아 우리 시대의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가장 정교하고 방대한 지적 안내서다.
지성의 전당 이면에 숨겨진 은밀하고도 강렬한 대학들의 뒷이야기
이 책은 단순히 대학의 제도적 역사를 훑는 데 그치지 않고, ‘지성의 제국’이라 불리는 명문 대학들이 감추고 싶어 했던, 혹은 그 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생생한 에피소드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세계 최고의 지성이라 자부했던 하버드대학교가 보여준 철저한 여성 차별의 역사가 대표적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하버드는 여성 교육기관인 래드클리프칼리지 학생들의 도서관 출입을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했으며, 법대와 의대 등 주요 대학원에서의 여성 배제는 동급 기관 중에서도 독보적일 만큼 폐쇄적이었다. 또한, 전 세계 부유층이 하버드 입학을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제안하며 벌이는 은밀한 로비의 현장과 이를 방어해야 했던 저자의 경험담은 오늘날 대학이 직면한 자본과 공정성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학의 역사가 때로는 피비린내 나는 정치의 현장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은 더욱 충격적이다. 1960년대 중국 칭화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진 ‘백일전쟁’은 대학이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얼마나 참혹해질 수 있는지를 증언한다.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유배되어 병마에 시달리는 가운데, 노동자·농민을 위한 대학으로 개편된 그곳에서 정작 당 엘리트의 자제인 시진핑이 수학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파괴된 정문 자리에 마오쩌둥의 동상이 들어섰던 칭화대의 과거부터, 성차별과 금권 입학의 유혹에 맞섰던 하버드의 분투까지, 이 책이 들려주는 대학들의 ‘내밀한 고백’은 독자들이 대학이라는 존재를 더욱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목차
책을 펴내며
서론 “세계적 수준”의 대학
제1장 독일의 대학 : 역사적 개관
제2장 근대의 원형 : 베를린대학교
제3장 냉전 세계에서의 진실, 정의, 자유 : 베를린자유대학교
제4장 미국 연구중심대학의 부상과 도전
제5장 변화와 폭풍을 헤치며 성장하다 : 하버드대학교
제6장 공적 사명, 사적 자금 :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제7장 대담한 야망 : 듀크대학교
제8장 중국의 세기? : 중국 대학의 부흥과 부상
제9장 예비학교에서 국가의 명문 대학으로 : 칭화대학
제10장 역사의 짐 : 난징대학
제11장 아시아의 글로벌 대학? : 홍콩대학
결론 교훈과 전망
해제
주
찾아보기
책속에서

대학의 세계는 권력 정치의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대학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개인인가, 공동체인가, 국가인가, 아니면 당인가? 이는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다. 모든 근대 연구중심대학(research university)의 ‘학문적 아버지(Doktorvater)’라 할 수 있는 베를린대학교(University of Berlin)는 프로이센이 전쟁에서 패한 후 국가 재건의 수단으로 설립되었다. 잃어버린 땅을 지식의 힘으로 보완하려 한 것이다.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는 설립 후 첫 세기에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주립’대학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공적 사명을 자임하는 최고의 사립대학으로 거듭났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는 설립 이래로 캘리포니아주를 위해 봉사하는 자랑스러운 공립대학이었다. 여전히 공중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열망을 유지하고 있으나, 점점 민간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칭화대학은 본래 졸업생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 미·중 간 유대를 강화하려는 외교적 목적 아래 설립되었다. 오늘날에는 국제적인 명문으로 떠오르면서 오히려 미국과 다른 국제적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물론 하버드에서 가장 철저하게 이루어진 차별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었다. 래드클리프칼리지는 하버드 교수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도 별개의 교육기관으로 남아 있었다. 1916년 개관한 지성의 전당인 와이드너도서관에서 래드클리프 학부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작은 열람실로 한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학부생 전용 도서관으로 건립된 라몬트도서관은 아예 여성의 출입을 금지했다. 코넌트가 총장직에 오르기 전까지 하버드의 대학원 가운데 여성 입학을 허용한 곳은 교육대학원이 유일했는데, 사실 이곳은 여학생이 없었다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다. 법대와 의대, 경영대학원의 여성 배제는 다른 동급 기관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이라 할 만큼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